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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빛 Dec 08. 2021

지나쳐보니, 우울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경쟁에 치인 90년대 초반생의 산실인 주변 친구들에게서 우울증을 겪는다는 말은 드물지 않게 들려온다.



"우울증은 어떻게 알아챌 수 있어?"

"음... 그냥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거나."

"엥, 그건 진짜 심각한 거 아냐?"

"아님 퇴근길에 지나가는 버스에 뛰어들고 싶다거나 하는 것들?"


'응? 그건 나도 종종 겪었던 일인데.'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나고 보니 우울을 겪었던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가장 힘든 순간 눈물을 쏟는 대신 더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반골 기질을 타고난 탓에 스스로 잘 견디고 있다 착각했다. 오히려 스트레스에 강한 타입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삶의 무력감을 느꼈던 여러 순간들도 자연스런 과정 중 하나일 뿐 모종의 전조 증상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릴 때, 스무 살이 된 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은 재미거리 중 하나였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고 계획하는 것이 태생적 습관인 셈이다. 치명적인 단점은 미래가 불안정하다고 느낄 때 급속도로 마음이 지하 깊숙이 파고들어 가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생 신분으로 남아 있을 때는 자취방 안에서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 최악의 경우까지 상상해버리는 종족답게 초라한 행색으로 고향에 내려가 늦깎이 공시족이 되는 모습까지 그려보다 보면 날밤을 새도 부족했다.


몇 달 뒤 스타트업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면서 출근할 곳이 생겼다는 데서 안정을 찾은 것도 잠시, 유일하게 부족하다 생각했던 경력마저 채워졌는데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마음이 더 지옥일 것 같았다. 다음 날 대기업 정규직 면접을 앞두고도 야근을 반강요당할 때는 이대로 영영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라며 잠들기도 했다. 인턴 근무가 끝나고 일주일이 지나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의 최종 합격 발표를 보았을 때는, 그간의 부담감이 해소되는 기분에 어울리지 않게 엉엉 울기도 했다. 물론 또 다른 불안감들이 나를 짓누르는 순간들도 찾아오곤 하지만, 오갈 곳 없는 미래를 상상하며 고통받던 시절을 생각하며 버텨보곤 한다.


낭떠러지 끝에 다다라서야 일이  풀리게 되는 사주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연히  좋은 운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설명이 따라왔다. 절벽 끝에서도 절대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결국엔 누군가의 도움으로 극복해낸다고.  말이 어쩌면 위기의 순간마다 모종의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지 않나 싶다. 나조차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로 인해 다시 올라갈 힘을 얻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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