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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Dec 23. 2022

신비와의 이별

신비가 제 품을 떠나갔습니다

도대체 얼마 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는지 모르겠네요.너무 오래되다 보니 이젠
어색할 지경인데, 신비덕에 이렇게 다시 글을 쓰게 되었네요.
다시 글을 쓰라고 신비가 제 곁을 떠나갔나 봅니다.

2018년 유월 어느 날, 태희네 육 남매는 꼬물꼬물한 아가냥 모습으로 우리 집 뒤뜰에 나타났다. 초여름날 작은 부엌창문으로, 들킬세라 조심조심 태희네 육 남매를 훔쳐보던 내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아주 작은 스티로폼집에서 육 남매에 예쁜이까지 7마리가 함께 잠들던 뒤뜰 겨울풍경은 또 어떠한가. 그것은 일종의 매직쇼(?)였고 아직도 그때 내가 느꼈던 감동이 지금도 선연하다.


신비 어린시설 사진을 찾았다. 세상을 떠난 남매 미니몽과 예쁜이와 함께, 2018년 겨울 어느날.

이게 어느덧 벌써 4년 전 이야기다. 태희네 육 남매에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이제 뒤뜰에 남은 건 강이, 탄이, 신비 세 마리뿐이다. 신비는 유난히 몸이 약했다. 체격도 작았고, 어릴 적 허피스를 심하게 앓았다. 신비가 구내염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은 한참 후였다. 낯을 많이 가리는 신비를 가까이서 보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중성화를 포함해서 신비는 총 4번의 수술을 받았다. 손을 전혀 타지 않는 신비를 네 번이나 잡아 병원에 데려갔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그것은 기적이었을까, 단순한 행운이었을까, 나의 집념이었을까.


정성스레 브런치에 올릴 신비 사진을 찾았다. 건강하고 예쁘게 나온 모습으로만.

우리 집 뒤뜰에 사는 냥이가 한두 마리가 아니다. 그때그때 다르긴 해도 늘 대여섯 마리쯤은 모여 있다. 일년이년삼년사년, 해가 깊어가니 정도 깊어간다. 모두 다 나에겐 특별한 아이들이다. 그중에서도 신비는 가장 눈에 밟히는 아이였다. 구내염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내내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저러다 죽겠다 싶어 병원엘 데려갔고, 갔다 오면 잠시 상태가 좋아졌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빠졌다. 상태가 좋을 때조차도 통조림이 입에 닿으면 머리를 흔들며 괴로워했다.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늘 아파 꼬죄죄한 모습일때가 많았다. 사진 속에서만큼은 건강하고 예쁜 모습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픈 신비를 모르는 척하지 않은 것은, 마음이 착해서도 돈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내 고통을 좀 줄여보고 싶었다. 신비는 아파서 좀처럼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보았다. 신비의 고통은 고스란히 나의 고통이 되었다. 나는 간절했다. 간절히 신비의 구내염이 낫기를 바랐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비의 구내염은 끈질겼다. 세 번의 수술에도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더 이상 손쓸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좌절하게 했다. 신비를 위해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었다. 그저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 밖에.


특별하고도 또 특별한 나의 묘연, 신비.

12월 중순에 국외연수 일정이 잡혔다. 떠나기 열흘 전부터 신비가 밥을 제대로 먹지 않는다. 그전까지는 아침마다 꼬박꼬박 통조림을 기다렸고, 괴로워하면서도 밥을 먹었다. 밥을 먹지 않는 날이 잦고,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열흘이나 집을 비워야 하는 나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집 안에 있는 아이들보다 신비가 더 눈에 밟혔다. 특이하게도, 그 시기에 내가 아주 가까이 다가가도 피하지 않았다(신비는 경계가 심해 평소에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4년이나 얼굴을 보니, 이젠 좀 나랑 친해졌는가 보다라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신비의 사진

외국에서 돌아와 보니 다른 아이들은 모두 보이는데 신비가 보이질 않는다. 불길한 마음에 집을 맡겼던 알바에게 물어보니, 3~4일은 얼굴을 봤는데 그 이후에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예감이 좋지 않다. 신비는 집을 절대로 떠나지 않는 아이다. 주말 점심 나는 마음을 먹고 신비를 찾아보았다. 대나무숲 위쪽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은 언덕, 신비가 종종 머무르곤 했던 집에서 신비를 발견했다. 


죽어있는 신비를 보자 거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가 미안해, 너무 늦게 발견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오랜 시간 그저 울고 또 울었다. 다행히 며칠 동안 날이 몹시 추워, 신비의 몸은 전혀 부패가 되지 않았다. 손을 타지 않아 한 번도 만져볼 수 없던 신비를, 죽어서야 비로소 쓰다듬어 줄 수 있었다. 나는 귀 끝부터 꼬리까지 신비를 정성스럽게 쓰다듬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신비는 너무 말라있었고, 피부염이 심한 상태였다. 그래도 내 눈엔 신비가 너무 예뻤다. 그저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편안해 보였다. 고통 없이 평화롭게 떠났다고 믿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신비를 위한 팻말을 제작했다. 고양이 별에서는 마음편히 먹을 수 있었으면.

신비는 그렇게도 좋아하던 우리 집 뒤뜰에 묻혔고, 내 마음에도 묻혔다. 냥이천국에 신비만의 영원한 보금자리가 생겼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신비를 내 손으로 거둘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신비와 제대로 이별할 수 있었다. 한없이 슬퍼했고, 마음껏 울 수 있었다. 근래 가까이 가도 나를 피하지 않았던 것은, 나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였을 거라고 믿는다. 신비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며 신비에게 늘 한없는 연민을 느꼈다. 신비는 이제 죽음과도 같은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부디 고양이별에서는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건강하고 예쁜 모습이기를 바란다. 


부엌창문으로 내다보던 풍경, 내가 늘 바라보며 흐뭇해하던 신비의 모습.

부엌창문을 틈틈이 바라보는 것이 나의 일상 습관이다. 신비가 자주 머무르는 집이 바로 그 위치이기 때문이다. 부엌창문을 바라보는 내 눈길이 헛헛하다. 이제 신비는 거기에 없지만, 내 기억 속에서 영원할 것이다. 나는 신비가 이 지구별에 살던 아름답고 소중한 생명체였음을 아는 단 한 사람이다. 내 기억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신비는 그렇게 나의 기억의 일부가 되었다.


지구별에서의 삶이 그저 고통이 다가 아니었기를. 고양이별에서는 아프지 않고 행복하기를. 


신비야 이젠 영원히 안녕.
언젠가 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날 다시 만나자.
그때 나를 꼭 기억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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