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은 얇디얇다. 깊은 것은 알기 어렵지만 얕은 것은 금방 들통나기 마련. 브런치도 그렇다.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 내 글을 그럴싸하게 덮어주는 것은 그나마 현직 시절 갈고닦았던 근육 덕분이다. 매일 원고지 20여 장 남짓의 글들을 써내며 길렀던 근육. 이 PT에서 아직까지 살아남은 근육은 '구조' 다.
구조를 좀 아는 덕분에 나는 글을 쓰기가 수월해졌다. 기승전결, 서론-본론-결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구조는 '한 호흡'이다. 글을 읽을 때 한 호흡에 내려가는가. 끊기는가.
필력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나는 글을 못쓴다. 허나 많이 읽히게 하는 '스킬'에 대한 것은 좀 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때운 것이기에. 기자를 그만두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써먹고 우려먹을 수 있는 기술. 이번 글은 구조 기술 편이다.
가독성을 높이는 방법은 내 생각에 두 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재고(이건 추후에 다룰 생각이다) 그다음은구조다.
내가 공략하는 글은 브런치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에세이다. 에세이야 말로 구조와의 싸움이다. 물론 소재가 비슷하다는 가정하에서다. 넘사벽 소재 앞에서는 구조도 소용없다.
어쨌든, 기사에서 구조는 역피라미드식이다. 리드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을 뽑고, 취재해 온 팩트들을 중요한 순서대로 갖다 붙이는 형태다.가장 흔하다.
에세이에서는 조금 다르다. 처음부터 내 패를 까버리면 싱거워진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형태는 머리통보다 몸통이 더 두꺼운 눈사람 모양이다. 머리에서 내려오다가 허리에서 한번 약해지고 다시 더욱 두꺼워지는. 그 약한 허리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더 강조해 주기 위한 도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머리는 보통 회상이나 경험담, 목격담 등이 많이 쓰인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상관은 없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만 아니면 된다. 썰을 풀기 위한 돗자리가 너무 화려해지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머리 안에서 호기심 혹은 궁금증 같은 감정이 생겨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허리는 글의 양이나 강도를 줄이라는 뜻이 아니다. 에세이에서 가장 힘을 빼고 적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머리통에서 연결해 약한 감정을 드러내거나 진솔한 생각을 말하거나, 담담한 어떤 것을 또박또박 적어나가는 식이다. 잘 짜인 에세이를 보다 보니 보통 이쯤에는 타인이 자주 등장했다. 타인으로부터 어떤 영감을 얻어 내 것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물론 타인의 등장도 하나의 예시다.
두툼한 몸통에서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본다. 두툼하다고 해서 글의 양까지 두툼할 필요는 없다. 한 문장으로 끝나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임팩트라고 본다. 억지로 끝나지 않을 임팩트를 위한 기초 기술로는 시점의 이동이 있다.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지는 글 등이 예시다.
첫째와 남편이 만든 눈사람. 구조가 예쁘다.
사실 글쓰기 운운 하는 매거진을 생각했을 때 두려움이 앞섰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타인의 글쓰기를 논할 자격이 있을까. 글이라는 것은 본디 자식과도 같아서 더 조심스러웠다. 오은영 박사님도 악플이 달리는데 나는 악플로 도배가 되는 건 아닐까. 먼지 같이 소심한 사람이 쓰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주제다. 그럼에도 글로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내 매거진이 하나의 기술서로 느껴지기를 바라며. 아주 간곡히 바라며. 부디 교만이라 생각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