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인간이 존엄하다 또는 우월하다는 인식이 생겼났을까?
고대사회에는 이런 인식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사람들의 생각은 동양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만물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는 탈레스의 말은 이를 대변해 준다. 그 당시 사람들은 ‘뭐가 더 존엄하다. 인간이 더 우월하다’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있는 그 자체로 존재를 인정했던 것 같고 인간이 다른 존재보다 우수하니, 이성적인 존재이니 하는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탈레스의 말대로 만물의 하나하나에 신이 깃들어 있기에 이세상 모든 만물이 존중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동양 사람들, 특히 우리 민족의 존재에 대한 기본 생각은 천지인사상으로 귀결된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그 사이에서 인간이 존재한다. 이 사상에는 하늘을 존중하고 땅을 존중하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특별히 인간만을 존중하는 생각은 담겨있지 않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 또는 다른 존재와 우월하다는 인식은 유대교/기독교로 인하여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유대교/기독교는 인간을 여호와로부터 선택 받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호와의 아들인 예수도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 이외의 존재들은 여호와로부터 선택 받은 존재가 아닌 부수적인 존재 또는 하등한 미물로 본다. 당연히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여호와의 자식이 아니기에 존엄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이라고 해서 다 존엄한 것도 아니다. 여호아 또는 예수를 믿지않는 인간들은(그들은 이들을 이교도라고 부른다) 선택받지 못한 존재이기에 배척 내지 척결의 대상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세계관은 4세기경 기독교가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1세에 의해 로마 국교로 지정된 이후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가면서 전세계로 퍼지게 된다.
‘인간 특히 기독교도는 선택 받은 존재이고 우월한 존재이다’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은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으로 발전했고,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엄한 존재라는 인식으로 확대 발전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기독교적 세계관은 인류역사상 유일무이하다. 서양문명의 뿌리인 그리스/고대 로마 문명에서도 이러한 세계관은 없었다.
만약 바울이 기독교를 만들지 않았다면, 기독교가 로마에서 번성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되어 있을까? 아니면 기독교 또는 기독교와 비슷한 종교의 발생은 인류에 있어 우연이 아닌 필연일 수밖에 없는가?
기독교는 정치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확대된 종교이다. 이는 기독교가 정치인들이 활용하기에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인들은 항상 민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을 찾는다.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확대되어가는 영토와 타 민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통치하는냐가 큰 고민이었다. 로마가 이탈리아반도에 국한된 시기에는 없던 고민이다. 고대 로마의 제도 및 시스템은 합리적이었고 훌륭했다. 지금 미국의 시스템이 로마시대의 시스템과 매우 유사하다. 현대의 미국이 로마시스템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을 정도로 로마의 시스템은 훌륭하였다. 로마에 의해 정복당한 세력들은 오히려 로마의 지배를 환영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로마의 지배는 종약탈과 종속의 관계라기보다는 대등한 동반자 관계였다.
하지만 로마가 이탈리아반도에서 갈리아, 게르마니아로 세력을 확대하고 브리타니아, 북아프리카까지 영토를 확대하게 되자 로마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과거의 시스템으로는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재배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원로원을 중심으로 한 공화정 통치시스템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았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시작으로 로마는 황제가 통치하는 제정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초기 제정시대에는 티베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등 능력있는 황제들이 있어 로마는 굳건하였지만, 이후 무능력한 황제들로 인해 로마는 서서히 균열되기 시작한다. 황제의 무능력이나 리더쉽의 부족으로 로마의 균열이 시작되었다고 보기보다는, 황제의 리더쉽으로 감당하기에는 로마의 영토가 너무 광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당시 황제들은 광대한 영토를 어떻게 통치해야 지가 큰 고민이었다.
A.C 4세기경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이러한 고민의 해결책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기독교세력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한 것은 기독교세력을 등에 업고 자신의 통치기반을 공고히 하고자 함이었다. 제국과 종교의 결합은 로마체제를 유지하는데 효과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효과적이라는 의미는 로마체제를 유지하는 관점에서만 효과적이었다는 의미이다. 덕분에 로마는 천년제국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유럽은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시대에 진입하게 된다.
만약 기독교라는 종교가 없었다면 로마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그 이후 어떤 식으로 세계역사가 전개되었을까?
바울은 기독교를 만들고 로마에서 포교활동을 했지만 로마에서 이질적인 외부종교가 쉽게 퍼져나간 것은 로마의 사회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기본 교리는 ‘메시아가 나타나서 핍박받는 너희를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니 주예수를 믿어라’이다. 로마사회에서 이런 교리를 주창하는 종교를 누가 믿을 것인가 생각하면 답은 명확하다. 핍박을 받고 가난한 빈민 노예 등 사회의 하층민들이다. 로마는 기본적으로 다신주의 사회이다. 그리스의 문화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와 로마는 결이 맞지 않는다. 로마는 문화적으로 절대로 기독교가 대중화가 될 수 없는 사회이다. 따라서 로마의 중산층이상 지배층에서 기독교를 믿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로마가 초기에 기독교를 탄압하고 기독교도를 처형했던 것도 이런 문화적인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로마사회에서 가난한 하층민사회에서 퍼져나갔고 빠르게 세력화가 이루어 진 것은 로마사회가 예전처럼 강건한 체제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로마의 사회는 주류인 중산층이상의 시민 또는 귀족보다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천하게 대접을 받는 빈민층이 무시못할 정도로 두텁게 형성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사회는 기독교가 퍼져 나가는데 매우 적합한 배양토였던 것이다.
로마가 제국의 영토를 자신들의 통치능력밖으로 넓힌 것은 인류역사의 관점에서 커다란 실수였다라고 보여진다. 로마인들이 그들의 영토를 적정한 범위내로 스스로 제한했다면 로마제국 초기의 훌륭했던 통치시스템은 여전히 잘 작동했을 것이고 특정종교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유럽사람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철저하게 막았던 중세시대는 없었을 것이고 십자군전쟁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종교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시작인 ‘인간은 우월하다’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개념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로마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로마황제의 기독교 국교화 결정은 피토스(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린 판도라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