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연중무휴 : 보이지 않는 울타리
여러 사람이 한 덩어리로 뭉쳐 긴 시간을 보낸 관계 속에는 좋거나 나쁜 기억이 뒤섞여 있기 마련이다. 폭죽처럼 크게 터졌던 이벤트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한편, 공기처럼 은은하게 머물던 일들은 원래부터 없던 일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잊었던 것들이 불쑥 되살아나는 순간이 있다.
Hometown Check-IN
오랜만에 본가에서 며칠 지내기로 했다. 가끔 친구를 만나러 갈 때 자고 온 적은 있지만, 일 때문에 여러 날을 지내기로 한 건 처음이다. 외근지가 너무 멀어 찾아낸 대안이다. 마음 같아서는 마침표를 찍고 싶지만, 아무리 무기력한 지금이라도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 정도의 의지는 있다는 게 다행이다.
투숙객처럼 체크인을 예고한 뒤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출근을 위한 짐까지 챙기다 보니 멀리 가는 여행처럼 캐리어가 꽉 찼다. 필요한 것들을 테트리스처럼 채우다가 문득 떠나온 지가 벌써 제법 되었구나 싶다.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집에 더 이상 나는 없었다.
러시아워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캐리어를 끌었지만 대문 앞에서 멈칫거리고 말았다. 분명 외웠다고 생각했던 비밀번호를 또 잊어버렸다. 엄마는 이번에도 누군가의 생일이라고 말했지만, 나로선 기억할 만한 이유로 충분하지 않다. 이 작은 세계에서도 누구에게나 중요한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건 어렵구나. 이쯤이면 다른 방식으로 외우는 편이 낫겠다.
최대한 나를 덜어낸 공간에 다시 짐을 늘어놓았다. 익숙하지만 어색한 방. 엄마는 둥지를 떠난 자녀의 짐을 줄이고 싶어 했다. 사실 이제는 무엇이 남았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몰래 버린다고 해도 없어진 줄 모를 것이다. 나의 관심도 현재에 꽂혀있다. 주인이 바뀐 서랍장 앞에 선 나는 다이소 손님 같다. 흥미로운 아이템을 찾아 두근대며 기웃거리는 이방인에 가깝다.
Beyond Request
어느새 저녁 밥상이다. 정확히 나의 기호에 맞는 밥상에 힘 빠진 몸뚱이를 끌어다 앉았다. '내일은 뭘 해줄까?'를 시작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몇 시에 일어날지 질문이 쏟아진다. 기시감이 들면서도 이질적이다. 매일 귀에 피가 나던 날이 있었지. 지금과 정확히 대비되는 과거의 어딘가. 내가 이 집에 들어오면 엄마는 그 시절로 돌아간다. 다만 이제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태워다 주겠다는 말소리가 TV 소리에 섞였다. 뭔가 목구멍, 아니, 어딘가 닿을 수 없는 마음 한구석이 가려웠다. 아홉 살 때 준비물을 잊었다가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고 돌아왔을 때가 생각났다. 내가 알림장을 잘 챙기지 않았으니까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선택과 책임의 주체가 같음을 강조하던 집인데, 무슨 일이지? 심지어 아빠는 본인 때문에 딸이 지각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도 다 똑같고, 시간도 충분하다는 말을 아무리 해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영락없는 할아버지였다.
생각해 보니 아빠는 은퇴 후 몇 달 동안 나를 지하철역에 태워다주곤 했다. 엄마는 차에서 먹을 주먹밥을 챙겼다. 손을 꽉 쥔 모양으로 뭉쳐진 김치 참치 주먹밥은 늘 맛있었다. 그러니까 뭐든지 홀로 감당해야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혼자서 지금만큼 왔을 리가 없다. 잊은 것은 나뿐이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만든 울타리는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어떤 때는 다가왔다가, 다시 멀리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틀어지거나 틈이 생겨 누군가는 크게 상처 입었다. 완벽해지는 방법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모두가 그렇듯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으려 애썼을 뿐이다.
아빠는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배운다. 나무를 그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나는 오래전에 수채화를 배우다가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공감해 주었다. 이제 어떤 것들은 내가 먼저 배워 알려주거나 대신 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하나의 가정이라는 작은 세계는, 계속해서 울타리를 세우고 지키면서 굴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울타리 안에 있던 이들이 반대로 울타리가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