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안의 작은 세계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바로 옆의 중학교로 진학했지만, 나 혼자 친구들과 떨어져 다른 중학교에 배정받게 되었다. 아는 친구가 아무도 없는 그 학교에 다니기 싫었다.
한창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다닐 14살, 아는 친구가 없어 반에 조용히 앉아있던 내게 말을 걸어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다른 지역에 사는데 주소 이전을 해서 우리 학교에 오게 됐다는 성훈이. 알고 보니 같은 초등학교여서 동질감이 형성된 미선이. 음악 취향이 비슷해 MP3를 함께 듣던 상기 덕분에 무난하게 1학기를 보내게 되었다.
미선이를 제외하고는 친하게 지내는 여자친구가 없었다. 미선이조차도 성향이 달라 어느 정도 선을 두고 지내던 무렵, 반에서 이야기도 잘 나눠보지 않았던 은재가 내게 다가왔다.
“우리 같은 아파트 살지? 내일부터 등교 같이할래?”
“은재야, 너는 같이 노는 친구 무리가 있지 않아?”
“그 무리한테 따돌림당했어. 나랑 같이 다녀주면 안 될까?”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은재와 다니며 다른 두 명의 친구가 더 생겼다. 그 무렵 은재가 내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미선이 조금 이상하지 않니?”
“그런가...?”
은재가 미선이의 흉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와 미선이의 사이가 멀어졌다. 그렇게 미선이는 은재가 떨어져 나온 무리와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무엇이 문제인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곧 은재의 화살이 내게 날아올 줄이야.
“나 앞으로 너랑 등하교 같이 안 할 거야.”
처음엔 영문을 몰랐다. 친해진 다른 두 명의 친구가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은재가 좋아하던 상기와 내가 친했기 때문이라고. 은재의 절친이 좋아하던 성훈이도 나와 친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렇게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급식실에 앉아 혼자 밥 먹기 싫어 점심을 이따금 굶기도 했고, 음악실에 갔는데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을 마주하기도 했고, 영문도 모른 채 책상 서랍 속 노트를 도둑맞기도 했다. 그럴수록 상기와 성훈이, 그들의 친구들은 나를 더 챙겨주었고 갈등의 골은 더 깊어져만 갔다.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었다. 운이 나빴던 것일까? 은재의 무리와 또 같은 반이 되었다. 한 해를 조용히 지내고 싶었던 내게 담임선생님은 나를 조용히 불러 반장선거에 나가라고 하셨다.
“은재 무리가 반을 망가지게 둘 수 없지 않겠니?”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나간 반장 선거에서 내가 부반장으로 선출되는 해프닝이 생겼고, 1년 내내 은재 무리의 타깃이 되어 힘든 한 해를 보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고달플까? 나는 조용히 살고 싶었을 뿐인데.
중학교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싶었다. 이 작은 사회에서 나는 폭력에 휘말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감정은 고스란히 내 대인관계에 뿌리 깊게 남았고 관계에 대한 하나의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내가 상처받지 않을 만큼의 마음만 주자.’
나는 너를 용서한다.
“은재야, 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어. 14살 때 네가 나에게 선사한 그 일에 사로잡혀 훌쩍 나이를 먹은 지금까지도 사로잡혀있는 내가 너무 가여워졌거든.”
인간은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의 일이 되면 매우 커다란 일로 인식하기에, 나는 학창 시절 겪었던 일을 마치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처럼 남겨버렸다. 이후 대인관계에 있어 문제가 생기면 14살 교실 속 내가 소환되었고, 끊임없이 은재를 원망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얼마나 바보 같고 미련한 짓인지. 과거의 그 악몽으로 내 스스로 빠져들고 있었다.
너를 용서해야 내가 악몽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 넌 그저 과거의 망령에 불과하다는 것. 환청처럼 내 귓가에서 속삭이는 너를 떨쳐내기로 했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작은 교실 안이 내 세상에 전부였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커다란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내 자신을 자꾸 과거의 그 순간으로 가져다 두지 말자. 그렇게 나는 너를 용서하고, 14살의 나에게 자유를 줄게. 이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