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보는 남자, 미래를 보는 여자
영화 <라라랜드>
영화 <라라랜드>라는 제목만 들어도 코끝이 찡해진다.
영화의 내용보다도, 라라랜드를 처음 보았던 그때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 욕심도 많고 꿈이 많았던 나는 라라랜드의 여주인공 '미아'의 상황에 너무 공감이 되었다. 남자 주인공 '세바스찬'과 서로를 지지해주고 함께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미아가 오디션장에서 <The fools who dream>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그래, 다시 열심히 꿈을 위해 달려 나가자'라며 나 또한 목표에 대한 의지를 다지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인 세바스찬은 감성적이고 사라져 가는 재즈를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연애는 그 당시 우리와 비슷했다.
그 때 나는 먼저 취업을 한 상황이었고, 남자 친구는 공기업 준비에 지쳐하며 부모님 도움을 받아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때 우리의 연애는 5년쯤 되어 20대 중후반의 나이였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사업 기반과 함께 집과 자동차를 아들에게 주었고, 그는 자연스레 결혼 얘기를 꺼냈다. 그 때부터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당장 학자금과 월세를 감당해야 했기에 취업을 해야만 했다. 힘들게 취업해서 쌓아가고 있는 것들을 한번에 얻은 그와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는 항상 넘치는 애정표현과 함께 세심한 신경을 써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그와 함께 대화하고 장난치는 것보다 즐거운 건 없었다. 나는 그를 너무나 사랑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미래를 생각하면 막연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매일 반복되는 혼란 속에서 그에게 더 예민하게 굴곤 했다.
점점 삐그덕대는 미아와의 관계에 세바스찬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자"고 말한다. 그래, 나도 흘러가는 대로 놔두자. 지금 좋으면 됐지. 하지만 결국 그들의 이별 장면을 보고 무너지고 말았다. 내가 늘 회피하고 마음속 깊숙이 억누르고 있던 그와 이별의 장면이 영화 속에 불쑥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계속 눈물 콧물 닦으며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내 눈물 젖은 휴지를 빼았더니 자기 손 속으로 감추었다. 그나 나나 장난기가 많아 서로 짓궂은 장난을 많이 치곤 했다. 영화 분위기를 깬 것은 물론이고 눈물 콧물로 얼굴이 난장판인데 휴지를 안 주니 짜증이 났다. 영화관이라 말은 못 하겠고, 내 휴지를 내놓으라며 그의 움켜쥔 손을 계속 때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반대편 손으로 마른 휴지를 내 손에 쥐어주는 것이다. 그러곤 눈물 콧물 묻은 휴지를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단지 내게 마른 새 휴지를 주기 위해서 젖은 휴지를 가져간 것이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헤어진 후 우연히 재회하며 '이별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땠을까'의 장면이 그려졌다.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들을 보며 흘린 먹먹함을 그가 나를 위해 준비한 보송한 휴지로 닦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난 "미아가 오디션 때 부른 노래가 너무 감격스러웠어. 나도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다시 열의를 불태워야겠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세바스찬은 전통적인 재즈를 지키려 하고 그가 나오는 부분은 소품도 옛날 것들이 많고 배경 느낌도 그런데 미아가 나오는 부분은 요즘 물건들에 느낌도 현재의 감각이 많이 살아 있더라. 과거 속에 사는 남자와 미래를 살아가는 여자를 표현하다 보니 그랬나 봐."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린 서로 보는 삶의 방향성이 달랐다. 그 날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가 좀 더 명확해졌다. 그를 너무나 사랑했다. 하지만 헤어진 걸 후회하지 않는다. 나를 위해 항상 보송한 휴지를 챙겨놓았던 그를 기억한다. 가장 행복했고 아름다운 청춘을 남겨주었던 그에게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