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원하는 사소한 무엇 ② 영화관
사실 나는 언제라도 쉽게 무너진다. 어둠 속에서 스크린을 대면하는 것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잊었지만, 몇 번 더 그런 우연이 찾아온다면? 과연 좋은 기억이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다시 이름을 붙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두울수록 좋아
가만히 두 시간을 앉아서 앞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재미있는 책은 몇 번이고 다시 읽을 수 있었지만 영화 한 편을 본다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움직이거나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기 일쑤였다. 가족들이 주말의 명화를 보고 있을 때면 스스로 열외를 선택하곤 했다.
당연히 영화표를 사느라 용돈을 탕진해서 밥을 굶어야 하는 미래 따위는 상상할 수 없었다. 너무 진지하거나 아프거나 어려운 이야기들만 이야기하던 작은 극장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 팝콘도 못 먹게 하는 극장에 들어설 때의 설렘을 기억한다. 갑자기 맞이한 어둠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아 불편한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보이지 않을수록 더 좋은 어둠이란 게 세상에 존재한다면 영화관뿐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어둠은 불안이니까. 하찮은 나를 삼켜 세상과 분리하는 커다란 스크린, 온몸을 감싸는 소리와 음악. 관객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욱 좋았다. 이대로 영화관이 망하는 건 아닐까 괜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였다.
그토록 따뜻했던 공간
한없이 가벼운 영화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영화관은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언제나 변함없이 어두웠으니까. 가끔 상술에 지지 않고 스몰 사이즈의 팝콘을 샀을 때는 뿌듯하기까지 했다. 단돈 천 원만 더 내면 두 배 이상 퍼준다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자신을 칭찬하며 으쓱거렸다.
매번 대단히 몰입했던 것은 아니다. 조조영화를 보겠다고 밤을 새우고 막상 상영 시간 내내 잠든 적도 있다. 가끔은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서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세 편을 내리 보는 재미도 있었다. 심야는 심야라서 좋고 조조는 조조라서 좋았다. 혼자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해도 좋았다.
매 순간이 좋다며 티켓을 스크랩하면서 누구와 봤는지 메모하고 짧은 감상을 써 놓을 정도였다. 수시로 어둠 밖에서 어둠 속으로, 다시 바깥을 오가며 사람과 이야기를 넘나들었다. 덕분에 기쁨이나 설렘, 즐거움은 더 크게 누리고, 피할 수 없는 슬픔이나 괴로움이 지나갈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다 지난 일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극장이 사라졌다. 원인은 분명하지 않다. 모든 것이 합쳐서 증폭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코로나와 OTT의 여파, 몸이 아프기 시작했던 것, 심야 주차가 힘든 곳으로 이사 등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끝도 없다. 무엇이 결정적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냥 어느 순간 끝났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 몽실몽실한 기분으로 들어서던 매표소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심지어 테이블 주변은 지저분했다. 상영관에는 온갖 자극적인 음식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좌석이나 복도에도 떨어진 팝콘이나 쓰레기가 눈에 띄었다. 여러 이유가 섞였겠지만, 현실을 벗어나게 했던 안락한 공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었던 게 결정적이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나를 밀어내는 어둠이 된 게 분명하다.
극장을 잊은 후로 넷플릭스에서 판타지 시리즈물을 틀어댔다. 사유를 권하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렸을 때는 비현실적인 것을 싫어했는데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마법이나 마녀 같은 키워드만 쫓아다녔다. 그것조차 건너뛰기를 눌러대고 휴대전화로 아케이드 게임을 하며 대충 스토리만 따라간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때 취미를 물었다면 글쎄, 게임이라고 해야 했으려나.
다시, 어둠
역시 이유는 모르겠다. 화이트 노이즈로 틀어둔, 하루 종일 흘러가는 유튜브에서 어떤 영화를 소개하는데 솔깃했다. 막상 상영 시간이 다가오자 다시 귀차니즘이 밀려와 예매를 취소할 뻔했지만, 다행히 극장에 가는 데 성공했다. 매표소는 한산했다. 예전에 밤늦게 영화를 보러 갔을 때처럼 묘하게 평화로웠다. 대중이 좋아할 만한 영화가 아니라서인지 관객도 별로 없었고, 과자나 팝콘 같은 것들을 먹는지 공기도 괜찮았다. 불쾌한 인상을 제법 지워낼 만큼 안락했다.
며칠 뒤 우연히 어떤 음악이 귀에 꽂혔다. 영화음악이었다. 그러니까 감수성이 지금처럼 납작해지기 전에, 좋아했을 법한 그런 음악. 극장에 한 번 더 가보기로 했다. 며칠 후면 막을 내릴 것 같아서 되는 대로 빨리. 몇 년만의 조조다. 이번 영화관은 연휴라 그런지 아침부터 사람이 제법 많았지만 적당히 생기 있고 쾌적한 분위기였다. 모처럼 키오스크 앞에 섰는데 역시는 역시. 아직도 팝콘 사이즈 전략은 유효한가 보다. 스몰과 라지 사이에서 천원을 아꼈다. 이런 게 도파민인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질 게 뭐람.
영화는 음악 그대로였다. 내가 생각했던 감성과 결이 딱 맞았다. 새롭다거나 기술적으로 훌륭하다거나 하는 평가와는 좀 다르다. 어떤 시절의 마음이나 기분에도 추억이라는 꼬리표를 달 수 있다면, 그를 불러일으켜 줬다고 하면 될까. 주변에 그 또래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앉아있었던 것까지. 뭐랄까 모든 것이 하나의 세계로서 잘 어울렸다.
영화관은 언제나 따뜻한 공간이었다. 입구에 들어서기까지의 모든 일들을 지우는 어둠. 어둠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관에서 배웠다. 현실의 어둠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애쓰던 날의 영화관을 아직 기억한다. 자정까지 야근에 시달리다 퇴근길에 심야 영화를 보면서 마음을 환기했던 날도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감상을 나누던 시간까지도. 이제 다시, 어둠에 기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