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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섷잠몽 Sep 15. 2022

달리기를 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감정을 만질 수 있단 것입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손 안에 들고서 요리저리 매만져보는 거죠. 무게는 어떤지, 온도는? 모양은? 이 감정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참을성 있게 지켜보면서 만집니다. 제가 보았을 때 감정이 달라졌다기 보다 감정을 올려둔 손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무겁든 가볍든 거뜬히 들 수 있는 근육이 생겼고, 피부가 질겨져서 뜨겁고 차가워도 견디게 됐죠. 그리고 미세근육과 신경으로 예민해지면서 손놀림도 좋아졌습니다. 때론 감정은 너무 뾰족합니다. 살과 마음을 찌릅니다. 너무 둥글거나 미끄러워서 빠져나가기도 하죠. 달리면서 이런 감정에 필요한 손동작은 어떠해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손이 튼튼해지니 이젠 감정을 피하지 않고 오롯하게 붙잡습니다. 아니면 손을 활짝 핀 상태에서 45도 각도 좌우로 흔들면서 ‘잘가 그동안 고마웠어. 언제나 기억할게’ 보내게 되죠. 붙잡는 거 만큼이나 보내주는 일 역시 중요하니까요.


몇몇 감정들이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짜증에 대해서 말해볼까 합니다. 저는 감정의 고저가 심한 편인데 감정이 저고도를 배회할 때 짜증은 수면 아래 상어처럼 도사립니다. 무언가 피냄새를 맡으면 이빨을 드러내놓고 표면으로 나오죠. 별 이유도 없는데 사람들의 말이 거슬리고, 내가 뭘 요구하면 일단 짜증부터 냅니다. ‘싫은데?!’ 그런데 달린 지 1개월하고도 매일 5km대에 접어들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저는 제 감정을 수치화해서 그래프로 만듭니다. 감정수치가 0에 근접하면서 그 고저가 +-5점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평균값에 근접함과 동시에 감정폭이 좁아진 거죠. 저는 삶의 질이나 자존감이 높은 게 꼭 좋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뭐가 됐든 고점과 저점의 차이가 적어야 건강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제 감정은 건강해지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짜증을 내야할 상황인데 ‘흠칫뿡. 생각하기도 귀찮다. 넘어가자’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런 생각도 잘 안하고 의식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달리기로 정신 건강이 좋아진 건지, 달리기에 지친 나머지 짜증낼 기운조차 없는 건지 그건 모르겠네요


 두 번째로 상대방의 짜증을 받는 일입니다. 간혹 상대의 짜증을 받게 되면 저 역시도 짜증을 드러냅니다. 너무 당연한 반응이죠. 그런데 일상에서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혹 친구 연인 관계나 직장생활 등등. 제가 하는 일 중 하나는 손님 맞이인데 간혹 짜증스럽게 행동하는 손님이 있습니다. 달리기를 하지 않을 때 상대가 송곳으로 말하면 저도 송곳으로 말하죠. 가끔은 송곳이 오면 말뚝을 들이밀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달리기를 한 이후부터 ‘흠… 말을 말자.’ 라고 넘깁니다. 굳이 거기에 감정 써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고 제 마음 에너지만 낭비하니까요. A라는 자극이 들어오면 곧잘 A’로 반응하면서 제 감정을 갉아먹곤 합니다. 하지만 뭐랄까 여유 같은 게 있습니다. 이 자극은 무엇일까. 바로 반응하지 않고 생각을 하죠. 일단 멈추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의 감정과 저를 분리하는 겁니다. 그건 너의 짜증이지 나의 짜증이 아니고, 그건 너의 짜증이지 그게 나는 아니야. 네가 짜증을 내는 건 내가 잘못했거나 나쁘기 때문이 아니고 너의 문제야. 그러니까 나는 달라진 게 없어. 그러니까 화도 안나, 같은 겁니다. 물론 화가 나긴 하는데 지배당하지는 않습니다. 짜증을 내는 사람은 대체로 본인 문제 때문에 화를 냅니다. 달리기를 하면 체력이 좋아지는 만큼 마음 씀씀이의 여유가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알아차리는 거죠. 그건 당신의 문제.


물론 도가 지나쳐서 그 짜증이 인격적,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그에 따라 저도 대응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상당히 드물죠. 그리고 제 잘못에 대한 짜증이라면 제법 침착해집니다. 생각을 하죠. 내가 뭘 잘못했나. 잘못했으면 빠르게 말하고, 긴가민가하면 직접 물어보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외부에 맞서는 일과 잘못을 인정하는 일 모두 체력, 에너지, 여유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리고 꼭 짜증을 받아내는 일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가령 친밀한 관계에서 짜증을 받아낼 때. 분명한 이유로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안 그런 경우도 많습니다. 날씨 때문일수도 있고, 잠을 잘 못 잤거나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모릅니다. 생물학적 생리적 이유도 있을테죠. 그런 짜증 일시적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죠. 근데 그때 상대의 짜증을 받고서 ‘여기 좀 앉아봐. 왜 그렇게 짜증내? 나도 짜증나잖아. 싸우고 싶은 거야?’ 이럴 순 없습니다. ‘오늘은 건들지 말자. 침묵하는 거야. 나는 말을 할 줄 모르잖아’ ‘시간 지날 때까지 숨어있자’ 그러는 편이 낫습니다. 짜증의 원인을 상대에게서 찾기 보단 그냥 시간의 문제로 치부하는 거죠. 그러면 좀 부드럽게 넘길 수 있습니다.


이상하겠지만 달리기는 일종의 배터리 충전기 같은 겁니다. 몸은 에너지를 쓰는데 마음 에너지는 자꾸 채워지죠. 아마 몸의 지방이 마음을 채우는 게 아닐까 합니다. 몸이 후덕한 사람 중에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이 간혹 있죠. 저는 유산소 운동으로 지방을 태워서 마음 에너지를 채우나 봅니다. 에너지를 쓰는데 다시 충전된다? 영구기관 같은 건가. 유사 과학이니 진지하게 듣진 마세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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