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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PD Jul 13. 2023

걸어서 섭외 속으로

우리들의 치부, 그것은 가족



시청자들을 추사랑 앓이를 하게 만든 <슈퍼맨이 돌아왔다>



2013년에 론칭한 KBS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후로 지금까지도 가장 유용한(?) 예능 포맷은 "관찰"이다. 이전에도 정말 실험적인 의미의 관찰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살벌한 리얼함 때문에 출연자들도 출연을 꺼려 제작의 명맥이 끊어졌다.       

그룹 G.O.D가 재민이라는 아이를 육아하는 관찰 예능


사실 지금 방송되고 있는 관찰 프로그램들은 순수한 관찰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엔 민망하다. 재미를 극대화시키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연출적 요소를 가미하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하는 무한도전이나 1박 2일에서도 심심찮게 대본 아닌 대본이 유출되기도 한다.             

무한도전 대본 유출본이라고 하는 사진. 아마 진본인 것 같다.



그렇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대본이 있다. 이것은 대사와 행동이 모두 쓰여있는 드라마 대본과는 다르다. 위의 유출본(?)을 보면 대사 비슷하게 쓰여있지만 사실은 대강의 스케치라고 보면 된다. 출연자들의 이미지 트레이닝(?)용으로 생각하면 간단하다. 


성실한 출연자는 대본을 숙지하고 오고 훌륭한 출연자는 대본을 연구하고 플러스알파를 가져온다. 개중엔 일부러 대본을 안 보고 오는 출연자들도 있다. 정말 바빠서 못 보거나 혹은 본인의 날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대본을 멀리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제작진이 출연자의 리얼한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서 대본을 삭제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1박 2일의 벌칙 새벽 조업 같은 경우가 그럴 것이다. 몰래카메라 류의 연출이 그러하다.


가족 관찰 예능에 대해 쓰려고 슈돌 이야기를 꺼냈다가 또 쓸데없는 이야기로 빠졌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힘든 섭외는 바로 연예인의 가족 섭외다. 연예인은 스스로 직업을 선택했기에 카메라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가족은 이야기가 다르다. 짧은 인터뷰 촬영 한 번 했다가 유명세로 홍역을 치르거나 집 앞에 장사진을 치는 바람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있다. 혹은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유명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자기 검열에 빠져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다. 


반대로 당사자인 입장에서는 내밀한 가족사가 밝혀지는 것이 싫거나, 가족들이 자기 때문에 소중한 일상을 잃게 될까 봐 가족 섭외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유명세라는 것의 장단점을 몸소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또는 우연찮게 내가 기획한 두 개의 프로그램 모두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부모님의 인생 2막을 돕는 <볼 빨간 당신>, 가족의 좌충우돌 여행을 담은 <걸어서 환장 속으로>가 그것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을 4년간 하면서 배운 것이 가족 관찰이어서 그랬을까? 여러 가지 기획을 하다가도 다시 되돌아가는 곳이 가족 관찰 포맷이다.


시청자들이 가장 익숙하게 감정이입을 하고 재미있어하고 안정적인 시청률이 나오는 가족 관찰 포맷은 많은 방송사에서 만들고 있고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는 추세다. 문제는 섭외의 어려움이다. 너도 나도 달려들어 섭외하기 때문에 경쟁도 치열하고 앞서 말한 여러 이유로 연예인과 그 가족들이 출연을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출연료를 많이 주면 해결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돈으로 섭외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섭외는 고도의 밀당 기술이다. 출연자가 이 프로그램에 나와서 얻을 것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게 돈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족이 끼어있을 때는 돈 말고도 많은 것들이 개입된다. 내가 출연자에게 뭔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대부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으로 설득한다. 



처음으로 섭외를 했던 서정희 씨와 서동주 씨 모녀는 사실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다. 전에 뮤직뱅크 연출을 하며 알고 지냈던 한 매니저 분과 오랜만에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서동주 씨 매니지먼트를 한다는 것이었다. 섭외 리스트에 없었던 출연자이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모녀의 관계를 여행을 하며 담아내면 어떨까 싶었다.


급히 미팅을 날짜를 잡았다. 서정희 선생님은 모두가 알다시피 유방암 치료 중이었으나 너무나 열정적이시고, 긍정 적이며 달변이셨다. 하는 말씀마다 어찌나 재미있게 풀어내시든지... 알고 보니 책을 7권이나 내셨었다. 모전여전일까 서동주 씨도 엄청난 인재였다. 말을 어찌나 조리 있게 잘하든지... 피디들이 말하는 소위 오디오 편집도 필요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두 분의 미모는 말할 것도 없었다.


서정희 선생님에게는 어머니 장복숙 여사님이 계셨다. 삼대모녀의 여행기. 얼마나 완벽한가? 숫자 3이 주는 완벽함과 안정감. 장복숙 여사님도 어찌나 유쾌하고 재미있으신지 나는 이 삼대모녀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다리 수술을 하셔서 편찮은 장복숙 여사님, 유방암 수술을 하고 치유 중인 서정희 선생님, 얼마 전 이혼을 하고 홀로서기 중인 서동주 씨. 삼대모녀의 공통점은 (본인들이 이야기한 것) 남편이 없다는 것이었다. (故서세원 씨가 돌아가시기 전이었다) 웃픈 사실에 서로를 위로하며 의지하며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여행기. 얼마나 특별한 경험일까? 




설 연휴에 2회 연속 편성한 <걸어서 환장 속으로>는 첫회 2.9% 2회 6.0% 시청률을 기록하며 산뜻한 출발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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