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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an 05. 2024

예삐, 내 마음의 별이 되다

고양이 별에서 살구, 자두, 앵두를 다시 만났기를

한때는 우리 집에서 숙식하는 뒤뜰냥이들이 열 마리가 되던 호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겨울이면 나타나 뒤뜰을 헤집는 이 구역 최고의 빌런냥이 '알몽이'가 조강지처 '알콩이'를 데리고 컴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북적북적했던 뒤뜰은 온데간데없고 적막이 흐를 때가 많다. 물론 추운 날씨도 한몫했을 것이다. 사료양도 줄고, 간간히 얼굴을 확인하던 냥이들 중 안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알게 모르게 고양이 별로 돌아간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신비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그래도 강이, 탄이, 예삐, 강탄예삐 트리오만큼은 굳건하게 뒤뜰을 지키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습관처럼 강탄예삐 트리오에게 아침마다 통조림을 주었다. 손도 타지 않고 나를 따르지도 않는 아이들이지만, 통조림을 손에 들고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저 때뿐이라고 해도 유일하게 나와의 거리가 30센티로 짧아지는 시간이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도 같았다.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랄까. 이 흐뭇함이 오랜 시간 계속되기를 바랐다. 


통조림 세팅 중, 이때만큼은 우리 사이가 남부럽지 않을 만큼(?) 가깝다.

얼마 전의 일이다. 아침마다 눈도장을 찍는 예삐가 보이지 않았다. 탄이나 강이는 간혹 통조림 배식시간을 지키지 않을 때가 있다. 처음엔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지만 하루이틀후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곤 해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예삐는 달랐다. 언젠가부터 배식시간을 거르는 법이 없었다. 배식시간에 보이지 않을 때면 보일러 실을 확인해 보곤 했고, 그럴 땐 늘 보일러 실에 있곤 했다. 그날도 습관처럼 보일러실을 확인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배식시간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고.


강이, 탄이, 예삐 트리오는 함께 있을 때가 많았어요. 드물게 사이가 좋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도 예삐는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보일러실에서 예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제나 누워있던 보일러 위가 아니라 내 시선이 머무르지 않는 바닥에 누워 있어 발견이 늦었던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이틀 전까지 멀쩡했던 아이가 아닌가. 아픈 기색도 없었는데 이럴 수가. 다행히 추운 날이 계속되고 있어 예삐의 모습은 온전할 수 있었다. 그간 단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아이를, 수없이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예삐와의 이별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예삐는 그중 강이와 단짝이었습니다. 강이는 예삐의 죽음을 알고 있을까요.

다행히 이젠 마당쇠가 있어, 예삐를 뒤뜰 냥이천국에 편히 묻어줄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날이 추워 땅이 꽁꽁 얼어 흙을 파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예삐는 2018년 봄에 우리 집에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고, 그 해 여름에 세 마리 모두 무지개다리 너머로 떠나보냈다. 그중 살구와 자두는 뒤뜰 냥이천국에 잠들어 있다. 이제 예삐 또한 그곳에 묻혔으니, 지금쯤은 살구, 자두, 앵두와 다시 만났을 것이다.


예삐와 자두, 앵두, 살구가 함께 찍힌 유일한 사진이에요. 모두 경계가 심해 사진 찍는 게 쉽지 않았죠.

정신을 차린 후 생각해 보니, 예삐의 시신을 내 손으로 잘 수습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길냥이들은 죽을 때가 되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간다고 했다. 나는 저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마음을 주었던 아이들과 이별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 참 슬프지 않은가. 맘껏 울고 슬퍼하며 제대로 이별하고 싶었다. 다행히 예삐는 내 눈에 띄는 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어쩌면 그것은 나를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예삐도 나와 제대로 이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2017년에 예삐를 처음 만났다. 어느 날 홀연히 우리 집에 나타났고, 경계가 심해 몇 번 얼굴을 보여주는가 마는가 싶더니, 2018년 봄에 우리 집 뒤뜰에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초여름에 태어나 자두, 살구, 앵두라는 이름을 가졌던 세 아이는 안타깝게도 그 해 가을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렇게 아이를 모두 잃은 예삐는 뒤뜰에 자리를 잡았고, 자신의 아이들과 같은 시기에 태어난 태희네 육 남매와 인연을 맺었다. 지금도 기억이 선연하다. 추운 겨울 좁디좁은 스티로폼 집에서 엄마 잃은 태희네 육 남매와 예삐가 몸을 욱여넣어(?) 한 집에서 자던 아름다운 풍경이.


