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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빛 Feb 26. 2022

착한 동료 증후군 벗어나기

나도 직장에서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다

밖에서 들리는 흉흉한 취업난과 상반되게 회사 내부에서는 작년께부터 퇴직 인사발령 명단이 매주 줄줄이 올라왔다. 특히나 나와 비슷한 대리급의 퇴사 행렬이 매서웠다. 비단 우리 회사뿐만이 아닌 협력사나 경쟁사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일에 대한 보람만으로 노동력과 노동 시간을 갈아 넣어야 하는 광고회사의 분위기가 요즘 세대의 가치관과 충돌한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서른 명 남짓하던 입사 동기들의 숫자가 3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고분고분한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5년이 지나도 팀 막내로 볼멘소리 하나 없이 다니고 있는 내가 정상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일 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다치며 일해도, 도전적인 업무를 자원해서 해내도 보상이 차이 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출근을 해서도 일하는 것이 아닌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됐다.


쓸데없는 공감 능력 탓일까. 내가 보낸 제안서 하나가 유관 부서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지, 귀찮다고 대충 작업한 자료 때문에 다른 동료가 대신 야근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를 매 순간 생각해왔다. 이런 사고로 일한 덕분에 ‘성실하다’는 평가와 ‘어떤 일을 줘도 다 불평 없이 해낼 애’라는 인식을 동시에 얻어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두세 배 되는 업무량을 떠안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금 회사에서의 역할은 바꿀 수가 없다. 이 역할에 얽매여있다 보니 아무리 뒤늦은 반항심을 소심하게 표출해봤자 짧은 사춘기가 온 모범생 맏딸 취급을 받고 넘어갈 뿐이었다. 꽤나 지친 낯을 발견했는지 팀장님은 올해 나에게 승진 연차도 아닌데 높은 고과를 챙겨주었다고 생색을 내셨다. 인정받는 게 간절해서, 월급 한 번 정도를 남들보다 더 받게 되는 그 평가가 탐나서 열심히 달려왔건만 막상 얻어낸 결과는 허무하게 느껴졌다. ‘선배들이 모두 태도를 칭찬한다’는 사유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직장생활 이전에는  나이에 기대되는 고정된 역할이 있었다. 그저 착하고 열심히 학교생활을 해내고 좋은 성적까지 거두면 감지덕지였다. 그렇게 살다 보면 정해진 종착지가 있었다. 그렇다. 사실 나는 회사를 졸업하고 싶었다. 졸업 후의 진로가 다른 회사로 이동하는 길뿐이라는 것이 슬플 따름이지만, 이직을 경험하지 못한 6년차에게는 미약한 희망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얼마 전 제안받은 회사에 면접을 보면서 나의 생각을 되짚어본 대화 한 꼭지가 있다.

“왜 이직을 결심하게 되셨어요?”

“… 지금 하는 일이 익숙해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아직 배울 게 훨씬 많은 연차니까요.”


나는 아직 착한 동료보다는 유능한 동료가 되고 싶은 욕구가 남아 있는 걸까. 막상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발버둥 치는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내 업무 능력보다는 웃는 얼굴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건 아닐지 매일 되뇌어보고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이 상태 그대로 새로운 직장에 내던져졌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 새삼 궁금해진다. 계획대로라면 언젠가 맞이하게 될 이직의 순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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