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비 Aug 27. 2024

내가 쓰는 자서전

책가방 속에 넣어둔 꿈

 일찍이 공부의 중요성을 알고 열심을 내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선생님이셔서 그런 것 같다. 거실에서 울려 퍼지는 고전음악은 마음밭을 풍요로운 잔치를 벌여 놓았다. 감성적인 학생이고 꿈꾸는 소녀였다. 우등생대열에서 낙오된 적이 없었다. 완벽하게, 정확하게 떨어지는 성격이었다. 그래서인지 뭐든 열심히 꾸준하게 했다. 공부도, 놀기도,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얼굴도 끊임없이 상상했다. 성격도 활달하고 교우 관계가 좋아 학급반장도, 학급문고관리도 도맡았다. 골목사이를 누비고 뛰어다녀서인지 달리기도 잘했다. 6개 국민학교가 경합을 벌이는 계주선수로 운동장의 트랙을 힘껏 달렸다.


 열심히 공부했던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지나자, 공부에 흥미를 잃어갔다. 고등학생 특유의 반항심은 아니었다. 그땐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하지도 않았다. 그런 게 아버지는 서울대학만을 고집했다. 다른 학교는 후보에도 없고, 오로지 서울대학뿐이었다. 당시 내 학교성적은 서울대학은커녕 학력고사를 통과하기에도 버거웠다. 고등학교 졸업 후 긴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동네 껄렁한 오빠들, 공장 다니는 영미, 모두 하고 싶은 의욕을 잃은 나 같은 인간들이었다. 한 참을 방황한 후에 재수의 길을 찾은 나는 겨우 대학에 입학했다. 성적에 맞추어 들어간 건축학과는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적성도, 건축에 필요한 삼각자도구들, 설계판 모두 관심밖에 두었다. 아버지의 강요에 의한 선택은 나를 괴롭게 해 아버지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많은 날들을 아버지와 소통은 물론 얼굴도 보지 않고 지내게 되었다. 학교는 지방에 있었다. 막내고모의 감시와 함께한 하숙생활은 자유를 만끽했고 또 엉망진창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글쓰기와 관련된 학과를 갔으면 참 신나고 재미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대학을 다 마치지 못하고 자퇴서를 냈다. 학교생활을 접고서는 아버지의 추천으로 회사에 들어갔다. ‘삼익 피아노’였다. 음악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의 입김으로 아는 분에게 일자리를 소개받았다. 지금은 이런 일이 문제가 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들 일자리를 구했다. 첫 회사에서 일하며 만난 남자가 지금의 남편이 되었고 인생 2막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쓰는 자서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