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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PD Mar 05. 2021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무대 on/off

https://www.newsworks.co.kr/news/photo/201912/421100_316697_1637.jpg

인성이 논란이 된 한 아이돌. 나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녀를 가까이에서 세 번 만났다. 내가 받은 인상은 두 가지였다. 정말 예쁘다. 눈치를 많이 본다. 말수가 적다. 상대를 쳐다보는 눈빛이 고고하다. "얼음공주"라는 별명도 그래서 생긴 것 같다. 

https://i.namu.news/file/namunews/87/87a8d5d1ab2f73e042b8aee4cc274be74aa2667d13bd2fbdd41ae8e5146f224

넘사벽으로 예뻐서 비주얼도 이 세상이 아닌 데다가 어딜 가든 낯설어하는 성격 탓에 웬만한 붙임성 좋은 스태프 아니고서는 그녀와 말을 섞기란 힘든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그녀가 까다로운 성격을 가졌을 거라 상상한다. 그렇게 잠깐 스치듯 본 그녀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이 소문이 되어 일파만파 퍼져나간다. 

나 아는 사람이 
 방송국 직원인데
연예부 기자인데
 강남 미용실 다니는데
그 친구가 그렇다더라


이런 상상을 해본다. 그녀가 만약에 아이돌이 아니라 영화 작품이나 CF를 할 때만 등장하며 최소한의 노출로 작업을 하는 "배우"였다면 어땠을까? 그냥 그러려니 하며 지나가지 않았을까? 오늘 기분이 별로인가 보다 하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대중들이 갖는 "배우"와 "아이돌"의 선입견도 무시할 수 없다.


아이돌은 무대가 있는 현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곧 본인이고 거기서 보여주는 언행이 그 사람의 성격이라고 생각된다. 배우는 평소엔 자신의 모습으로 살다가 작품에 들어가게 되면 시나리오에 쓰인 대사와 지문으로 가상의 인물을 소화해낸다. 액션이 스타트되면 가상의 인물이 되고 액션이 끝나면 본인으로 돌아온다. 아이돌 가수에겐 본인이라는 자아 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배우에게는 작품이나 CF에 따라 여러 가지 사회적 자아가 생기게 된다. 

최민식은 “영화 촬영을 하면서 엘리베이터에서 친근감을 표시하던 아저씨가 반말을 하자 ‘이새끼 왜 반말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에게 섬뜩함을 느꼈다”며...

메쏘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의 경우 자기도 모르게 실생활에서 배역의 성격이 표출되어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연기자 본인도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니 미디어를 통해서만 소식을 듣는 대중들에게 배우는 어떤 존재일까? 묘한 신비감을 주는 존재일 것이다. 


가수들은 항상 무대에 서지만 항상 낯선 곳이 무대이다. 자기 기분과는 상관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노래를 해야 하는 아이돌 생활. 우리도 낯선 곳에 가거나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면 주변을 열심히 살핀다. 이것은 일종의 불안감의 표출이다. 나는 어쩌면 그녀가 연예인들이 흔히 겪는 공황장애 혹은 그에 상응하는 어떤 증세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톱 아이돌 답지 않게 수줍음과 낯가림이 컸기 때문이다. 

https://i.ytimg.com/vi/KZp_INVSEmI/maxresdefault.jpg

흔히 아이돌이라 하면 어디서나 잘 어울리고 에너지를 뿜어내는 무한 긍정 에너지를 가진 존재로 생각하기 쉽다. 항상 웃어야 하고 기운이 넘쳐야 한다. 그러지 못할 거면 굳이 많은 직업 두고 아이돌을 택했냐면서 비아냥대기 일쑤다. 물론 프로 연예인이라면 자기 기분에 따라 태도가 되면 안 될 것이다. 


속으론 열불이 나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미소를 유지해야 한다. 직업적 숙명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안의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는 경우가 생긴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직업적 특징은 배우나 아이돌 가수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빈도의 차이가 엄청나다. 배우는 1년에 1~2 작품을 하고 자기 씬이 끝나면 상당한 시간을 휴식할 수 있다. 자기 기분을 잘 다스릴 시간적 여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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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돌 가수는 어떨까? 활동 기간은 3~6주 정도고 1년에 1장 정도의 정규 앨범, 디지털 싱글 2곡 정도를 낸다. 그리고 행사와 콘서트를 뛴다. 광고와 자체 영상물을 찍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면 1년 내내 휴식하는 날이 손꼽을 수 있을 정도다. 앨범을 위해 노래 연습, 녹음, 안무 연습, 뮤직비디오 촬영 등은 기본이다. 그녀는 톱 아이돌이니 쉴틈이 없었을 것이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을 것이다. 몸이 힘들면 좋은 태도를 유지하기 힘들다. 

http://images.khan.co.kr/article/2020/10/22/l_2020102202001024400202651.jpg

그녀를 덮어놓고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본인도 사과문을 올리며 반성하고 있으니 아마도 이번 사태로 깨달은 것이 많을 테다. 나는 이런 문제가 생긴 데에는 매니지먼트 쪽의 잘못도 있다고 본다. 항상 곁에서 그녀의 행동과 언행을 보아 왔을 텐데 따끔하게 지적하거나 충고하질 못했다는 점이 그렇다. 


인기가 많다고 해서 의전에만 치중한 매니지먼트를 했다면 그녀도 자기의 행동이 잘못됐는지 몰랐을 수 있다.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사회생활이라고는 아이돌 가수가 전부이지 않은가! 때론 가족처럼, 때론 선생님처럼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매니지먼트의 길이라고 본다. 


나는 상상해본다. 그녀가 된 듯이...


나는 누가 뭐래도 대형 기획사의 톱 아이돌이다. 이제 내려올 일만 남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힘겨운 일이다. 게다가 나는 아이돌 중에서도 나이가 많다. 91년생이면 서른 살이다. 매일 나이 어린 신인 가수들이 나온다. 그들과 같은 무대에 선다. 불안하다. 창피하다. 평생 할 수 없는 아이돌 그룹 활동. 소녀시대 태연 선배처럼 솔로로 전향해서 가수 생활을 이어가든지 윤아 선배처럼 배우의 길을 걷든지 혹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든지. 앞날에 대한 걱정이 많다. 이상하게 신경질이 난다. 내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서 좀 더 완벽해지기 위해서 예민해진다. 어딜 가나 다들 나보고 예쁘다고 한다. 더 완벽해져야 한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나를 돋보이게 서포트해주는 스태프들도 완벽해지면 좋겠다. 요즘 말 한마디가 곱게 안 나온다. 


그녀가 걱정이 많고 스트레스가 크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짜증 내거나 화를 내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완벽한 그녀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바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지금이라도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았다면 그리고 개선의 의지가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인생의 전환점이 어디 있을까? 이제부터 주변을 둘러보고 타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며 영리하게 연예인 생활을 하길 바란다. 무대 위에서 만큼 무대 아래에서도 사랑 받길 바란다. 

https://www.koreatimes.net/images/attach/115366/20181217-1512186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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