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또, 다시 광고회사
중학생 때였나, 수업 시간에 청소년기의 특징 중 하나가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란 가르침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럼 나는 성인이 되면 주인공 자리를 자라나는 다음 청소년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었나?’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이 모두가 겪는 자아도취적 현상 중 하나에 불과했다니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교과서도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서른 살이 넘어도 여전히 내 인생의 중심이고 특별하다.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면서 힘든 점을 꼽자면 전 직원의 8할은 비슷한 대답을 할 것 같다. 내 일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 잘한 일에 그만한 보상이 따라오지 않는 데 지치는 것은 일상이었지만 무엇이 직장을 그만두는 데 가장 큰 요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열심히 일한 결과의 스포트라이트는 브랜드가 받을 때였을지도, 아니면 캠페인 일정을 맞추기 위해 촌각을 다투어도 크리에이티브만 주목받는 때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런 당연한 일들보다는 가까운 사람들이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 데서 오는 설움이 가장 컸다고 해야 할까.
"팀장님, 저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신입사원 때부터 6년 차가 되기까지 무엇을 시켜도 다 괜찮다고 넘기던 팀 막내의 폭탄선언은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숨 닿는 데까지 짜내어 사고 없이 일을 처리하면 더 많은 업무가 주어지는 상황의 반복에 1차로는 몸이 지쳤고, 결국에는 마음이 나가떨어졌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모두들 내가 2주 간의 휴가 뒤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다. 퇴사할 용기까지는 없어 애매한 휴식을 선언한 것이지만 사실상 사직서를 던진 것과 같은 마음이라는 게 모두에게 전해졌나 싶다. 나는 2주 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웃는 얼굴로 출근했고, 2개월 뒤 이직을 선언했다.
장난 같게도 나의 두 번째 직장은 또다시 광고대행사가 되었다. 그래도 꼬박 3개월을 지나는 동안 변화는 컸다. 출근길은 강남에서 이태원이 되었고, 업무는 실행에서 전략으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27명의 입사 동기 없이 혼자 적응해야 하는 경력직의 설움도 처음 느꼈지만, 제법 마음 붙일 수 있는 팀원들도 생겨났다. 모두의 주목을 받던 신입으로 출발할 수는 없지만, 주인공에서 한 발짝 더 멀어진 지금 이곳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인생에 기적 같은 게 한 번쯤은 일어나야 직장인이 될 수 있나보다 싶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 뒤에 만난 첫 직장이라 마냥 미워하긴 힘들었고 힘든 일도 기쁜 일도 꾸역꾸역 다져왔다. 그러고 이젠 아무리 양보해도 이 정도면 내 위기의 순간을 구제해준 첫 회사에 대한 소임을 다하고도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을 털고 왔기에 비슷한 규모의, 똑같은 업종의 회사에 옮겨 와서도 나의 부족한 시절을 담아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없이 당당하게 적응하고 있는 듯싶다. 그리고 마음에 담게 된 한 가지 사실이 있기에 똑같은 위기에 몰리지도 않으려 한다. 일에서의 주인공이 되는 게 나의 삶의 모습을 대변해주지는 않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