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tPD Mar 30. 2021

앰비규어스 vs WORLD ORDER

비슷하지만 다른 춤꾼들

(좌)한국.앰비규어스 댄스팀 2020.7  (우)일본.WORLD ORDER 팀 2012.9

한국관광공사의 필더리듬 영상을 처음 접한 순간 기시감이 들며 스쳐 지나가듯 떠오른 뮤지션이 있었다. 바로 일본의 WORLD ORDER라는 일렉트로닉 뮤지션 겸 댄스팀이다. 7인의 팀이 본인들의 노래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로봇춤을 추는 것이 특징인 팀이다. 마치 HONDA사의 아시모 로봇이 걷듯이 보행을 하는 춤이 트레이드 마크다. 그리고 복잡한 기계장치가 돌아가는 것 같은 안무를 선보인다. 칼군무 뺨치는 태엽 댄스다. 뮤비감상


WORLD ORDER가 결성된 것은 2009년이고 내가 처음 접한 것은 2012년에 발표한 "PERMANENT REVOLUTION"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였다. 이 곡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일본 뮤지션인데 서울의 관광 명소에서 뮤직 비디오를 찍었기 때문이다. 또 노래 속에 심오하게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더불어 동북아의 평화까지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신기하기도 했다. 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의 노래는 세계평화, 인간 문명, 환경파괴 등에 관심이 많다. 나무 위키 참조


필더리듬 부산편에서 수트를 입은 앰비규어스팀. 2009년부터 현재까지 WORLD ORDER팀은 슈트만 입는것이 특징이다.


#어그로 아님

필더리듬 관광 홍보 영상이 WORLD ORDER의 뮤직비디오를 카피했다는 어그로를 끌려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표현 방법을 보면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에 글을 써보는 것이다. 필더리듬 제작자가 WORLD ORDER팀의 영상을 참고했든 안 했든 별로 상관이 없다. 단체로 군무를 추는 것은 아마도 인도 사람들이 최고일 테니까...

원조 카레국이 있으니 둘 다 눈 깔자...


# 비슷하지만 다르다

뮤직비디오라는 장르 안에서 노래 + 춤 + 관광명소라는 재료를 섞었다는 점에서 필더리듬과 WORLD ORDER의 포맷은 같다.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의 생크림 케이크가 같은 생크림 케이크이어도 똑같지 않듯이 이 둘도 자세히 보면 닮은 것이 한 개도 없다. 


*옷이 다르다

WORLD ORDER는 항상 슈트만 입는다. 앰비규어스는 한복을 재해석한 힙한 옷을 입는다. 부산 편에서는 특이하게 검은 슈트에 수경과 수영모를 착용했다. 


*성별이 다르다

WORLD ORDER는 회사원들의 애환을 다룬 "SINGULARITY"라는 곡에서 여사원 역할을 한 여성 댄서들과의 콜라보를 제외하면 항상 남자로만 구성되어있다. 앰비규어스는 원래부터 남녀 혼성이다. 


(좌)이날치 밴드*앰비규어스   (우)심지어 부도칸에서 공연한 WORLD ORDER. 2013

*음악이 다른데 비슷하다

WORLD ORDER의 음악은 마치 그 옛날 장혁이 랩 하듯이 읊조리듯 깔리는 노랫말에 단조로운 비트와 전자음으로 되어 있어서 도대체 다른 노래와 이 노래가 다른 노래인지 알 수가 없다. 교묘하게 믹싱 하면 아무도 모르고 넘어갈 듯싶다.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가사 수가 적고 리듬 반복이 많아서 춤을 구성하기에 좋다.


많이들 알다시피 필더리듬의 노래는 이날치 밴드가 민요와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만든 곡이다. 현재 쓰지 않는 고어로 되어있어서 가사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듣는 사람들도 "범 내려온다" 정도만 알아듣고 무한 반복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로 들리는 "약일레라"는 검색해보지 않고서는 무슨 뜻인지 짐작도 하기 어렵다. 다행인 것은 역시 흥겹게 반복되는 가사들이 있어서 춤을 구성하기 좋다는 것이다. 


