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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PD Dec 03. 2021

내성적 내 성격 1

마흔 살 내향형 인간의 회고

6년간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6명의 선생님이 나에 대해서 표현한 문장은 이렇다. 


"내성적인 성격이나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해냄"


나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던 것 같은데 그들 눈에 나는 내성적인 아이였나 보다. 


내성-적 內省的: 겉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것


기억을 돌이켜보니 말수가 적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옆자리 여자 짝꿍과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 했으니 말이다. 사실 그 시절엔 여자 짝꿍에게 말을 걸면 세상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어찌 됐든 선생님들이 옳게 본 듯하다. 


다만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머릿속은 시끌시끌하다고 할까? 그래서 나는 당시로서 말이 없다는 생각은 하지 못 했던 것 같다. 외부로 발화를 하지 않았지만 나는 무수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상상... 


어머니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기억이 맞다면) 초등학교 3학년쯤 내가 숫기가 너무 없다며 웅변학원을 보내셨다. 


숫-기 활발하여 부끄러워하지 않는 기운


내성적이지만 뭐든지 충실히 해내던 나는 역시 웅변학원도 빠짐없이 나갔다. 학원에 가는 걸 싫어하지도 않았다. 웅변할 때는 연단에 서서 쩌렁쩌렁 소리쳤지만 연단만 내려오면 다시 평범하고 조용한 아이가 되었다. 


내성적이라고 해서 무대 공포증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웅변대회에 나가서 최우수상도 받을 만큼 열심히 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웅변을 할 때 묘한 심장 떨림을 즐기기도 했다. 


교우관계도 한두 명 친구와의 관계가 편했던 것 같고 세명 이상이 되면 사실 버거웠다. 친구 둘과 길을 걸어가면 나는 항상 앞에 둘을 세우고 뒤따라 걷곤 했다. 나는 그 뒷자리가 편했다. 대화에 끼려고 비집고 들어가는 게 참 힘들었다. 


그렇다고 외톨이로 지내진 않았다. 여느 남학생들처럼 축구를 하고 다 같이 햄버거 가게를 가는 일상적인 단체 활동들은 다 했다. 다만...


내가 버거웠던 것은 "대화"였던 것 같다. 


대화 對話 :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


지금 생각하면 유년기 시절 내게 약간 자폐성 기질이나 함묵증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든다. 옆자리 짝꿍에게 먼저 말 거는 일도 거의 없었다. 누가 먼저 말을 걸거나 질문하지 않으면 딱히 말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아무것도 아닌 스몰 토크를 던지며 이끌어내는 대화가 힘들었다.


(방송국 이전에 일반 회사에 먼저 들어갔던) 신입사원이 되어 부서 배치를 위한 상담을 받았을 때 인사팀 선배를 통해 알았는데,  내게 부족한 것이 동조성이라고 했다.


동조성  (同調性) : 주위 사람과의 사이에 벽을 두지 아니하고 잘 어울리는 성질


나는 다른 사람과 친해지기 굉장히 힘든 성격을 갖고 있다.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친해지면 엄청난 친밀감을 보이지만 이 벽 자체가 굉장히 견고해서 어지간해서는 뚫기가 힘들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동창들이 다 친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딱히 정의 내리기 힘들지만 내 기준에 친구라고 부르려면 꽤나 높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나와 친해진 사람들은 내가 처음엔 정말 차가운 사람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증언이 많다. 알고 보니 재미있고 유쾌하고 장난도 많이 친다고 한다. 그런데 당연한 것 아닌가? 처음 만난 낯선 사람한테 나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점이 생긴다. 내가 살갑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면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면 되는 거 아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 친해지려고 다가오면 뒤로 물러났다. 상대방이 이 만큼 다가오면 저만치 달아났다. 내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과 시간이 되지 않으면 경계하고 회피했다. 


(쓰다 보니 성격 참 이상하네)


이런 성격이 큰 단점으로 부각된 때가 바로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해서였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해서 28개월이나 학교를 떠나 있다고 돌아오니 학교에 아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1학년 때 공통과목 같이 듣던 아웃사이더 친구들도 다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서 용기 내어 학과 개강파티에 제 발로 간 적이 있다. 


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사하고 지냅시다. 지금 많이 외롭네요.. 정도의 액션이 아니었을까?


나 같은 성격에 저 정도 했으면 정말 궁지에 몰렸던 것이다. 어찌 됐든 조금씩 친해지는 선후배들이 생겼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고 나는 또 낯을 가리고 있었다. 곁을 주지 않고 벽을 치고 있었다. 친근하게 인사해주고 밥 먹자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낯설었다. 불편했다. 그냥 다들 빈말로 하는 것 같았다. 


구제불능의 철벽형 인간인이었다. 


(여기까지 쓰는데 너무 힘들었다. 팩트를 되짚으며 성격을 파헤쳐보니 고통스럽다. 2편은 언제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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