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와 평행이론
1976년 미국의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현직 대통령 최초로 SNL에 출연했다. 권위와 카리스마로 대변되는 미국의 대통령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실만으로도 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후 대통령 직을 이어 받은 인물이다. 아무래도 지지 기반이 약하고 국민적 지지가 약했다. 그의 인물평은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것이 전부였다. 조금은 답답한 이미지를 타개하기 위해 참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SNL을 자기 PR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은 고리타분한 사람이 아니라 웃음을 주고 또 얼마든지 본인이 웃음거리가 되어주는 개방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심어주었다.
인간미가 추가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시초는 김대중 대통령이다. 당시 최고의 코미디언 이경규가 진행하는 <이경규가 간다>에 출연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거침없는 입담과 유머와 식견을 골고루 뽐내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방송사(史)에도 아주 훌륭한 기획이었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 이후로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은 예능을 적절히 잘 활용해왔다. 주로 뉴스와 토론회와 기자회견 등으로 접할 수 있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대중들은 이들의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며 피상적인 모습만 볼 뿐이다. 다소 딱딱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지지율을 높이는데 TV 예능만 한 것이 없다.
대통령뿐 아니다. 대선에 출마할 만한 유력 정치인들도 예능에 줄을 서가며 출연하고 있다. 해당 정치인들이 출연하면 시청률도 높고 장안에 화제가 되기 때문에 PD 입장에서 입맛이 당기는 출연자다. 물론 임원과 사장 보고를 통해 OK를 받아야 출연이 가능하다.
정치인이 예능에 출연하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이런 것이 있다.
대중과의 소통 강화: 친근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이미지 개선: 유머 감각과 따뜻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다.
정책 홍보: 유권자들에게 정책을 더 쉽게 이해시킬 수 있다.
젊은 층 공략: 젊은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좋은가 된다.
신뢰 구축: 솔직하고 진솔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은 준비하는 데 최소 2달이 걸린다. 임원, 사장 보고 후 OK가 떨어진 후에 밀당이 시작된다. 연출진이 원하는 촬영 콘셉트와 정치인이 생각하는 노출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이것을 조율하는데 꽤 긴 시간이 소요된다.
보여줄 수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질문들이 정리되면 본격 촬영이 시작된다. 본인이 가진 단점은 웃음으로 승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포장의 기술을 활용한다.
이재명 의원은 형수 욕설 사건이 항상 구설에 오른다. 대중들은 사건의 내막을 알지 못한다.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다만 표면에 드러난 팩트만 놓고 보면 치명적이다. 여성 + 폭력성이 이재명 이미지에 덧칠되어 있다. 또 김부선 배우와 불륜설도 있었다. 이재명에게는 큰일을 앞두고 여성 + 폭력성 + 불륜 꼬리표가 항상 붙는다.
이를 타개하려면 여성 + 친절 + 순애보 이미지로 가야 한다. <동상이몽>이라는 부부 관찰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했으니, 프로그램 선정은 잘 한 것이다.
몇 시간 찍어서 내보내는 1회짜리 기획성 토크쇼에 출연한 것이 아니라, 무려 10회에 걸쳐 출연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대략 5일의 일상 관찰 촬영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보통 하루 촬영해서 2~3회 분량이 나온다)
10회의 기획은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이혼할 정도는 아닌) 약간 티격태격하는 부부가 출연하며, 세상 행복한 부부로 재탄생한다는 콘셉트에 맞게 구성을 해야 한다. <동상이몽>의 작법은 출연자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야기 흐름은 대동소이하다.
과거 - 첫 만남, 연애 시절, 신혼 시기
현재 - 현재 관계와 문제점
미래 - 관계 개선, 애정 재확인
당시 성남 시장 신분으로 출연하며 평범한(?) 직장인 아재 콘셉트를 차용한 이재명은 아내에게 밥투정 부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여느 평범한 부부를 연상케 했다.
겉으로는 센 척 하지만 결국 아내에게 모든 걸 맞춰주고 져주는 이재명을 보며 그의 카리스마와 폭력적 이미지를 지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불륜남은 개과천선하여 아내밖에 모르는 바보만 남게 되었다. 성공적인 예능 출연이었다.
1회 성 토크쇼나 스케치 촬영이 아니라 10회짜리 관찰 예능에 출연했다는 사실만 봐도 예능을 정말 잘 활용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대담한 모험이었고 얻은 과실은 컸다.
이번에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예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그야말로 예능형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미국 역사를 통틀어 미디어에 가장 많이 출연했고 노출된 사람이다. 성역 없이 패러디 당한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가 사업가 신분이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그가 훌륭한 정치인인가? 대통령인가? 하는 문제는 내 식견을 넘어선 문제이므로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예능 PD로서 단언컨대 그는 매우 훌륭한 출연자다.
