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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Mar 29. 2019

단 하루

마카오

하루면 된다는 말이 싫었다. 소도시를 홍보하는 대표적인 문구이자, 물리적 여유가 부족한 여행자에게 썩 괜찮은 판단 기준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쩐지 서글펐다. 수많은 존재의 서사를 지워버린 느낌이다. 자꾸 듣다 보면 그대로 생각이 굳을 것만 같았다. 누군가 이틀, 삼일의 시간이 있다고 하면 건너뛰라는 말이 튀어나올지도 몰라.  



마카오

중국이면서도 중국인가 싶은 곳. 한때 포르투갈 식민지였기 때문에 풍경도 여느 중국과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중국이 먼저 떠오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중국과 괴리감이 있는 홍콩에서 배로 1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고, 하루면 충분히 돌아본다고 알려진 까닭에 홍콩 여행 중 짧게 들르는 경우가 많다.



낡은 유럽풍 건물과 초고층 빌딩을 동시에 품은 곳. 서로 다른 과거와 현재 모두 랜드마크가 되었다. 구시가지 한복판에서 오래전에 부서진 성당과 화려한 호텔을 바라본다. 사이에는 낡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섰고, 이따금 제법 높은 건물이 삐죽 올라와 있다. 꼭 그만큼의 삶이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잠시 스쳐가는 내가 담을 수 있는 건 몇몇 장면뿐이다. 이제는 다른 기능을 하는 대포처럼 오래된 무엇이나 발코니에 널린 빨래, 조용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꽃과 같은 현재의 조각.  


화재로 남은 게 정면뿐이라는 성당은 커다란 문처럼 보였다. 우리는 간신히 쇳덩이에 기대어 선 그를 등지고 앉아 어둠이 깔릴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충분히 즐겼다기보다는 기간이 늘어나도 부족할게 분명하니까. 요 무탈하게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언제든 부서질 수 었다. 미처 보지 못한 것에 가슴 치지 않고, 발도장 개수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을 쌓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아무리 땅덩이가 작다 해도 현지인과 이방인 구역의 서로 다른 생김새 같은 것들부터 명소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까지 하루에 담을 수는 없다. 당장 눈 앞의 성당만 해도 몇 개의 부조가 있나. 히드라 머리 위에 앉은 마리아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뭘까. 삼킨 것들을 소화시킬 시간은 또 어디에. 하루 만에 둘러볼 수 있다는 도시에서, 역시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행복한 하루를 보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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