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가 늘었다. 다섯 식구가 되었다.
나는 싱글이다. 싸복이 남매(강아지)와 하늘이(고양이), 뒤뜰냥이들과 함께 마당 있는 집에 산다.
7년 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반려동물'에 대한 글을 쓰게 될지 몰랐다.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뒤뜰냥이들이 무수한 에피소드를 만들어준 덕이다. 더불어 소소한 팬들도 생겼고, 소통하는 기쁨을 알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나는 더 열심히 살게 됐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마음을 다해 뒤뜰냥이들을 보살폈을까 싶다. 글을 쓰는 일도, 소통하는 일도, 때때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는 잘 지내고 있는지, 뒤뜰냥이들은 모두 무탈한 지. 혹여 걱정하셨던 분들이(무슨 일이 있어서 글을 쓰지 않는 건지) 계실까 봐 말씀드린다. 올해 11살이 된 행복이가 이제 노견으로 다소 힘들어하긴 해도 아직까지 잘 버텨주는 중이며, 싸이는 원래 캐릭터대로 11살임에도 쌩쌩하며, 하늘이는 이제 겨우(?) 5살 답게 건강하다. 오리지널 뒤뜰냥이인 강이, 탄이, 예삐는 여전히 뒤뜰붙박이로 잘 지내고 있고, 언제나처럼 뉴페이스냥이들이 틈틈이 뒤뜰에 출현 중이다. 다행히도 요 근래에는 뒤뜰에 새끼를 낳는 냥이가 없어 어멍은 오랫동안 호사를 누리고 있는 중이고.
글을 쓰지 않았던(못했던) 이유는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가 더 이상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지 않는 탓도, 뒤뜰이 평화로웠던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새로운 일로 바빴기 때문이다. 그간 연애를 했다. 안 그래도 직장생활에 아이들에 마당관리에 동네냥이들까지 살피느라 숨 쉴 틈이 없는데, 거기다 연애라니. 언강생심 글을 쓸 여유도, 아이들에게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아니 이것은 비겁한 변명이다. 글을 쓰지 못했던 건 치열하게 살지 못한 탓이 클 것이다.
마흔이 넘어서고부터는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을 욕망했다. 혼자의 삶이 익숙해져 가는 만큼 저 욕망은 커져갔고, 커져가는 욕망만큼 '내게 그런 일이 생길일이 없다'는 마음도 커져갔다. 외로웠지만, 타인에게 기대고 싶지 않았고, 원한다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임을 알아서 체념하기도 했다. '그래도 혹시'라는 마음도 여전했다. 지금도 믿기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는 현실이 되었고, 나는 다가오는 8월 26일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어멍은, 마당쇠가 필요했다. 저질체력으로 마당관리에 아이들까지 돌보느라 늘 숨이 턱에 찼다. 언감생심, 남의 귀한 자식을 마당쇠로 들이다니 이리 뻔뻔한 생각을, 하며 자책하기도 했지만, 나는 마당쇠가 절실했다. 하느님은 뻔뻔한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마당쇠는 잘 웃고 다정하고 친절하며(아이들에게도), 무엇보다 부지런하고 일을 할 줄 알며(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 게다가 여자친구가 일을 하는 꼴을 못 본다. 동네 냥이들까지 돌보는 나를(바보로 알지 않고), 천사로 알고(아직 나의 실체는 모른다) 마당쇠를 자처한 반푼이 중에 반푼이다.
마당쇠와 연애한 지 1년 6개월, 나는 이제 예초기를 쓸 줄 모르는 바보가 되었다. 마당쇠가 다 해주는 탓이다. 이제는 제법 뻔뻔해져, 힘든 일은 당연히 마당쇠 차지인 줄 안다. 어멍 신수가 다 훤해졌다. 마당쇠가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사실 연애 초반에는 그에게 '마당쇠로의 충분한 자질'이 있는 줄 몰랐다. 처음엔 생각이 비슷한 것이 좋았고, 늘씬한 것이 좋았고(내가 얼굴은 전혀 안 보는데, 어이없이 몸매는 좀 본다),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았다(그는 사귀기 전에 내 브런치의 글을 많이 읽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다고, 사귀고 보니 그는 '일솜씨 있는 타고난 마당쇠'였던 것이다. 남자복 없던 나에게, 뒤늦게 이런 복이.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이 쉽지 않음을 잘 안다. 혼자 있던 시간이 길었기에 더욱이 녹록지 않을 것이다. 마당쇠는 좋은 성품을 가졌다(성격이 나보다 훨씬 좋다). 물론 마당쇠도 사람이므로, 단점도 있다. 단점은 나도 만만치 않으니, 적당히 서로 눈 감으며, 좋은 점만 보기로 했다. 나는 마당쇠가 나와 다른 성격이어서 좋았고, 명랑해서 좋았으며,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강직한 성품이어서 좋았다. 물론, 무엇보다 나를 아끼고 위하는 점이 제일로 좋다. 결정적으로, 결혼을 결심한 건, 마당쇠와 함께 있을 때의 내 모습이 좋아서다. 마당쇠와 함께 있을 땐, 나는 늘 웃는다. 마당쇠는 나를 웃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내가 결혼할 줄 몰랐다. 치기 어린 젊은 시절엔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기 싫었다. 나이 들어서도 연애만 해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사람일은 알 수가 없다는 말이 정말 꼭 맞다. 나는 선택을 했고, 최선을 다해 나의 선택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결혼생활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겠지만, 나는 기꺼이 나에게 닥친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마당쇠의 손을 잡고 걸어갈 것이다. 이제 혼자가 아니다. 식구가 하나 늘었다. 그렇게 다섯 식구가 되었다.
에필로그 : 행복이도 하늘이도 마당쇠를 좋아한다. 다만, 우리 싸이가 '질투의 화신' 답게, 마당쇠를 향해 무한질투 중이다. 오만가지 진상 행동으로 그간 우리를 괴롭혔으나(글로 다 쓸 수 없을 만큼 진상짓을 했다), 서서히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재미있는 건, '시거든 떫지나 말라고' 질투하면 좋아하지나 말든지. 질투는 질투고, 좋은 건 좋은 거고. 눈에 불꽃이 일도록 (마당쇠를) 감시하면서도, (마당쇠를 향해) 좋다고 연신 꼬리는 흔들고 있다. 둘이만 보기 아깝다. 덕분에 마당쇠와 함께 있을 땐, 어멍껌딱지가 되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이렇게 아웅다웅하며 한 식구가 되어가나 보다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 중이다. 언젠가는 다섯 식구가 함께 있어도 편안해질 날이 오리라 믿는다.
마당쇠, 대중소 삼남매와 앞으로 그려갈 미래가 기대된다.
아이들과 마당쇠와 함께 오랜시간 동안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