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끄적
우리동네는 강남의 남단에 자리 잡은 저층 아파트 단지다.
1982년에 준공했으니, 30년도 넘었다.
그 세월 동안 유치원 아이보다도 작았던 묘목들은 5층 건물을 내려다 볼 만큼 자랐다.
구룡산 밑에 있어 공기가 맑고 조명공해도 적다
그래서 밤하늘엔 별빛이 또렷하다.
더불어 양재천 건너편 타워팰리스의 야경도 보인다.
신혼 초, 아내와 창문 너머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부인, 저기 사는 사람들은 정작 저 모습을 보지 못할 거야. 이 동네 제법 운치 있는 것 같아."
"야경 안 봐도 좋으니까, 난 그냥 저기 살고 싶어."
"젠장, 빌어먹을 자본주의!"
여름밤이면 짝을 찾는 개구리들의 노래가 울려온다.
구룡산 입구 논에 사는 아이들이 부르는 세레나데다... 혹은 신세한탄가다.
고독에 몸부림치는 왕눈이들을 위해 길림성이나 하노이에서 아로미들을 수입하는 상상에 빠지곤 한다.
동네엔 이름 모를 새들이 많이 날아온다.
창문 너머에 고개를 갸웃대며 지저귀는 녀석들의 모습이 정겹다.
노랫소리나 생김새가 독특하지만, 이름을 알 길은 없다.
그밖에 까치, 까마귀, 참새, 고양이, 강아지들까지 돌아다니는 우리동네는 작은 자연이다.
엊그제 밤, 집에 거의 다 이를 무렵이었다.
어슴푸레한 어둠 거너편, 강아지 두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살짝 오른 취기에, 어린 시절부터 강아지에 대해 가졌던 애틋한 마음이 되살아났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발렌타인 데이에 술집에서 받은 초콜렛이 나왔다.
"이리 와, 쭈쭈쭈쭈~"
쭈그리고 앉아 먹을 것을 건네는 중년의 아저씨에게 녀석들은 한참 동안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엔 오지 않는다.
저것들도 중년이라고 기피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에 처연한 바람이 일었다.
"에휴, 그래. 그래도 이건 먹어라."
툭 초콜렛을 던져주자, 녀석들이 살짝 망설이더니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불빛 아래 모습이 드러났다.
짧은 털, 세모난 쫑긋한 귀, 눈 주변의 둥그런 점...
"어, 너구리잖아!"
멍한 표정으로 한동안 녀석들을 바라봤다.
더 먹을 게 안 나오자, 너구리들은 이내 발길을 돌린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어머니께 얘기했다.
"어무이, 오다가 요 앞에서 너구리 봤어요."
또 술에 패배해 이젠 환영까지 보냐고 나무라실 줄 알았던 어머니는, 전혀 놀랍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나도 가끔 봤다. 두 마리지? "
"어무이도 보셨어요? 그럼 쟤들 어떡하죠? 동물농장에 제보할까?"
한동안 아무 말 없던 어머니께서 간결하게 해결책을 제시하셨다.
"농심에 전화 해.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라고. 아니, 두 마리 몰고 가라고."
물끄러미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엄마... 우리 친엄마 아니지?"
야생의 개포동엔 오늘도 따스하고 정겨운 풍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