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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PD Jul 20. 2021

싫든 좋든 선배

우리 모두는 선배가 되어간다

회사에 10년을 다니다 보니 선배와 후배 사이에 낀 중배(?)가 되었다. 좋은 선배를 많이 겪어보기도 전에 후배들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요즘 생각을 해본다. 과연 좋은 선배란 어떤 선배인가? 선배란 존재가 필요한 걸까? 동료면 충분한 거 아닐까? 

https://fs.jtbc.joins.com/prog/drama/pretty/Img/site/Main/20180521_090817_5309(0).jpg

# 밥 잘 사 주는 좋은 선배

입사하는 신입들을 불러내어 맛있는 식사 한 끼 대접해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선배들이 있다. 반면에 복도에서 후배들이 용기 내어 인사를 해도 모르는 사람인 양 지나가는 선배도 있다. 후배들이 인사해주기를 기대했는데 그냥 지나쳐서 속으로 분노하는 선배들도 있다. 


"개는 나한테 인사도 안 하더라!?"


그러면 후배들은 모여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 선배랑은 밥 한 끼 먹은 적 없어'


밥은 먹었니?로 안부를 묻는 밥심, 밥 정의 한민족에게 밥은 정말 중요한 소통이다. 첫인상 때문에 서로 오해를 하고 있던 사이라도 함께 밥을 먹으면 오해도 풀리고 서로의 입장도 생각하게 된다. 비즈니스 미팅을 할 때에도 함께 식사를 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도 여유가 생기게 된다. 


좀 나아간 이야기지만, 듣자 하니 요새는 소개팅을 할 때 일부러 오후 3~4시쯤 만나서 차를 먼저 마시고 상대가 마음에 들면 저녁 식사를 한다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굳이 돈과 열정을 쏟아가며 식사 자리를 갖지 않는 간편한 만남 문화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결례도 아니라고 하니 참 쿨하다.


샛길로 빠졌다. 아무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밥을 사준 선배는 나쁜 선배일 확률이 낮다. 밥을 얻어먹은 후배는 선배에게 인사를 안 하고 지나칠 리 없다. 그 이후부터의 사연은 둘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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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험담"만" 하는 선배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회사 험담을 늘어놓는 선배들이 왕왕 있다. 일 때문에 고민 상담을 해주기 위해 회사의 험담을 일부 할 수는 있으나 시작부터 끝까지 험담이라면 곤란하다. 후배 입장에선 앞으로 이 회사를 더 다녀야 할 시간이 선배보다 더 많을 텐데, 이건 위로도 아니고 응원도 아니고 그냥 ㅈ됐다는 말로 밖에 안 들린다.


이상적이겠지만 좋은 선배라면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지점에서 회사의 한계점과 그걸 극복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럼 사람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이선균 같은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다. 결국 커다랗고 단단하게 응고된 오래된 바위 같은 이 놈의 회사는 잘 바뀌지 않는다. 조직이라는 것은 사람의 집합체다. 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일 거다.


선문답 같겠지만 결국 내가 바뀌어야 회사도 바뀐다. 내가 바뀌고 옆자리 동료가 바뀌고 상사가 바뀌어야 부서가 바뀌고 부서가 바뀌어야 회사가 바뀐다. 


"그냥 이놈의 회사는 그래, 네가 참아"


이 말은 수많은 어떤 선배들 입에서 자동적으로 나오는 위로다. 그리고 강한 중독성이 있다. 어느덧 내 후배에게도 이 말로 위로를 하고 있다. 나는 회사 칭찬보다 험담을 많이 하는 선배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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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칭찬만 늘어놓는 선배

엄청난 퍼포먼스와 집중력으로 단기간에 좋은 성과를 내서 다른 선배들보다 승진도 빨리하고 대내외적으로 인정을 받는 선배들이 있다. 후배들에게는 롤모델로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다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잘난 선배들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자기가 이룬 업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중독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 성공 스토리가 한 번 들으면 좋은 가이드가 되겠지만 만날 때마다 반복되면서 시작된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환경이 많이 변해서 그런 성과를 다시 내기 힘든 레드오션 시장이기 때문이다. 후배들에게 그런 무용담은 희망고문으로 들린다. 


자화자찬뿐 아니라, 본인의 실패담을 후배에게 공유하는 선배는 진짜다. 꽤나 많은 도움이 된다. 본인이 겪어봤던 현실의 벽을 어떻게 뚫고 헤쳐왔는지, 본인의 실수를 어떻게 만회했는지. 성공의 이면에 감추어진 실패담 역시 중요한 유산이다.


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0/09/07/102815351.1.jpg

# 후배의 공을 가로채는 선배

성공지향의 욕심이 많은 선배인 경우 후배와 함께 공동작업을 한 후 그 성과를 독차지하는 선배가 있다. 혹은 은근히 자기가 다 한 거라는 식으로 돌려 까는 경우도 있다.


"아이고 그럼요~ A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죠. 경험이 적어서 제가 많이 봐주긴 했는데..."


