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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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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요덩이 Oct 08. 2017

[제 37장]

[2017년 10월 8일]

정말 오래간만에 인도 인기를 쓰는 것 같다. 준비 중이던 이벤트는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게 진행되었다. 목표 인원인 100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다른 유명한 업체들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와 비교해보아도 더 뛰어나면 뛰어났지 손색은 없는 행사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오래간만에 일기를 쓰다 보면 예전 사진들을 볼 수밖에 없는데, 볼 때마다 사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만약 사진이 없었더라면, 내가 지나온 과거나 추억들을 이렇게 기억할 수 있었을까? 과연 인도 일기를 제대로 쓸 수 있었을까? 참 고마운 세상인 것 같다 (인도에 있다 보면 이렇게 사소한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일명 "현인 타임").


지난 두 달 동안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뭐냐고 묻는다면, 복날에 삼계탕을 먹지 못했던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라고 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에 널려 있는 삼계탕 가게들이 인도에는 단 한 곳도 없다.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한인 식당에서조차 판매를 하지 않으니 실망스러울 뿐이다. 그렇기에 집에서 만들어 먹기로 결정을 했다. 닭은 채식주의자가 아니면 어지간한 인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먹을 수 있는 육류이기에 (힌두는 소를 먹지 않고, 모슬렘은 돼지를 먹지 않고, 해산물은 동쪽 지방에서 선호하지 뭄바이나 델리 같은 서쪽 지역에서는 선호하지 않는다) 매우 쉽게 구매할 수 있다. 대추는 우리나라에서 파는 그런 대추가 아니라, 꿀에 절인 대추를 써도 맛이 괜찮다. 실제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일반적인 말린 대추를 구매하기가 어려워 현지에서 판매하는 꿀에 절인 대추를 쓰기도 한다. 문제는 인삼이었다. 도무지 어디서 판매를 하는지 찾을 수가 없었고, 사드 문제로 중국이 보복을 하고 있는 마당에 중국산 인삼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투철한 애국심). 그래서 결국 보물 1호였던 캔 골뱅이를 개시했다.

집에 비빔면이 있었고, 캔 골배이도 있으니, 바로 골뱅이 소면이 가능했지만 골뱅이와 소면만 넣고 먹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소고기를 넣었다. 그냥 소고기가 아니라 무려 송아지 고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있어도 비싸서 못 먹는 송아지 고기를 인도에서 1kg에 7천 원에 구매할 수 있으니 안 먹을 이유가 없다. 속된 말로 안 먹으면 손해인 것이다.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뭄바이는 외국인들도 많기 때문에 허가된 업소에서는 정부 관할 하에 도축하여 판매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암소도 먹지만, 인도에서는 버펄로 (수소) 밖에 도축을 하지 않는다. 맛으로 따지자면 우리나라 한우와 비교할 수 없지만, 인도에서 이 정도면 찬송하고 경배해도 모자랄 판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복날을 보냈다. 때는 7월 22일...


7월 23일 아침에 갑자기 누가 초인종을 막 눌러서 혈압이 상승한 상태로 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웬 인도 아저씨 두 분이 슬레지해머 (일명 오함마), 곡괭이, 삽, 드릴을 들고 서 있었다. 순간 쫄았지만 속으로 '너네들은 잠자는 나의 콧 털을 건드렸어' 표정을 지으며 무슨 일이냐 그랬더니, 베란다를 철거하러 왔다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

멀쩡한 베란다를 왜 부시냐고 따졌더니 BMC (Mumbai Municiple Corporation)에서 허가를 받지 않은 구조물이기에 철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에서 허가를 안 받은 구조물이니 부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 저 아저씨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만화도 아니고 저 상태로 계속 부수면 나중에 서 있을 공간이 없을 것 같았고, 부서진 시멘트가 아래로 떨어지면 사람도 다칠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게 이게 결과물이었다. 위에 타일을 철거하고 베란다 구조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이럴 거면 애초에 왜 타일을 철거했는지도 이해를 할 수 없지만,  여기는 인도다. 이해를 하려고 하면 머리가 아프니 내가 손해 보지 않는 입장에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게 정신 건강상 최고다.

덕분에 바비큐 공간이 생겼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나?


