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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Jan 31. 2020

언젠가 우리 다시

스페인 바르셀로나 가우디(Gaudi)

여행지에서 ‘다시’란 그냥 하는 말이었다. 입 밖으로 내면서도 알고 있었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숱하게 남아있는 미지의 나라를 밀어낼 정도로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하니까. 당연히 공사 중인 건축물의 완공을 고대하며 다시 가겠다는 말 같은 건 더더욱 할 수 없었다. 허공으로 날려 보낸 바람 중 하나라도 이룰 수 있는 날이 올까.


Antoni Gaudi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생각하면 반사적으로 안토니 가우디(Antoni Placid Gaudí i Cornet)를 떠올리고 만다. 그 당시의 건축 양식에서 벗어난 건축가의 이름과 유산은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어디서 이름을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덴마크 루이지애나 미술관이 그랬던 것처럼 멀고 높은 존재였다. 나는 너무 작았으니까. 비행기를 탈 수 있을 만큼 자랄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기하학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건축물은 지금도 낯설다. 모든 것에 감탄하던 초보 여행자에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크레인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미완성의, 이상한 모양의 성당. 유럽 성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이 사람은 뭘까. 어떤 환경에서 살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머지않아 긴 줄이 늘어서게 될 거란 생각은 못한 채 속 편하게 돌아다녔다. 마지막으로 소원이 모여있는 곳에서 나와 주변인에 대한 소망, 세계 평화 같은 말들을 남기고 돌아섰다. 다시 오고 싶지만 안 될 거라고 단념하면서.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라는 완공 목표(2026년)는 아득하게 먼 숫자였다.



도시를 조망하는 공원의 입장료가 지금은 제법 비싸다고 한다. 그때는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저 너무 놀라 타임머신이 있다면 생전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육지와 바다, 하늘을 비롯해 모든 생명을 담으려 했을까. 외계인이 지구의 무엇을 표현한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가우디는 기록물을 거의 남기지 않아 신비로운 존재로 남아있을 뿐이다.

구엘 공원 (Parque Güell)



2020이란 숫자가 요원하기만 했던 그때. 막상 올해의 시작은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동안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어떤 것들은 정말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가끔은 운이 따라주기도 했다. 그 사이에 바르셀로나에 다시 가야 할 이유도 하나쯤 더 생겼다. 어쩌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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