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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빛 May 22. 2019

S#6. 빌리 엘리어트

개천에서 난 용은 왜 멸종위기종이 되었는가

욕심 많은 아이



나는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생 주제에 사인펜 하나조차도 그 색만 닳을까 빌려주지 않았던 옹졸한 인성의 소유자였다. 그 동네에서는 꽤 넉넉한 형편이었으나 내 손에 쥔 것 하나가 더 중요하고 뭐든 내가 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다소 싸가지 없는 천성을 타고났음에도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강제로 겸손한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어려운 시절을 지나 안정을 찾아가는 보통의 인생 사이클과 달리 여유롭게 시작해 갑작스러운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가족 전체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주기에 충분했다.


유년기를 보냈던 곳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쌓아온 나름 괜찮은 친구이자 모범생의 이미지로 편하게 누려왔던 교우 관계나 학업 등이 새롭게 이사한 곳에서는 완전히 제로 상태가 되었다.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존재로 주목받고, 예상외로 교육열이 센 환경에서 살아남기는 큰 도전 과제였다. 고액의 사교육을 받기는 부담스러운 환경에 더해 혼자서 해도 이 정도 잘 한다를 보여주고 싶었던 자의식 과잉으로 줄곧 혼자 힘으로 고군분투해야 했다. 일등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최선을 다하는 노력은 타고나지 못해 만년 2등짜리 인생이었지만,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서울로 떠나 성공한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욕심은 항상 품고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제이미 벨)’도 어쩌면 이기적인 아이였다. 영국의 탄광촌에서 줄곧 자라오며 광산 노동자인 아버지와 형, 할머니와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아이지만, 운명과도 같이 발레 수업을 접하며 처음으로 욕심나는 것을 갖게 된다. 권투 수업에서 한눈을 팔고 발레를 배우게 된 후 빌리의 머릿속엔 항상 춤 생각만 간절하다. 어쩌면 그의 재능보다는 춤에 대한 사랑을 알아보았을 선생님은 빌리의 아버지에게 빌리가 런던에 있는 발레 학교 오디션을 볼 수 있도록 지원해줄 것을 권유한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더해 장기 파업 중이었던 빌리의 아버지는 런던까지 갈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헐뜯었던 ‘배신자들의 버스'에 올라타게 된다. 비록 형의 만류로 다른 방안을 찾았으나 자식의 미래를 위해 본인의 신념을 버린 것이다. 철없는 빌리는 오디션장의 위압적인 분위기와 긴장감을 이기지 못해 괜스레 멍청한 곳이라 투정 부리지만 자신의 꿈을 찾는 첫 발돋움에 성공하게 된다.



정신적 금수저



한 아이의 인생이 바로 서기까지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부모님의 지원이다. 아직 홀로서기를 배우지 못한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빌리'와 나는 그러한 점에서는 비슷한 운을 타고났다. 물질적 공세를 받는 것보다 정서적인 지원을 받는 것은 어려운 일임과 동시에 성공을 향한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빌리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정말 춤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부모님도 졸업과 동시에 직업이 정해지지도 않을 전공을 고집하며 꿈만 큰 딸을 대도시에 보내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수 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빌리도 메인 역할을 맡을 만큼 훌륭한 무용수로 성장했고, 나 또한 서울에서 밥값을 하게 되었으니 부모님의 결정은 아깝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그 결정을 위해 본인들이 희생한 바 또한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개천에서 나는 용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다. 정서적인 지원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산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여덟 살 때부터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줄곧 영어 학원을 다녔고, 빌리의 어머니가 유품으로 남긴 피아노를 보아 그 또한 어릴 때나마 음악에 가까워질 수 있는 조기 교육을 받았던 셈이다. 아무런 성장 배경 없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만약 있다 한들 그것을 발견할 기회를 박탈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저 본인의 노력과 주위의 따뜻한 격려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산들이 점점 생기고 있음은 분명하다. 점점 인간은 기계를 이기기 위해 더 많은 기술적인 지식을 쌓아야 하고, 다원화된 사회에 발맞추기 위해 글로벌한 감각을 익혀야 한다. 한 아이의 예술적인 재능은 시골의 체육관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교습소 안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더 크다.


 자신이 성취하고 싶은 일에 욕심 없는 사람은 없다. 가장 사기를 꺾는 것은 노력해도 얻을 수 없다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 대비 잘 살아왔다고 믿은 나조차도 돌아보면 받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물질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어느 한 곳 기댈 수 없는 사람조차도 개인의 노력만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 일들은 00년대 자기 계발서에서나 나올 이야기지만, 그런 소설 같은 자서전들을 많이 볼 수 있음을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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