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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Dec 15. 2023

유달산 기슭에 깃든 골목이야기, 레트로 목포.

-한 해를 보내며 느긋하게 그 땅에 잠겨보다. 여행은 가능한 머무를 것.

             



한동안 한 달 살기나 일 년 살기가 유행처럼 퍼졌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 주를 여행해도 일주일 살기라 하듯 하루 이틀을 지내도 그 지역에 스며든 여행을 선호하는 걸 본다. 목포에 머물면서 요즘 새로운 여행패턴인 살아보기식 워케이션의 짧은 시간을 경험했다. 목포의 골목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쪽문 옆을 지나고 작은 텃밭을 지나 그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2박 3일을 살았다.     

1897년 목포항 개항 이후 '목포는 항구다'라는 말은 지금껏 불변이다. 목포 유달산 중턱엔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그 거리를 걷다 보면 지금도 구슬픈 가락이 어디선가 들려오기도 한다. 잔잔한 바다 옆으로 갓바위가 전설을 품었고 바닷가 마을의 저녁노을에 전율했다.

     

목포해상케이블카는 고하도 전망대를 거쳐 발밑으로 목포 원도심과 다도해를 짜릿하게 선사했고, 평화의 광장으로 몰려든 커플들은 밤바다에 넋을 잃는다. 목포 주변 섬 여행도 손쉽고 해산물 노포 맛집도 지천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목포의 변화 역시 만만찮지만 빛바랜 듯 옛 발자취가 여전히  남아있는 목포다.   

   


-북교동 예술인 골목과 옥단이 길의 레트로 정서

도시의 매력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유형무형의 것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목포는 예부터 예향이었다. 유달산을 중심으로 몇 갈래로 뻗어있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우리의 근현대사를 이어나갔던 예인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문학의 향기가 좁은 길마다 연결되어 있고 화가의 집도 가수 이난영 일가의 전시관도 함께 한다.


목포를 대표할만한 인물로는 대통령도 있고 유명 연예인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1930년대 초반부터 해방 무렵까지 목포에 살았던 옥단이를 빠뜨릴 수 없다. 옥단이는 이 지역 출신 차범석 작가의 작품 속 실존인물이다. 옥단이 길에 들어서면 물지게를 진 여성 캐릭터 안내판이 맞아준다. 척박했던 시절의 순박한 물지게꾼 옥단이. 좁다란 골목길 일대를 누비며 목포사람들의 허드레 물장수를 하며 밝고 당차게 산 여성이었다. 목포역에서부터 유달산 부근까지 오래된 옛 집들 사이로 4.6㎞ 길이의 11개의 골목의 옥단이 길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처음엔 탐험하듯 걷던 길이 옥단이라는 이름의 정겨움으로 그저 푸근함이다.

    

옥단이라는 인물을 문학캐릭터로 세상에 내어놓은 차범석 작가의 '작은 도서관'은 말 그대로 자그마하다. 작가의 오래된 잡지와 대본집과 희곡 작품 등이 전시되었다. 도슨트가 없어도 누구나 들러서 조용히 책을 보고 QR코드로 관광해설과 목포 시민들의 목소리로 낭독한 오디오북을 들어볼 수도 있다. 차범석 작은 도서관이 자리한 골목은 차범석길 27번 길이다. 이 길 곳곳에서 수필가 김진섭, 문학평론가 김현, 극작가 김우진, 여성문학을 대표하던 작가 박화성 등의 문인들의 자취를 보여준다. 현재 예술인 골목이 있는 북교동은 지금의 목원동 일대이지만 목포사람들은 여전히 북교동이라 부른다.   

   

골목 안에는 70년대 감성을 소환하는 흑백 사진 속의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도 여전히 건재하다. 개항과 함께 하루 품팔이를 하던 사람들의 계모임으로 한때 성황을 이루던 마인계터 골목, 그 옛날 노라노 패션학원으로 유명하던 건물이 미술관으로 재생된 모습도 보인다.  

        



- 유달산 자락의 노적봉과 근대문화역사관

북교동 예술인 골목 옆으로 조금 넓게 트인 길을 따라가 보자. 법정스님과 고은 시인이 만났던 ‘목포 정광정혜원’을 지나게 된다. 김환기, 남농 허건, 박수근, 천경자.. 등 남도 출신의 예술인들이 그려진 벽화가 쭉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르면 곧바로 우뚝 솟은 유달산이다. 유달산을 빼고 목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지략을 떠올리는 노적봉이 언덕 위에서 맞아준다. 저편으로 목포 앞바다가 시원하다.      

