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있는 영상 프로그램에 나온 책이 뜬다는 속설은 하나의 원칙이 되고 있다. 좋아하는 셀러브리티(celebrity)이 등장하는 영화, TV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 특정 책의 표지나 내용이 소개되면 구매 욕구가 급상승한다. 해당 책은 프로그램 시청 전·후의 판매량에도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렇게 미디어 노출을 통해 홍보 효과를 얻어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미디어셀러(media seller)라고 부른다. 국내에 미디어셀러 현상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2년부터다. 당시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20위 중 8권이 MBC TV 프로그램 <느낌표>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서 소개한 책일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한 지금까지 미디어셀러의 파급력은 확장되고 있다.
미디어셀러의 정의와 현황
영화를 지칭하는 스크린과 베스트셀러의 합성어인 스크린셀러(screen seller)는 영화를 매개로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면, 미디어셀러는 스크린셀러를 포함해서 드라마, 예능, 교양 등 TV를 통해 보급되는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매개로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된 상황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베스트셀러라는 지위 획득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구분으로 봐야 한다. (조갑준, 한국 미디어셀러의 유형 및 동향 연구: 2013-2017,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2019.)
스마트 디바이스와 콘텐츠의 홍수 속에 출판 콘텐츠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고 있는 책 소비 현상에서 미디어셀러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출판계에 강한 자극제가 된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책과 독서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책의 발견성을 제공하거나 구매로 연결하게 만든다. 부정적 측면으로는, 책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영상 콘텐츠의 힘에 기대어 단기간에 베스트셀러를 노리는 지나친 상술이라는 지적도 있다. 오랫동안 출판계에서 걱정하는 것은 활자 텍스트와 영상 텍스트의 헤게모니가 역전되고 있다는 부분이다. 여전히 미디어셀러는 출판가에 양날의 검이라는 평가는 계속되고 있다.
확장된 의미로서의 미디어셀러는 영화와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외에도 유튜브를 활용하는 북튜버(Book Tuber)가 소개하는 책도 포함될 수 있다. 스타 유튜버가 소개하는 것만으로 출간일이 한참 지난 책이 갑자기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이런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해당 크리에이터의 고정 팬들이 자발적 홍보와 판매로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다. 책 소개를 중심으로 하는 유튜브 채널이 급증하면서 유튜브셀러(YouTube seller)에 관한 잡음도 커지고 있다. 소위 뒷광고 논란과 함량 미달의 책을 소개한다는 평가도 있지만, 강력한 영상 콘텐츠 플랫폼에서 독서문화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2021년 연초부터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책들이 국내 출판 시장의 훈풍을 만들고 있다. 교보문고의 1월 2주간 베스트셀러 집계에 따르면, 셀럽들이 인생책을 소개하고 기부하는 KBS 2TV <비움과 채움-북유럽>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소개된 책들이 빠른 속도로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갔다. 프로그램 출연자인 김은희 작가가 추천한 <나를 부르는 숲>(빌 브라이슨 지음, 까치)은 방송 전 대비 판매량이 101배 증가했다. 스타강사 출신인 김미경 대표가 소개한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지음, 문학동네)은 역주행하면서 소설 분야 9위에 올랐다. ('TV 예능 프로그램'서 소개된 책들, 연초 베스트셀러 상위권, 2021.01.18, 매일경제)
예능 프로그램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유명 저자가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1월 초에는 1990년대 감성연애시로 유명했던 원태연 시인이 출연하면서 그의 대표작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원태연 지음, 북로그컴퍼니)가 단숨에 시분야 1위에 올랐다. 후속 편에 출연한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지음, 민음사), <시선으로부터>(정세랑 지음, 민음사)등은 이 방송 후 판매가 2.3배 증가했고, 겨울방학에 읽으면 좋을 책으로 추천한 소설 <0시를 향하여>(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해문출판사)는 판매가 35배 증가하면서 독자들의 호응으로 이어졌다.
