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원하는 사소한 무엇 ① 카페
제발 그만하자. 이미 여러 번 마음을 먹었지만 결국 다시 저지르고 후회한다. 의지가 약하다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도 지겹다. 혼내거나 비난하는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런 식으로는 몇 걸음 나아가도 결국 제자리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상사의 마음에도 기후 위기가 찾아온 게 분명하다. 예전에는 리드미컬한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예측 불가능한 회전컵에 실린 기분이다. 그런데 이번 달은 유난했다. 여러 날 계속되는 출장에 이동이 너무 많았다. 이번 주는 갑자기 날벼락까지 맞아 쫄렸다. 과연 회전컵은 알아서 멈출까 아니면 뒤집어질까.
퇴근 인사와 함께 메신저도 로그아웃. 이제 주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스위치가 꺼진 듯 기분이 탁 가라앉았다.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선뜻 내키지 않았다. 하염없이 쇼츠와 릴스만 넘겼다. 넷플릭스? 한 작품도 끝까지 못 봤다. 충동적인 쇼핑과 취소도 포함이다. 그렇게 내내 아쉽고 모자란 마음으로 토요일 안녕.
오늘은 안 돼
눈을 뜨자마자 머리부터 질끈 묶었다. 거침없이 모자를 눌러쓰고 집 밖으로 나왔다. "오늘만은 어제처럼 보내고 싶지 않다"고 느낄 때 가끔 하던 일. 거창한 무엇은 아니다. 도파민이 확실하게 보장된 행위는 그만한 결심을 요구하곤 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못 할 확률이 높았다.
그저 모닝 세트를 먹는 것. 슬리퍼 차림으로 터덜터덜 걸어가 집 앞 카페에 간다. 늘 앉는 자리에 노트북을 내려놓고 핫스팟을 켠다. 언제부턴가 직원이 커피를 먼저 주곤 했다. 한 모금 들이키며 서핑을 시작한다. 아침에는 손님이 드물어 음악 소리가 가득한 편. 선곡이 맘에 들면 더 좋다. 이리저리 정처 없이 스크롤을 굴리다 보면 어느 새 프렛즐 굽는 냄새가 음악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이제 곧 내 차례. 커피를 홀짝이며 갓 구운 프렛즐을 뜯어먹으면 워밍업 완료.
최대 세 시간 정도였다. 보통 두 시간 정도 지나면 다시 흐트러지기 때문에, 그 사이에 뭔가를 하는 게 좋다. 덕분에 먹고 살기 위한 지식도 삼켰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많이 와서 어둡고 기압이 낮은 날이면, 주광색 조명이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집중력을 올리는 데 이만한 곳이 없다. 운이 좋으면 평소에는 눌러 둔 생각에 빠지거나, 음악에 더 공감할 수 있기도 했다. 균형이 깨진 나를 흔들어 조율해 주는 것 같았다.
나만 알고 싶은 이름
이름은 있지만 간판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곳. 차로 십 분쯤 떨어져 있다. 홍보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알 수가 없다. 테이블 간격이 넓고 멀티탭도 널려있어서, 사장이 건물주가 아닐까 늘 의심한다. 갈 때마다 망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프렛즐 카페와 달리 사람들의 목소리가 음악을 덮는 일이 거의 없다. 비슷한 목적으로 오는 사람이 많은지 만석일 때도 늘 조용하다.
한동안 깜박거리다 안정을 찾는 조명 아래의 자리를 좋아한다. 그저 접촉 불량이라든지 기술적인 문제겠지만 이성이 마비된 날에는 막 잠에서 깬 아침의 휴먼 같다는 생각도 했다. 테이블도 의자도 무엇하나 과하지 않은 자리. 창밖의 계절이 생생하게 와닿으면서도 고립감을 준다.
집 앞 카페와 같은 루틴이다. 다만 여기서는 시나몬을 많이 뿌린 카푸치노를 마신다. 그렇게 오전을 채우고 점심을 먹으러 나서면,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 들곤 했다. 대단한 무엇은 하지 않았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책을 몇 쪽 읽고, 미루던 결정을 내린 정도. 그러니까 무엇이라도 '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나머지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도, 덕분에 뒤죽박죽된 기분으로 망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카페는 그렇게 나를 돕는다. 오래 전 백수 생활이 길어져 지치던 시절에, 한 번 더 자기소개서를 쓸 수 있게 해주었던 공간이다. 기억도 안 나는 이런저런 일들에 마음에 구멍이 뚫렸을 때도 그랬다. 과거에 나를 구원했던 것들이 지금의 나를 돕는다. 어쩌면, 그런 것들을 하나씩 다시 찾아가 보는 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