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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꺽정 Nov 01. 2024

1_3 인간의 존엄성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보통의 생각은 ‘인간은 다른 존재보다 좀 특별하고 지능도 높고, 본능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줄 알기에 존엄한 존재이다’라는 것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인간이 존엄하다’라는 말은 중학교 사회과목 시간에 처음으로 들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이 말은 다소 어색하게 들렸다.  나는 1970년대부터 시골농촌에서 근 16년간을 자랐는데, 주변 사람들이 존엄하다는 느낌을 가진 적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름대로 주어진 삶을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이 존엄하다 소중한 존재이다 혹은 미천한 사람들이다’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은 것이다.  다만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고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난하다고 하여 측은지심은 들었지만 그들이 미천한 존재라는 생각은 없었고 부자라고 하여 그들이 존엄한 존재라는 느낌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갑자기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고 하니 다소 어색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나도 존엄한 존재가 되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는 말은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  ‘인간은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하면서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는 차원이 다른 존엄한 존재임을 설명했지만 설득력 있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다른 동물과 비교하여 인간의 다른 점을 찾는 것보다는 같은 점을 찾는 것이 더 쉬워 보인다.  인간은 먹고 자고 섹스하고 번식하고 똥을 싼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은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 공포를 느끼고 맞서 싸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동물이 다치면 피를 흘리듯이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3일을 굶으면 이성을 잃듯이 동물도 그렇다.  인간이 감정을 가지고 있듯이 동물도 그런 것 같다.  인간이 언어를 가지고 있듯이 동물들도 초보적인 소통수단을 가지고 있다.  동물들이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부족들도 인간이지만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보기에 인간과 동물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없다.  다만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지능이 특별이 발달한 점이 다른 점일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그들보다 우수하다고단정하기에는 좀 더 고려해 보아야 한다.  태평양 한가은데 물속에서는 인간보다 물고기가 더 우수한 존재일 것이다.  그곳에서는 우수한 지능보다는 물에 빠져도 죽지 않는 능력이 더 우수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그에 적응하기 위하여 특정 기능에 더 발달하거나 덜 발달한 것이지 그 기능 한 두개를 근거로 어떤 존재가 더 탁월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차별적인 진화된 지능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 우월하기는 하지만, 그 차이 하나만으로 인간과 동물의 우열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차별적인 지능으로 인간이 다른 동물을 지배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존재라고 할 수 없고,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고 할 수 없고, 그래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존엄한 존재라는 논리를 전개할 수는 없다.


지능과 이성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중세 이후의 서양철학에서는 인간과 이성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논리의 전개도 어렵고 직관적으로 와 닿지가 않는다.  이성을 정의한다면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합리적이고 편향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능력’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 이성적이지 않은데 중세 이후의 서양철학자들이 인간을 이성이라는 틀에 끼여 맞추려고 했으니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이 이성적이었다면 인간은 역사를 이렇게 써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이성의 역사가 아니라 본능의 역사였다. 인간의 역사는 본능을 현실화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인간은 이성으로 역사를 써 나아간 적이 없다.  인간의 역사는 본능과 본능간의 충돌, 크고 작은 이해상충으로 인한 다툼, 연속적인 전쟁의 역사이다.  이성이라는 것은 본능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십자군전쟁이 이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발생된 일인가? 미국의 남북전쟁이 노예해방이라는 이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발생된 일인가?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였다면 인간의 역사는 우리가 겪어온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비교해 볼 때 지능에 특화되어 진화하였다는 것 외에 차이가 없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도 아니고 존엄한 존재도 아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존엄하다는 인식은 뛰어난 지능을 바탕으로 인간이 지구의 대부분을 지배하다 보니 생겨난 잘못된 인식이다.  인간과 다른 존재들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은 인간도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고 그 이성으로 본능을 통제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한 사유와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성과 지능의 차이를 혼란스러워 한다.  지능이 높으면 이성적이라고 착각한다.  지능과 이성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어서 존엄하다가 아닌, 인간은 지능에 특화되어 진화한 생명체이며 이는 이성적인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본능에 충실한 다른 생명체와 별반 차이가 없는 존재이다, 다만 우수한 지능을 바탕으로 다른 동물들이 해내지 못한 발달된 문명을 만들어 냈다’ 라고 표현해야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점은 인간을 파악하는데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다.  만약 인간이 동물과는 다른 존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파악하려고 한다면 그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철학과 모든 학문의 출발점은 인간과 동물이 다르지 않다라는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개념을 토대로 우리는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하고 사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항상 오류를 범할 수 없고 그 결과는 참혹할 수 밖에 없다.


인류가 직면한 대부분의 문제들이 인간이 이성적이고 존엄하다는 인식,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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