  


유달산을 내려가기 전에 들러볼 곳이 있다. 바로 옆으로 숲을 이룬 산 아래 1982년에 조성된 국내 최초의 야외조각공원이다. 자연, 문화, 조각이라는 주제로 설치된 조각작품들은 국내 작가는 물론이고 예술성 높은 외국의 저명 조각가들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의외로 찾는 사람들이 적어 호젓하다.    

    


노적봉과 조각공원을 뒤로하고 유달산 저쪽 아래로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비롯한 옛이야기들이 기다린다. 근대역사관 1, 2관과 일본영사관과,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 옛 모습 그대다. 전시관마다 일재강점기의 수탈과 비인간적 야욕과 잔인함을 증언하고 있다.      


주변으로는 일본인들이 남긴 적산가옥과 일제의 잔재들이 있고 골목마다 아픈 역사의 상흔을 만나게 된다. 호남 곡창으로 일본인들이 거점으로 삼았던 목포였다. 발걸음 하는 골목마다 일본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묻어있다. 지금은 타임머신을 탄 듯 옛날이야기인양 하면서 거니는 역사의 거리가 되었다. 알고 걸으면 더 재미있는 목포의 골목길은 역사와 함께 하기에 더 의미가 있다.  

       



-하늘이 가까운 보리마당로의 골목 이야기

유난히 낡은 풍경의 골목이 많은 목포다. 유달산에 기대어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 골목길이 감성을 품었다. 한때 넓은 보리밭이었고 보리타작을 주로 했다던 보리마당로는 현재의 서산동으로 지대가 높은 윗자락이다.


영화 '1987'에서 연희네 슈퍼로 알려진 서산동 골목은 좁기도 하지만 가파른 오르막이다. 영화 속에서는 연희(김태리)와 이한열(강동원)이 무심한 척 속 깊은 시국을 주고받고 삼촌(유해진)은 조카에게 보안상 위험한 부탁을 하던 곳이다. 우리 모두에게 뜨거웠던 1987년의 이야기가 촬영된 골목이다.  

    

이제는 인문도시 서산동 시화골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예스러운 사진관이나 작은 미술관, 벽화가 그려진 오밀조밀한 골목 안의 자잘한 정서가 그곳 사람들과 하나가 된다.


다닥다닥 붙은 골목 양 옆의 담벼락 사이로 주민들이 지나가며 살짝 옆으로 비켜주기도 하는 게 자연스럽다. 좁은 골목을 오르내리는 동네사람들이 인사를 하고 안부를 주고받게 되니 정답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골목은 좁은 계단이었다가 누군가의 대문 앞이기도 하다. 가끔 고양이가 까무룩이 조을다가 인기척에 놀라 도망간다. 비탈진 마을을 오르다 보면 시선 끝엔 늘 하늘이다. 하늘이 가까운 동네다.         




-공간의 전환, 목포 보리마당로 누스테이 (noustay)에서 살아본 23일 워케이션

유달산 자락에 앉혀진 보리마당로의 너른 공터에서 골목에 이르니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구던 마을 사람이 반겨준다. "여기는 내비게이션에 번지수보다는 한빛교회로 치는 게 가차워요. 거기가 주차하기도 좋으니께 글루 오믄 더 편치" 뭐라도 도움이 되려 하는 마음이 진심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트렌드로 떠오른 말 중의 하나가 '워케이션(Worcation)'이다. 워크(Work)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원하는 곳에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머무름으로 업무와 그 지역을 충분히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목포 '누스테이'는 인구 소멸이 심화되는 지역에 재생건축을 통한 거주와 일이 가능토록 했다.     


새벽 잠결에 나지막한 뱃고동 소리에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도심 재생 건축으로 생겨난 목포의 숙소 '누스테이'는 자신만의 시간을 담을 수 있는 여유로운 워케이션이 가능하다. 골목 안 서늘하도록 정갈한 2층집에 모든 게 갖추어졌다.


쉼과 일이 진행되는 공간 1층과, 계단참을 밟으며 올라간 2층에선 테라스의 푸른 식물들과 함께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에선 차를 마셔도 좋고 캠프파이어가 가능한 루프탑에선 불멍의 시간이다. 동네의 따스함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나만의 속도대로 살며 크리에이티브한 효과를 기대해 볼 만하다.








 #목포 워케이션 #누스테이목포


https://bravo.etoday.co.kr/view/atc_view/14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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