일곱 마리가 저 작은 스티로품집에서 지내던 시절의 사진.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 신비의 모습도 보인다.

태희네 육 남매 중 남은 강이, 탄이와 예삐는 참 사이가 좋았다. 예삐는 때론 탄이와 어울리고, 때론 강이와 함께였다. 셋이 함께 있는 모습이 늘 보기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 대한 경계도 느슨해졌다. 수많은 아이들이 뒤뜰에 들고 났지만, 강탄예삐 트리오는 변함없이 뒤뜰을 지켰다. 벌써 오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쌓인 시간만큼 정도 쌓였다. 하루에 아주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지 않으면 맘이 허전했는데, 이제 예삐를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아침마다 뒤뜰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탄이보다는 예삐와 더 가까웠던 강이를 보는 내 눈길 끝에 슬픔이 묻어난다. 강이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나에 대한 경계가 심해진 것도 같다. 무엇보다 매일 아침 눈도장을 찍던 강이가 안 보이는 날이 더 많다. 올 겨울 들어 보일러실에서 밤을 보냈는데, 이젠 보일러실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언젠가는 강이도 탄이도 내 곁을 떠나갈 테고, 내가 미워하는 빌런냥이 알몽이도, 하필이면 빌런을 좋아하는 나의 최애냥이 알콩이도 내 곁을 떠나갈 것이다. 모두 다 예삐처럼,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을 내게 허락되기를, 하느님께 기도해 본다. 


언젠가 먼 훗날 고양이 별에서도 셋이 함께이기를.

언젠가부터 나는 뒤뜰냥이들 사진을 잘 찍지 않았다. 함께한 세월이 오래 쌓이니 그리 되었다. 최근에 예삐사진을 찍은 적이 없어, 나에게 예삐의 최근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 막상 예삐와 이별하고 나니 최근 모습을 좀 찍어두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저 모든 것이 아쉽다. 좀 더 일찍 구내염 수술을 시켜줬더라면, 아픈 새끼들을 병원에 데려갔더라면, 자비로 수술을 해줬다면 귀를 자르지 않았을 텐데, 후회가 많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가 오늘 본 아이들의 모습이 어쩌면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른다. 손에 닿지 않는 길냥이들과 연을 맺는다는 것은 하루를 사는 일인 것만 같다. 매 순간순간 아이들을 충실히 눈에 담아야겠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날들이므로. 


아이를 낳기 전, 어린 티가 남아있는 예삐의 모습. 

예삐야 내게 와줘서 지난 오 년 동안 참 행복했어. 나는 아직 어린 네가 대숲에서 슬피 울던 모습을, 어엿한 어른이 되어 세 마리의 엄마노릇을 하던 모습을, 아이를 모두 잃고도 남의 아이를 사랑으로 품던 모습을, 다른 냥이들에게 친절했던 너의 모습을 모두모두 기억해. 예쁘지 않다고 예쁜이라고 불러서 미안해. 역설적이게도 너는 너무 예뻤고 늘 아름다웠어. 너를 만나고, 너의 생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걸 하느님에게 감사해. 지금쯤은 자두, 살구, 앵두를 만났겠지. 언젠가 내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세 아이를 데리고 마중 나와 줄거지? 우리 그때 다시 만나자. 꼭.


예삐, 냥이천국에 잠들다.
내 마음의 별이 된 예삐를 추모합니다.
맑고 영롱한 빛으로 언제나 내 맘에 남아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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