OTT와 출판 콘텐츠 IP의 급성장
뉴미디어 시대의 복잡성은 콘텐츠 산업의 융복합 현상으로 연결된다. 출판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각종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토리의 원천인 책을 시작으로 각종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만큼 대중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검증된 스토리를 찾는 콘텐츠 제작자와 공급자들도 많아졌다. 2020년에 시작된 코로나19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수요가 늘면서 넷플릭스, 왓챠, 디즈니플러스, 카카오TV 등 국내·외 OTT 사업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 상황은 계속될 전망이다.
OTT 사업자들은 매주 새로운 콘텐츠를 고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공급자 확보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독점 콘텐츠 확보를 통한 고객 확보와 유지가 사업 성공의 절대적인 요인이 되면서 오리지널 작품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그들은 종이책으로 출간된 문학소설과 에세이 등에서 원천 스토리를 확보하는 방식을 탈피하고 있다. 모바일 기반의 산업 변화로 인해 출판 콘텐츠 범주에 속하는 웹소설과 웹툰으로 눈을 돌렸다. 이미 <김비서가 왜 그럴까>(정경윤 지음), <미생>(윤태호 지음), <신과 함께>(주호민 지음)등 시장 초기부터 지금까지 기성 문학분야에서 거둔 성공 사례를 훨씬 뛰어넘는 숫자를 보여주고 있다.
웹소설과 웹툰은 대중문화계 비주류로 여겨졌지만,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면서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드라마 제작업계에서는 “웹툰과 웹소설을 보지 않으면 요즘 트렌드를 읽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는다. 작가가 드라마 제작을 제안하기 전에 드라마 제작사가 앞다투어 인기 작가와 계약하려 하고 있다. (드라마-영화로 재탄생한 웹툰-웹소설… 당당히 주류로, 2020.12.25, 동아일보)
네이버와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 국내 대형 IT기업들이 국내 웹소설과 웹툰 시장을 거의 장악했고, 최근 영화와 드라마 제작사와 콘텐츠 유통 플랫폼까지 자체 또는 계열사로 운영하는 등 거대한 콘텐츠 플랫폼 제국을 구축하고 있다. 포털 내 또는 공격적인 투자 인수로 확보한 플랫폼을 통한 웹소설과 웹툰 서비스 등 1차 콘텐츠를 기반으로 영화·드라마 등을 선보이면서 주도권 싸움에 나섰다.
지난 1월 네이버는 세계 최대 웹소설 유통업체인 왓패드(Wattpad)의 지분 100%를 6억 달러(약 6533억 원)에 인수하기로 발표했다. 네이버의 역대 최대 외부 법인에 대한 투자 규모다. 왓패드는 세계 각국에서 9천만 명 이상 사용하고, 약 500만 명의 작가가 쓴 10억 편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월 사용 시간은 230억 분에 달한다고 네이버는 설명했다.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글로벌 OTT 시장을 노리고 네이버가 이번 투자를 단행했다는 분석이다.
네이버웹툰은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스위트홈>(김칸비, 황영찬 지음)과 <여신강림>(야옹이 지음) 등이 한국과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드라마 등 2차 콘텐츠를 확대하고 있다. 네이버는 올해 <미니게임>의 웹 예능과 <'간 떨어지는 동거>, <유미의 세포들> 등 웹툰 IP(Intellectual Property)의 영상화에 주력할 예정이다. 카카오페이지도 다음웹툰 <경이로운 소문>(장이 지음)을 OCN 드라마로 영상화하고 넷플릭스에도 선보였다. 해당 웹툰은 6400만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국내 누적 조회수 1억4천만 건, 누적 열람자 수 670만 명을 기록했다. 동명의 드라마는 1회 시청률 2.7%로 시작해서 최종회에 11%로 OCN 역대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다. 넷플릭스에서 ‘한국의 톱10’ 콘텐츠 1위에 올랐으며, 홍콩·말레이시아·베트남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카카오는 3월에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M을 합병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로 탈바꿈시킨다. 카카오페이지의 원천IP와 카카오M의 배우 매니지먼트를 결합해 시너지를 낸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업계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출범해 웹툰, 영상, 음원에 이르는 콘텐츠 수직계열화를 이루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한다. (웹툰 업계 '체급 향상'으로 글로벌 시장 정조준, 2021.02.04, IT조선)
출판 IP 시장을 향한 새로운 도전
