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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Feb 22. 2019

타인의 도시

태국 방콕

매년 이맘때가 되면 겨울이 물린다. 해가 바뀌었으니 새로울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연초에 세워둔 계획 따위는 벌써 잊어버렸다. 여름휴가는 너무 멀어서 영영 올 것 같지 않다. 이제부터는 하기 싫은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아침마다 이불을 밀어내며 마주하는 찬 공기도 정말 싫다. 오늘도 목을 움츠리며 도시를 걸었다. 다음 지하철이 전역을 출발했다는 안내판은 보지 못한 편이 좋았을까. 파블로프의 개처럼 걸음이 빨라졌다. 역시 버겁지 않은 도시는 남의 도시뿐이다.


Bangkok

동남아시아의 도시 이미지는 한결같았다. 오토바이에 뒤 덮인 도로. 잿빛 아스팔트와 엄청난 인파, 오래된 탈것이 뿜어내는 매연과 온갖 소음. 방콕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인구수에서도 밀리지 않는 대도시다. 이름난 관광지를 여럿 가지고 있는 나라의 수도인 이상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오염된 강을 바라본다. 한강도 예전에는 더러웠다지만 목격한 세대가 아닌 탓에 현실감이 없다. 당장 떠오르는 공통점이란 도도히 흐른다는 것뿐이다. 그래도 계속해서 쳐다보게 된다. 어느 순간 시선을 사로잡는 무엇이 나타날 게 분명하다. 남의 도시는 늘 그랬다. 



강 너머의 사원이 이방인의 마음을 붙잡았다. 사실 수도라면 압도적인 건축물 한 둘 쯤은 품고 있을 확률이 높다. 주변의 모든 것이 현재를 살아도 그만은 과거를 지키기 때문에 더 눈에 띈다. 몇몇 장면은 뜨내기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곤 했다. 그래서 타인의 도시에서는 좀처럼 기분 상하는 일이 없었다. 색다른 풍경에 아드레날린이 샘솟을 뿐, 도시 생활자의 스트레스는 내 것이 아니다.



도시의 밤은 더욱 화려하다. 퇴근길에 보던 처량한 달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방콕의 달은 이제부터 지갑을 활짝 열어젖히라며 손을 흔든다. 시내 곳곳의 야시장에는 쓰는 자와 버는 자의 웃음이 넘쳐났다. 나 역시 마음껏 즐겨도 주머니 사정이 괜찮았다는 후기에 하트를 누를 수 있을 것 같다. 아, 어제도 오늘도 너무 먹었다.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 방콕의 미세먼지 농도가 엄청나다는 소식이 떴다. 고통스러워하는 현지인의 사진과 함께. 동시에 방콕을 여행 중인 지인의 사진도 올라왔다. 행복해 보였다. 한 때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하지만 세상은 다면적이다. 둘 다 진짜다. 우리는 각자의 입장에서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래서 타인의 도시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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