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cc → 670cc → 1000cc → 1500cc
위 숫자는 인간 뇌 용량의 진화를 보여준다. 4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 용량은 400cc였는데, 이후 진화를 거듭하면서 5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러 1500cc까지 커졌다. 두뇌를 많이 사용한 영장류의 진화적 특성일 테니 전혀 이상해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그 이후의 변화가 이상하다. 현생 인류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뇌 용량은 1350cc로 오히려 작아졌다. 왜 작아졌을까?
물론 두뇌가 끝없이 커질 수는 없다. 뇌를 감싸고 있는 두개골은 그대로인데 뇌만 커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뇌와 더불어 두개골도 점점 커졌다면 출산을 감당해야 할 여성의 골반도 같이 커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진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골반은 그대로인데 태아의 머리만 커진다면 인류는 진작에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약 3000년 전부터 작아지기 시작했다.
뇌의 소형화는 인류학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다. 아직까지 그 원인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뇌가 작아져서 뇌의 기능이 부실해졌거나 기억력이 부실해진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간혹 주차한 곳이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핸드폰을 손에 들고서 어디에 뒀는지 찾아 헤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 두뇌가 호모 사피엔스보다 작아졌다는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
뇌의 소형화를 뇌의 성능 저하로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또 다른 추측은 뇌가 효율을 위해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추측이다. 몸 전체 비율을 따져봐도 머리가 계속 커지는 게 효율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현재도 인간은 신체 대비 뇌의 크기가 다른 포유류와 비교해 봤을 때 6배나 크다.
뇌의 효율성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머리에 담아두어야 하는 일을 도구가 대신하기 시작했는데, 즉 ‘기억의 외장화’가 가능해졌다. 도구의 사용과 기록 문화의 발달이 기억해야 할 수많은 정보로부터 인간의 두뇌를 해방시켰다. 한편으로는 인류가 집단 지성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개인의 머릿속에 머물렀던 정보가 모두의 머리로 공유가 되었고 그 덕분에 뇌의 효율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 모든 현상들이 뇌가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만들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현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이 뇌를 더욱 작아지게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억의 외장화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래학자인 니콜라스 카는 자신의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기억의 외장화를 ‘뇌의 퇴화’라고 꼬집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이 우리를 지능적으로 만들어준 게 아니라 우리가 뇌를 덜 사용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사고방식이란 한없이 가벼워졌고 생각의 깊이는 더욱 얕아졌다. 기억의 외장화는 정보를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며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의미한다. 어쩌면 우리의 기억이란 하이퍼링크로 이어진 정보와 알고리즘을 따라 아무런 자각도 없이 흘러 다니는 흔적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진화의 방향은 결정되었다. 뇌는 작아지기로 했다. 진화는 우리가 많은 것을 기억하기보단 오래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 같다. 기억의 외장화는 더 오래 살기 남기 위해 유리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뇌에 담아두기엔 뇌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뇌는 우리 몸무게의 2% 밖에 안되지만 우리 몸이 소비하는 에너지 중에 20%를 소비한다. 지금도 뇌의 에너지 소비가 큰 만큼 더 커지는 뇌는 비효율적이며 위험 부담이 크다. 따라서 기억의 외장화에 따른 두뇌 축소는 에너지 소모와 위험 부담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셈이다.
그렇다면 작아진 뇌는 더 오래 살아 남기 위해 자연선택된 결과다. 덕분에 에너지 효율도 좋아졌다. 두뇌가 가동되려면 전기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를 '생체 전기'라고 한다. 생체 전기는 일반적인 전기 단위(W)로 환산할 수 있다. 두뇌가 하루 동안 소비하는 전력은 약 0.02kW라고 하는데, 이를 재미 삼아 인공지능과 비교해 보자.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와 바둑 대결을 펼쳤을 때 알파고가 소비한 전력은 170kW였다. 인간 이세돌의 8500배나 된다. 당시 알파고가 바둑 한 판을 둘 때마다 7000만 원의 전기 요금이 발생했다는 점을 상기하자면 인간 두뇌의 에너지 사용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알 수 있다.
알파고는 기업용 서버 3000여 대를 연결해야 했고 그 안에는 1202개의 CPU, 176개의 그래픽 처리 장치, 103만 개의 메모리와 더불어 100여 명의 과학자가 동원되어야 했다. 이런 알파고에 대적하기 위해 이세돌이 주문한 것은 커피 한 잔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리고 알파고는 16만 개의 바둑 기보를 저장하고 있었지만, 현생 인류인 이세돌은 그렇게 많은 기보를 저장하기엔 너무나 작은 두뇌를 갖고 있었다. 물론 게임의 승자는 알파고였지만, 그날의 대국이 보여준 것은 ‘인공지능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냉철하게 말해서 알파고는 비효율의 승자였다.