직급 차이가 별로 없는 대리-사원, 과장-대리, 차장-과장 등의 관계에서 많이 벌어지는 일이다. 승진을 하게 되면 똑같아지는 한 직급 차이의 경우 성과에 대해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순간 짜증 나는 것은 둘 때 치고 가장 큰 부작용은 이런 선배와 일을 하게 되면 열심히 하기 싫어진다는 점이다. 열심히 안 하면 성과가 나오기 힘들고 성과가 안 나오니 응당 받을 인사 가점도 못 받게 된다. 다 같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헌신적으로 서포트 한 후배의 공을 가로채는 뻔뻔한 선배는 무능한 선배보다 더 나쁜 선배다. 이런 치졸한 선배와 일을 할 때는 똑같이 치졸하게 가야 한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내가 한 것 당신이 한 것. 당신이 결정한 것 내가 제안한 것. 그리고 인사 평가 후에 이 기록을 근거로 시정을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힘들더라도 노골적으로 이 선배와 헤어질 수 있도록 계략을 짜야한다.


https://lh3.googleusercontent.com/proxy/Ba6iIIMlmK2EC9MiaLS8qfqqR9AO2ttkuczhkyB9zwi90obyoq0it_TtTI3N

# 완벽한 선배

일도 잘하고, 밥도 잘 사주고, 고민도 잘 들어주고, 성과도 잘 나눠주고, 퇴근도 일찍 시켜주고, 휴가도 눈치 안 보고 쓰게 해 주고, 기념일에 작은 선물도 주고, 지각해도 실드 쳐주고, 커피도 잘 사주고, 회사 복지도 잘 알려주고, 해외 출장도 양보해주고, 주요 인맥도 소개해주고.... 


이런 완벽한 선배가 있을까? AI로 이를 구현한다고 해도 아마 코딩이 꼬일 것 같다. 일을 잘하는 로직에 맘 놓고 휴가 쓰고 지각도 무사통과에 칼퇴근까지 입력하면 아마 에러가 뜰 것 같다. 역시나 균형이 중요한 것 같다.


다 같이 일 하고 월급 받는 사람들. 선후배.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지면 선후배 관계는 틀어지게 되어있다. 일을 너무 우선시해서 후배의 생일에도 야근을 시킨다던가, 후배를 아낀다고 후배가 저지른 비리를 덮어준다거나 하는 것은 일과 삶의 워라밸이 깨진 것이다. 


선후배 사이에도 워라밸의 저울이 있다. 일은 못 하면서 착하기만 한 선배를 후배들이 따르지 않고, 성격은 개판이면서 일만 잘하는 선배 역시 버림받는다. 반대로 일은 잘 하지만 싹수없는 후배를 꺼리고 일은 한 개도 못 하지만 말은 잘 듣는 후배를 싫어한다. 


결국 우리는 완벽해질 수 없다. 완벽한 선. 후배는 없다. 건전한 워라밸을 유지하며 서로 존중하는 선후배가 가장 바람직한 선후배 관계일 것이다. 


# 어느 카드회사 직원의 명언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선배와 후배, 상사와 부하로 묶인 관계. 이 관계는 영원할 것처럼 우리를 옭아맸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닌 관계다. 당장은 사표를 쓰면 끊을 수 있고, 소원수리를 넣어서 다른 부서로 옮기면 그만이다. 심지어 갑자기 회사가 부도나면 모든 게 끝이다. 이렇게 약한 고리로 연결된 관계가 바로 선후배 관계다.


MZ 세대의 인생에서 일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물론 MZ세대 중에도 일이 목적이나 목표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MZ 이전 세대들에게 일은 인생의 뼈대라는 점이다. 그래서 일을 대하는 자세부터가 다르다. 


위에 예로 든 카드회사 직원은 대리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위로는 과장, 차장, 부장이 즐비하다. 밑으로는 사원뿐이다. 대리라는 직함을 달았지만 마음만은 아직 사원처럼 가벼울 것 같다. 그래서 저런 모토를 모니터에 떡 하고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에 저분이 과장만 됐어도 "일보다 제 인생이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외치고 다닐 수 있었을까? 그럼 팀원들을 관리하며 과업을 수행하는 관리자로서 일이 진행될까? 웃픈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 카드회사 대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한 번씩 되뇌는 명언이 됐으리라 본다. 

https://dispatch.cdnser.be/cms-content/uploads/2021/07/03/f1d9d2bb-878b-4164-8371-96aa85fedbb5.png

하지만 숨은 반전이 있다. 카드회사 대리가 찍은 브이로그를 보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나온다. 말만 저렇게 하지 사실은 일중독자 아닐까? 싶을 정도다. 결국 그 대리님은 일하는 시간 동안은 일에만 전념. 칼출근+칼퇴근의 근면성실함을 보여줬다. 그리고 일과 후 시간에는 가정에도 충실하고 인생 계획을 알차게 세웠다. 


이런 면면을 볼때 카드회사 대리님의 명언의 참뜻은, 일보다 인생을 우선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라 본다. 그동안 뒤로 미뤄온 인생도 챙기자는 뜻으로 이해해야 건전하다. 일만 멋지게 해내고 집에서는 개판인 직장 상사를 존경할 수 있을까? 자기 취미를 위해 일은 뒷전으로 내팽개친 후배는 과연 회사에서 필요한 존재일까?


카드회사 대리의 명언을 청개구리 화법으로 거꾸로 이야기해본다면


이 회사에서 나를 뽑아줬고, 회사는 망하지 않아야 하고, 나는 살아야 한다.

원래 명언이 인생을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라면, 거꾸로 버전은 일을 해야 할 이유가 된다. 일 안 하고 노는 선배는 무시하고 일만 시키는 선배는 피해 다니자. 일 안 하고 노는 후배를 혼내주고 일만 하는 후배는 퇴근시키자. 머릿속에 떠올려지는 좋은 선후배가 있다면 잘 관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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