1년 동안 거의 매일 배달 음식만 먹다 보니 사실 물리는 것도 있지만, 한국 음식이 먹고 싶었다. 한국에서 파견된 두 명의 인턴도 같이 있다 보니 추가적으로 소모되는 식비를 줄이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요리를 해 먹는 것이었다. 실제로 가격을 비교해보니 심하면 원래 식자재 값보다 300배 더 비싼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음식이 바로 감자탕이다.

솔직히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돼지감자를 구할 수 없기에 어깨 부분을 구매했고, 우거지를 구할 수 없어 무 순과 파로 대체를 했고, 감자도 빼먹지 않았다. 빨간 국물은 고춧가루와 간은 간장과 소금 등을 넣으니 어느 순간 완성이 되었는데, 맛이 감자탕이랑 똑같았다. 감자탕만큼 진한 국물은 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정말 오래간만에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어렸을 때 사우디 아라비에서 가장 즐겨 먹었던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샤워르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터키식 케밥이라고 많이 팔리는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똑같은 맛을 내는 터키식 케밥을 먹어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터키식 케밥은 우리나라 입맛에 맞게 되어 있어서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케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 맛을 내던 곳이 "파샤"라는 터키 식당인데, 문제는 가격이 엄청 비싼 편이라는 것이다. 사우디에서는 싸면 한 개에 350원 비싸도 천 원 정도인 반면 한국에서는 9천 원 정도의 가격이니 길거리 음식이 한순간에 고급 음식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와중에 델리 출장 중, 직원의 추천으로 Al-Bake라는 가게에 가게 되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제다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 점 중 하나가 바로 Al-Baik이다. 너무 유명해서 KFC도 고군분투 중이라는 얘기가 들리는데, 짝퉁으로 "Al-Bake"라는 가게가 인도에도 영업을 하는 것이었다. 

엄청 허름한 가게에 에어컨도 없고, 현지인들 없이는 혼자 갈 엄두도 낼 수 없는 그런 곳이었는데, 맛은 내가 한동안 잊고 있던 사우디의 향수를 다시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느끼함, 마늘 마요네즈, 빵의 두께 등, 정말 시간만 허락했다면 혼자서 50개는 먹을 수 있었을 것 같았지만, 이날 아그라로 출장을 가야 했기에 아쉽게도 4조각 밖에 먹지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갈 날이 있기를 바란다.


보통 사람들이 인도하면 떠오르는 관광지 중 하나가 바로 타지마할이다. 하지만 타지마할이 델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냐에 따라 다르지만, 국도를 선택할 경우 4시간은 기본으로 걸리니 부디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1시간 30분도 안돼서 도착을 한다. 운전을 맡은 직원이 고속도로 톨 비용을 아끼기 위해 국도를 선택했는데, 이 사실을 2달이 지나고 며칠 전에 알았다. 눈 뜨고 코 베였다는 속담이 이럴 때도 쓰일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도착하고 새벽부터 타지마할을 보러 갔다. 근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 없는 타지마할의 사진은 절대 찍을 수 없다. 새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한 가지 웃긴 점은, 현지인과 외국인의 입장료가 다르다는 점이다. 외국인은 현지인에 비해 거의 100배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선택권은 없다. 그래 봐야 2만 원 정도이니 크게 손해 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 가지 팁이 있다면 티켓을 절대 버리면 안 된다. 아그라에는 타지마할 이외에도 방문해야 할 곳이 많은데, 만약 방문한 티켓을 보유하고 있다면 다음 장소에서 입장료를 50% 할인받을 수 있다. 한 가지 더 있다면 입구에서부터 정부 인증받은 가이드들이 자기가 안내를 해주겠다고 PR을 시작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처럼 이상한 꼬마애가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경우는 없다. 가이드 고용이 비싸지는 않았지만, 싸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이드를 구해서 같이 다니면, 절대 가이드 없이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을 알게 된다. 특히 "아그라 포트"에서는 꼭 가이드를 구하기를 바란다.


타지마할 투어가 끝나면 나오자마자 바로 정면에 보이는 출구가 있는데, 그곳으로 나가면 대리석 공예 가게들이 모여있다. 

인턴 분이 낄끼빠빠를...잘 모르시는거 같다...