최근 게임업계의 출판 IP 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컴투스는 1월에 스토리게임 플랫폼 '스토리픽'에서 인기 IP 기반의 신작 스토리 콘텐츠 <늑대의 유혹>(귀여니 지음)을 공개했다. 컴투스는 ‘폴더폰', '80바이트 문자', '미니홈피' 등 뉴트로 감성으로 무장한 인터넷 소설계의 레전드 <늑대의 유혹> IP를 활용해 새로운 스토리 콘텐츠를 제작하고, 그 시절 추억에 공감하는 유저들과 인터넷 소설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유저들도 쉽게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새롭게 각색된 버전의 스토리를 담아냈으며, 스토리게임의 특성상 기존 원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엔딩도 만나볼 수 있다. (컴투스, ‘늑대의 유혹’ IP 기반 신작 공개, 2021.01.21, 디지털타임스)
출판 콘텐츠 IP 사업이 급성장하면서 관련 투자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종합 콘텐츠 그룹인 위지윅스튜디오는 지난 1월에 장르소설 출판사 고즈넉이엔티와 지분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고즈넉은 장르소설 작품 120편, 작가진 100명 규모를 갖춘 출판사다. 소설 <청계산장의 재판>(박은우 지음)은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와 드라마 제작 옵션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외에도 40여 작품이 영화, 드라마, 웹툰 등으로 2차 판권이 계약되어 있으며,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 동남아시아 등으로 20여 편의 수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고즈넉은 작품 집필 단계부터 영상화 등 2차 제작을 염두에 두고 전담 직원이 붙어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체계적인 작품 개발 시스템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위지윅 "장르물 IP 강화"...고즈넉이엔티 지분투자, 2021.01.11, 머니투데이)
OTT와 IP 시장의 원활한 연결과 사업 기반 확충을 위해 정부도 다양한 지원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 2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로 되찾는 국민 일상, 문화로 커가는 대한민국'을 목표로 2021년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반 시설(인프라)을 구축하고 기술과 융합된 비대면 콘텐츠 창작과 제작을 지원하는 등 디지털·비대면 방식으로의 전환을 이끈다는 계획이다. 그중에서 콘텐츠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방송·OTT 영상 콘텐츠 펀드 300억 원을 포함한 문화 산업 자금(2150억 원)을 조성한다. 문체부는 OTT 시장 확대 등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응해 국내 플랫폼 사업자와 제작사 간 협업을 통한 콘텐츠 제작 지원(25억 원) 등을 추진한다.
미디어셀러에서 웹소설과 웹툰을 중심으로 한 IP 시장까지 최근의 주요 상황을 살펴봤다. 출판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종이책에 한정된 관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 일상에 스마트 디바이스와 모바일 네트워크 등 유무형의 각종 테크놀로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책을 구성하는 중심으로 텍스트와 이미지가 사용되었지만, 이제 오디오와 비디오는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출판의 외형과 전달의 깊이와 넓이를 키우고 있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이 접목된 책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책의 제작 기술과 유통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책의 발견성도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짧은 이야기가 큰 서사로 다시 기획되어 영상 콘텐츠로 제작되면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드는 시대다. 즉, 원석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매체의 전달력과 콘텐츠의 가치가 다시 매겨진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집콕 생활과 재택 근무도 길어지고 있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20년 상반기 급감했던 상황이 하반기때 빠르게 회복하면서 전체 출판 소비량은 증가했다. 영상 콘텐츠와 스낵컬처(snack culture)로 불리는 웹소설과 웹툰의 이용량도 급증했다. 출판계 미디어셀러 현상은 이러한 문화적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영상 콘텐츠의 홍수 속에 책의 발견과 독자 발굴 채널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은 무시할 수 없다. 매력적인 영상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OTT 시장에서 책이 가진 힘은 새롭게 표현되고 있다. 책이 영상으로, 영상이 책으로 변형되면서 사람들의 상상력과 함께 IP 시장도 나날이 발전과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 국회도서관, 2021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