이 두 팀의 노래는 다르지만 기능은 비슷하다. 반복되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 덕에 춤 추기 좋은 노래가 된 것이다. 이날치 밴드의 베이스가 주는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느낌의 비트. WORLD ORDER의 전자음 비트. 모두 춤을 위한 비트다. 춤도 못 추고 음악을 잘 모르지만 감히 써본다.


(좌)앰비규어스. 무질서 속의 질서   (우)WORLD ORDER. 질서정연

*춤은 정말 다르다

앰비규어스는 언뜻 보면 제각기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있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가 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고 있다. 의상이 다 다르고 남녀도 다르고 팔다리 길이도 달라서 다른 동작으로 보일 때가 있지만 모두 같은 동작 중이다. 도열을 바꾸든지 이동을 하든지 하는 순간에만 군무가 풀어지고 동작은 모두 일치한다.

자세히 보면 모두가 한 동작

춤 동작은 아주 단순하고 가끔은 우스꽝스러울 수 있지만 의미가 있어 보인다. 특히 "범내려 온다"는 주인공이 호랑이인지라 역시나 호랑이를 표현한 동작이 많다. 아무래도 현대인들에게 전달력이 약한 고어로된 가사이기 때문에 이러한 안무 창작을 하지 않았나 싶다.

호랑이의 위풍 당당한 걸음과 신체 부위를 보여주는 동작들


WORLD ORDER의 기본 춤은 흔히 말하는 로봇 춤이다. 사람의 몸짓이 아닌 기계의 메커니즘을 표현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던 아시모처럼 걷는 동작이 WORLD ORDER의 전매특허 동작이다. 팔다리가 등가속도로 움직이지 않고 처음엔 빠르고 뒤로 갈수록 느려지며 정확한 착지 지점을 찾는 로봇의 습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로봇이 모터를 사용해 관절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담아낸 것 같다.

사람을 흉내 낸 로봇을 흉내 내는 댄스라니

WORLD ORDER 안무의 가장 큰 특징은 개개인이 집단을 이뤄 하나가 되는 모습이다. 줄지어서 걷기, 지네처럼 걷기, 톱니바퀴가 물려 돌아가는 모습, 도미노처럼 연쇄작용을 만드는 등의 안무가 일품이다. 일본인들이 좋아라 하는 和의 문화가 잘 녹아나는 안무다. 전체가 곧 나고 내가 곧 전체가 되는 집단 일체감. 기꺼이 거대한 기계의 톱니가 될 수 있다는 잠재의식과 숙명이 깔려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국민성도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해서 그런 게 아닐까? 너무 나갔나?

개인의 동작을 하나만 떼어 보면 보잘 것 없지만 서로 연결되어 하나를 이루면 멋진 안무가 된다

앰비규어스팀은 개인 모두가 동일한 안무를 추면서 다른 듯 같은 통일감을 주고 WORLD ORDER 팀은 개인이 집단 안무의 일부를 소화하며 비로소 전체가 된다. 안무를 구성하는 개인과 집단의 차이가 이 두 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일개 댄스팀을 비교해보고 양국의 국민성이나 문화를 논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하지만 일부의 관찰을 통해 전체를 가늠한다는 것이 세상을 보는 방법이기 때문에 아주 의미가 없다고 볼 수도 없다.



# 결국 진심

문화는 어떤 것이 우월하다고 평가할 수가 없다. 사회 시간에 배운 문화 상대성 때문이다. 위 두 팀의 작업물을 놓고 어떤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하는 것은 개인 취향이다. 어떤 것이 더 뛰어나다고 섣불리 말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두 팀 모두 완성도가 매우 높다. 


기획한 의도를 담아내기 위해 모두 적절한 방법과 재료를 썼고 만듦새도 역시 좋다. 한국의 관광 홍보를 위해 한국적인 재료를 세련된 방식으로 담아낸 필더리듬 시리즈와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인간 세상에 대한 풍자와 더불어 흐트러짐 없이 로보트 춤으로 일관하고 있는 WORLD ORDER 팀의 작업들도 모두 훌륭하다. 둘 다 훌륭하다. 


두 작업 모두 진심을 담았고 그 진심이 보는 이로 하여금 느껴지게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심심하고 할 일이 없다면 유튜브로 감상에 나서자!

필더리듬 시리즈

WORLD ORDER

이전 02화 편집 피디 구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