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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Sep 01. 2019

하얀 집

미국 멤피스 Slave Haven Underground Railroad

특별히 하얀 집을 생각한다. 워싱턴의 백악관(White House)과 멤피스에 있는 단독주택 한채. 두 곳 모두 아무 때나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구석이 없다. 전자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 권력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반면 후자는 일반 가정집에서 출발하여 약자의 피난처가 되었다가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Slave Haven Underground Railroad Museum

1800년대의 멤피스는 면화와 노예 유통의 중심지였다. 워싱턴의 하얀 집 거주자는 노예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테지만, 멤피스의 하얀 집에는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독일 이민자이자 노예폐지론자였던 그는 정원이 딸린 소박한 단독주택에 도망 노예를 숨겨주었다.



당시 사람들은 피난처나 안전한 통행로와 같은 시설과 인력을 아울러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라 불렀다. 지하철도가 가장 활성화된 1850년대에는 미국 남부에서 캐나다, 멕시코, 카리브해로 가는 몇 개의 주요 노선과 수많은 2차 노선이 구성되기도 했다.



지하철도는 실제 철도와 관련된 용어를 사용했는데,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 편이 나았다. 우선 역(Station)은 피난처를 의미한다. 집주인은 외벽을 흰색 페인트로 칠하고, 상록수인 매그놀리아(Magnolia) 옆에 두었다. 도망 노예가 쉽게 알아보고 대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또한 역장(Station Master)은 피난처에서의 생활을, 기관사/차장(Conductor)은 다음 지점까지의 이동을 돕는 사람이다. 화물/짐(Cargo)은 도망 노예를 일컫는다.



박물관 관계자는 관람객들을 불러 모아 지난날들을 전하기 시작했다. 조상의 아픔을 하나둘 털어놓다가 가끔씩 깊은숨을 삼켰다. 마지막 코스는 지하실. 빛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어떠한 구멍도 내지 않았다. 짙은 어둠과 눅눅한 공기, 퀴퀴한 냄새만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무작정 다음을 기다렸을 것이다. 노예로 살기보다는 자유인으로 죽고 싶었던 사람들. 그래도 여기에는 농장에 없는 희망이 있었다.





하얀 집. 동화책에서 종종 보던, 커다란 그늘을 가진 나무 한 그루와 정원이 딸린 하얀 집은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한편 워싱턴의 하얀 집은 때때로 눈살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그냥저냥 흘려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놓인 하얀 집을 건조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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