소규모 가게들과 대리석 가게들이 널려 있는데, 정부에서 공식 인증한 곳은 아그라 전체에서 딱 한 곳밖에 없다. 정부 인증 가게에서는 같은 제품이라 하더라고 품질에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우리처럼 추억거리나, 기념품으로 만족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곳에서 흥정을 해서 구매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가격을 엄청나게 뻥튀기를 해서 부른다. 실제로 중형 사이즈 체스판을 구매했는데, 원래 가격에서 60% 가까운 가격을 제시했더니 팔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그냥 나가려고 하자 바로 60%에 판다고 꼬리를 내렸다. 가격이 너무 비싸면 그냥 안사면 그만이다. 다른 가게에서도 똑같은 제품을 판다. 그러니 한 곳에서 가격을 깎아주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고 돌아서면, 어느 순간 대리석 공예품이 손에 쥐어져 있을 것이다. 

인심도 많이 후한 편이다. 새벽부터 출발을 하였기에 아침을 먹지 못해서 실신하기 직전까지 갔다. 대리석 체스판을 구매한 후 근처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사장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자기 손주에게 존니 뭐라 뭐라 하셨다. 순간 할아버지께서 한국말을 하시는 줄 알았다. 계속 존니 존니를 외치셨기에... 뭐지 싶었는데, 갑자기 손자가 알아 들었다는 듯이 안내를 하면서 자기를 따라오라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다 인신매매나, 장기를 적출당했다는 썰들을 하도 많이 읽어서 살짝 걱정이 앞섰지만, 이성보다는 본능이 먼저였다. 배가 고팠기에 따라갔다. 그렇게 데려간 가게의 이름이 "Joney's Place"였다. 

대리석 공예 품 중 하나

그 할아버지는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손자에게 조니 가게로 데려가라고 했던 뜻이었는데, 나는 잘 못 알아듣고 계속 존이라고 외치신 것으로 들었던 것이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매우 작은 가게지만, 구글맵에서도 평점이 좋은 가게로 소문한 집이다. 더 군다가 한식 메뉴가 따로 있다. 깨알 갓이 한글로 "김치 정말 맛있어요"도 귀엽다고 하면 할 수 있다. 가격은 현지식에 비해 비싼 편이지만, 인도에 있는 어느 한식 판매점과 비교해도 이렇게 저렴한 가격은 처음 봤다. 더군다나 신라면도 판매를 하는데, 당시 라면이 궁했던 우리 일행은 라면 하나만 보고 몹시 흥분을 했다. 같은 식당에 있던 외국인들은 구글맵을 보고 토마토 치즈 토스트를 많이 시켜 먹었는데, 우리 메뉴를 보고 궁금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이 가게가 3대째 이어져 오는 가게이며, 벽에는 개미들이 기어 다녔지만, 꽤 깔끔하게 인테리어가 디자인되어 있었고, 에어컨도 빵빵하게 잘 나왔다. 그리고 젊은 사장이 기본적인 인사말은 이탈리아어, 영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어지간한 인사말로 대화를 했다. 심지어 우리와는 한국말로 대화를 했는데, 한국이 좋아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힘들었던 아그라 일정에 단비 같은 식당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정도가 지난 한 달 정도의 기간이었다. 브런치가 최대 20MB 정도의 사진 및 동영상이 업로드가 되어서, 나머지 기록은 다음 일기에 기록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밀리지 않고 쓰라고 했나 보다. 

한국의 연휴가 생각보다 길어서 힘들다. 업무가 진행이 안 되는 건 둘째치고 배가 아파서 힘들다. 너무 길다 한국 연휴. 말도 안 되게 길다. 왜 내가 인도 있을 때 그렇게 긴 것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십팔 년 후에나 다시 그런 연휴가 온다는데 진짜 십팔 년 후에도 인도에 있으면 어쩌지?


안내의 일기처럼, 나도 내 인도 일기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앞으로는 대화를 하는 방향으로 써보려고 한다. 인도 일기이다 보니 인도스러운 이름으로 만들어주고 싶었고 그래서 계속 고민한 끝에 다음 일기부터는 너를 이꾸발이라고 부를게. 안녕 이꾸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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