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성장통
내가 문신을 한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모르고 내 친구들은 다 아는 그 문신은 내 왼쪽 등에서 옆구리로 이어지는 부위에 라틴어로 쓰여 있다.
Alis volat propriis
2018년 봄, 나는 29살이 되었다. 나이 먹는 데에 아무 생각 없던 나였지만, 서른은 달랐다. 오는지도 몰랐는데 어느 날엔가 보니 갑자기 턱 밑까지 훅 다가와 있었고, 그래서 무서웠다. 설명할 수 없이 불안하고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었고 그 기분에 작별을 고하기까지는 참 오래 기다려야 했다. (아마도 서른한 살 생일이 다 되어서야 끝났던 것 같다, 그러니까 무려 2년) 아무튼 유럽에 산 덕분에 나이 얘기를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대충 이십 대 초반의 기분으로 철없이 지내다가 스물아홉이 되어서야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서른의 성장통이 찾아오면서 모든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건지, 응당 의문을 품을 만한 것들이어서 의문을 품기 시작한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누구나 아는 글로벌 브랜드 유럽 본사의 번듯한 직장, 내 힘으로 모기지 받아 산 집과 어린 나이에 집 소유주가 되었다는 자부심, 운명처럼 만나 오래 함께한 이해심 많은 남자 친구, 원하기만 하면 함께 그리던 대로 강아지도 입양하고 가족도 꾸려갈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던 미래. 좋아 보이기만 하던 이 모든 것이 어느 날 180도 돌아서 내 목을 죄이기 시작했다. 아, 이게 내가 진짜 원하는 거였나?
내가 이미 가진 것을 놓아주기란 너무나 괴로운 과정이었다. 차라리 뭔가를 갖고 있지 않아서 노력하는 것이 나에게 백 배는 더 쉬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결국 일을 제외한 모든 것을 떠나 보냈다. 5년을 채운 연인 관계를 끝냈고, 남자 친구를 통해 받은 파트너 비자를 취소했고, 집을 팔았다. 회사를 통해 비자를 새로 받아야 했고, 그 와중에 연봉 재협상을 해야 했고, 이 나라에서의 거취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이사를 나와 새 아파트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필요한 물건만 최소한으로 사면서도 어차피 비자를 못 받으면 이게 다 무언가 하는 생각에, 텅 빈 아파트 바닥에 앉아 하늘만 먹먹하게 보던 밤들. 익숙했던 동네를 떠나 새로이 적응해야 했고, 내가 가진 친구들은 남자 친구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술 한잔 하고 싶어도 더 이상 연락할 사람이 없었던 것. 세상에서 제일 가깝던 사람과 멀어지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들과 내가 먼저 이별을 고했다는 이유로 마음껏 아프지도 못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후회도 많이 했다. 그 허전함과 패배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제까지는 다 가진 스물아홉이었는데, 반대로 서른이 되고 나니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내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건가? 행운에 겨워 배부른 투정을 한 거였나? 하지만 의문이 드는 만큼 속단하기보다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래서 인생의 속도를 늦추는 데 집중했는데, 퇴근하면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집에서 혼자 시간을 좀 더 가지고 또 뭔가를 할 때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않고 한 번에 하나씩만 하는 식의 단순한 것들을 해 보았다. 그러자 ‘천천히’라는 감각이 차츰 돌아오면서 상실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소유한 것이 없으니 책임질 필요도 없다는 것, 내 한 몸 건사하면 그만이라는 것, 누구에게도 더 이상 내 행위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건 내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자유였다. 나는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아서 두렵고 또 새처럼 자유로웠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어두운 시간이 차차 정리되어가면서 나는 서른 하나가 되었다. 힘든 시기를 견디어 낼 때, 내게 중요한 어떤 문구가 몸에 새겨져 있다는 건 떠올리는 자체로 엄청난 위로였다. 마음에만 새겨도 충분히 좋을 그 말은 이런 뜻이다.
“She flies with her own w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