진실이 무엇이든 바둑 이벤트는 성공적이었다. 대중들은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전기세가 얼마나 나왔든 간에 알파고가 보여준 바둑 실력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덕분에 인공지능 산업에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졌고 인재가 몰려드는 긍정적인 효과가 일어났다. 그러자 인공지능은 더욱 똑똑해지고 더욱 에너지 효율적으로 바뀔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뇌가 작아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지만, 공교롭게도 인공지능 역시 작아지는 쪽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성능에 있어 크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뇌과학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뇌는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과 시냅스가 얼마나 많이 연결되어 있느냐가 성능을 좌우한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 과거 CPU와 메모리의 숫자를 양적으로 늘리는 것에 의존했던 ‘폰 노이만 방식’의 하드웨어 인공지능도 이제는 질적 향상을 추구하고 있다. 마치 인간의 두뇌처럼 뉴런과 시냅스를 닮은 ‘뉴로모픽 방식’의 하드웨어가 발전하게 되었고 이는 인공지능을 더욱 작게 더욱 스마트하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 더욱 똑똑해 질지도 모를 인공지능, 결국 이 또한 '기억의 외장화'가 지속되는 연장선 상인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똑똑해질수록 인간은 더욱 두뇌를 사용하지 않을지도 모르며, 뇌의 소형화는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진화의 향방을 거스를 수 없다. 그리고 그 진화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직접 체험해야 할 것이다. 그 시기에 인류가 어떤 각성을 한다면 두뇌 진화의 궤적은 또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먼 미래는 뒤로하고, 우선 가까운 두뇌 질환부터 살펴보자. 뇌가 작아지는 것보다 뇌가 퇴행하는 것이 더 치명적인 문제다. 최근 들어 알츠하이머병(치매)이 점차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40세부터 발병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 85세부터는 둘 중 하나가 알츠하이머병 환자라고 한다. <기억의 뇌과학> 저자인 신경학자 리사 제노바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우리 모두는 알츠하이머병 환자 또는 보호자가 될 거라고.
알츠하이머병의 진행과정은 이렇다. 뇌가 퇴행하면서 전두엽의 신경 회로가 손상되면 생각·계획·문제 해결 능력에 장애가 발생한다. 그 이후엔 기분과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와 변연계가 손상되면서 슬픔· 분노·욕구를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 가장 마음이 아픈 단계는 그다음인데, 오래된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회로가 망가지면서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그다음 소뇌가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신체 균형이 무너지고 음식을 씹고 삼키거나 호흡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알츠하이머병이 초기 증상에서 사망까지 걸리는 기간은 대략 8~10년이라고 한다.
놀라운 점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신경학자들은 그들을 가리켜 ‘인지적 비축분’이 높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뉴런과 시냅스의 연결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즉 신경세포의 연결이 풍부해서 알츠하이머로 인해 일부가 파손되더라도 그것을 상쇄할 만큼의 여분과 백업이 충분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알츠하이머에 걸려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장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지적 비축분이 높은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데, 우선 보통 사람에 비해 정규 교육 수준이 높다. 그런데 교육만으로 신경세포의 연결이 풍부해지진 않는다. 그들은 글을 읽고 쓰는 활동을 많이 한 사람들이다. 또한 정신을 자극하는 활동에 규칙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고,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환경에 많이 노출되었던 사람들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으며, 인적 교류가 풍부한 사람들이다. 사실 이 모든 활동이 뉴런과 시냅스의 연결을 풍부하게 만드는 활동들이다.
기억이 두뇌 밖으로 이탈하는 기억의 외장화나 뇌의 소형화가 진행되더라도 이런 활동들은 우리를 보다 지혜롭게 만들어 준다. 인터넷, 스마트폰, 인공지능은 분명 우리를 윤택하게 해 주겠지만 우리 두뇌에 인지적 비축분을 쌓아 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윤택한 삶과 치매가 없는 삶의 균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당신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과감하게 도전하길 바란다. 신경세포를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갑자기 피아노가 배우고 싶다면 그것이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건반을 어루만지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쓰기를 하기 바란다.
기억의 외장화가 진행되더라도 두뇌가 반드시 기억하는 것이 있다. 신경학자들에 따르면, 두뇌는 의미가 있는 것만 기억하도록 진화했다고 한다. 그 이외에는 망각되거나 외장화될 운명에 놓인다. 우리 삶이 의미를 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미가 없는 삶은 치매에 걸리지 않아도 망각되는 삶이다. 당신의 뉴런과 시냅스가 강렬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찾길 바란다.
우리 뇌는 왜 작아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