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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빛 Apr 26. 2021

접견실에서

사는 이야기가 오가는 곳

접견실은 나의 두 번째 사무실이었다. 사무공간과 사무공간 사이, 가끔씩 커피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사람들의 방문으로 시끄러운 소음이 공간을 메우는 곳. 역할을 규정짓기 어려운 지금의 이 공간에는 코로나로 인해 외부인 방문이 제한되기 전까지 테이블마다 매체 영업 사원들의 방문이 끊기질 않곤 했다.


막내 바이어였던 나는 바쁜 선배들을 대신해 매체를 소개하러 온 영업 사원 분들이 헛걸음을 하지 않도록 달래 드리는 역할을 맡았다. 실제로 논의할 바가 있어 약속을 하고 찾아오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영업 활동을 위해 주기적으로 깜짝 방문을 하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잦은 회의로 자리를 비우는 선배들을 대신해야 했다. 추후 옮기게 된 팀에서도 나에게 ‘그동안 접견실에 커피 뽑으러 갈 때마다 아버지 뻘인 영업사원 분과 대담하고 있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고 할 정도였다.


사실 바잉 업무가 안 맞는다 생각했던 이유 중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접견실에 있던 시간이었다. 사회 초년생에게 적게는 사촌오빠뻘부터 많게는 큰아버지뻘까지 다채로운 연배로 구성된 베테랑 영업 사원들을 상대하는 일은 과하다고 느껴지는 때가 많았다. 가끔은 회사 대표전화로 무작정 들어온 제안의 경중을 파악해 상부 보고 여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전담 영업 사원 분들은 새로 들어온 대행사 막내에게 과하리만큼 친절하셨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관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정보는 주고받으면서도 모든 광고주의 마케팅 계획을 전달해서는 안 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결국엔 내 월급의 몫이었다.


나름 수년간의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로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낯가림은 입사 후 일 년 남짓 지나서야 사라지게 되었다. 로봇과 같던 말투도 제법 벗고 영업 사원 분들의 자녀 교육이나 회사 분위기까지 물어보며 먼저 자리를 뜨시기 전까지 너스레를 떨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나중에는 이렇게 쌓아둔 관계를 빌미 삼아 아예 전화로 “과장님, **매체 3월엔 빈자리 많으니까 △△ 정도에 제안 들어가도 괜찮죠?” 라며 내가 생각해둔 서비스율을 허락받기도 했다. 그렇게 이제 조금 베테랑들의 기에 밀리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이 업무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2년간의 옥외 바이어 생활을 마치고 팀을 옮기게 되었다는 소식을 찬찬히 전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업계에서 이름 있는 굵직한 매체사의 대행사 전담 영업을 담당하고 계셨던 K상무님의 작별 인사는 뜻밖이었다.

“부러워요 민경님.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다는 게.”

나도 원했던 직무 이동이었고 들떠 있던 참이긴 했지만 상무님의 말은 마음을 저리게 만들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광고대행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던 분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후배뻘의 여자애를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하는 건 어떤 마음이었을지, 나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에 지쳐 피하고 싶었던 순간은 얼마나 많았을지, 그 무게감이 밀려왔다.


같은 사무실에서 다른 일을 하게 되며 전화 문의는 메일로, 접견실에서의 미팅은 화상 회의로 대체되었다. 신입 사원 시절에 현재의 나를 예상하지 못했듯 나의 사회생활은 기대에 맞건 빗나가건 많은 변화를 앞두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일도 맞닥뜨릴 수 있을 법한 지금의 단단한 성격은 영업사원 분들이 팔 할은 만들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피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가장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 주었고,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돌아볼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줬다. 접견실은 그렇기에 나의 두 번째 배움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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