악역도 마다하지 않는다
쉽고 간결하고 확실하게 말한다
풍자와 해학을 즐긴다
외형적 아이콘이 있다
예상을 뒤엎는 반전을 준다
언쟁을 즐기며 막말도 한다
뜨거운 감자(이야깃 거리)도 잘 먹는다
악명이어도 어쨌든 유명하다
위험을 무릅쓴다
미국에 살면서 지켜봤으면 더 쓸 수 있었겠지만 여러분이 댓글로 달아주실 거라 생각하고 이 정도만 언급하겠다. 쓰다 보니 이 특징과 꽤나 흡사한 예능 출연자가 있다.
바로 박명수다. 무한도전 시절의 박명수.
두 사람 다 훌륭한 예능 출연자의 면모를 공유하고 있다. 훌륭한 출연자라고 해서 유재석처럼 메인 MC 롤을 맡아 진행을 잘 하는 사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능의 웃음은 대립과 갈등에서 촉발되는 것이 많다. 유재석은 이 대립을 부추기고 갈등을 심화 시키고 결국에는 위아더월드~ 정리를 아주 잘 하는 MC다.
그래서 예능에는 반드시 악동 출연자. 악역 출연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망가져주는 바보 캐릭터가 필요하다. <무한도전>은 박명수라는 악역 출연자를 잘 활용했고, <1박2일>은 김종민이라는 바보 캐릭터를 잘 활용한 예능이다.
모지리, 바보인 줄 알았던 출연자가 어느날 각성하고 흑화하여 빌런의 면모를 보이면 시청률이 폭발하게 된다. 박명수는 이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훌륭한 출연자다.
정치와 국정 운영은 예능이 아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역할을 맡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악동 같은 사람이 앉으면 어떻게 될까?
이미 우리는 트럼프 1기를 한번 겪어봤기에 잘 알고 있다. 그의 업적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세금 감면: 기업과 개인의 세율을 낮추어 경제 성장을 촉진
경제 성장: 재임 초기에 경제 성장, 실업률이 낮아지고, 주식 시장이 상승
무역 전쟁: 특히 중국과의 무역 전쟁으로 세계 경제에 혼란을 초래
코로나19 팬데믹: 재임 말기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해서 큰 타격
악당, 악동으로 불렸고 지금도 그렇게 평가를 받는 트럼프 대통령은 초지일관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시 했다. 세계 질서 유지를 위해 미국이 희생하는 것을 피하고 개입한다면 응당한 대가를 받으려고 했다.
대외적으로 누적된 중국과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려고 했고, 미국의 지위를 넘보는 러시아, 중국 연합을 견제했다. 행동하지 않고 몸을 사리는 나토 국가들에게 적극적인 역할과 분담금을 요구했다. 부작용으로 우리나라에도 주한미군 방위 분담금을 인상 요구했다.
또 국제 분쟁 지역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그가 평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전쟁을 하기 위해 지출되는 국방 예산을 줄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철저하게 장사꾼이다. 지출과 수입... 대차대조표가 기울어지는 꼴을 못 보는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역시 기업가 출신답게 작은 정부, 적은 세금을 주장했다. 기업들이 자유롭게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가장 큰 걸림돌은 각종 규제와 세금이었을 테니 말이다. 낙수효과의 긍정적 측면이었을까? 이런 조치들은 실업률 감소로 이어지고 경기 부양과 주식 시장 활황으로 이어졌다.
아쉽게도 임기 말에 팬데믹이 발생해 모든 것이 거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각종 추문, 위법, 불법 사건들이 정적의 무기가 되어 그의 연임을 막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이든 정부였다.
아주 노골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에 대가를 요구하고 미국의 뜻에 따르기를 강요한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예능에 자주 출연하며 친근한 악동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돈 계산 하나는 탁월한 장사꾼.
그동안 세계 질서를 위해 경제적 손해를 보아도 적극 개입을 해왔던 세계 경찰 미국은 다시 한번 사설 경비원처럼 변할 것이다. 돈을 내면 지켜주고, 첨단 경비 시스템을 정기 결제하면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을 것이다.
무례하고 거칠다는 평가도 있지만, 나는 그가 솔직해서 좋았다. 웃는 얼굴을 하지만 행동은 달라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오히려 상대하기 힘들다 - 문재인 대통령 저서에서 트럼프에 대한 평-
사실 이렇게 명료한 성향을 가진 상대방을 만나면 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기브 앤 테이크라는 간단한 공식만 알면 된다.
준 만큼 받는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기분 나쁘지 않은 악동 출연자 박명수. 트럼프는 그와 조금 닮았다. 그래서 조금 조심해야 한다. 뒤통수를 맞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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