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 마사야 『공부의 철학』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TV와 라디오를 틀면 나오는 뉴스와 경제 전문 채널들은 정보를 쏟아낸다. 나는 인터넷 세상과 끊어진 시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SNS 피드를 통해 업데이트하고 수많은 게시물에 좋아요를 할지 그냥 넘길지 판단한다. 구글은 입력한 검색어와 관련된 수만 가지의 정보를 보여준다.
SNS 게시물은 좋아요 숫자로 가치를 메기고 TV와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넷 방송은 시청자와 청취자의 숫자로 가치를 판단하기 때문에 어떤 콘텐츠든 우리의 관심을 끌려한다. 또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표시한 콘텐츠를 먼저 접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 환경에서 정보를 판단함에 있어 자신의 주관을 가지기란 힘들다.
환경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선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다수의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에 자신도 좋아요를 누르는 것을, '환경에 동조하는 상태'라 하자. 반대로 깊은 공부란 동조 상태를 벗어나 '동조에 서툰 상태'가 되는 것이다.
공부란 지난날 주변에 맞추려 애쓰던 자신을 일부러 파괴하는 행위다. 달리 말하면 공부란 일부러 '동조에 서툰' 사람이 되는 일이다.
물론 환경에 동조하는 상태가 좋다면 깊은 공부는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환경을 변화시키고 싶거나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깊은 공부를 해보길 바란다.
『공부의 철학』은 일본의 젊은 철학자 자바 마사야가 쓴 책으로, 들뢰즈, 라캉,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개념을 통해 공부라는 주제를 풀어냈다.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의 1, 2장은 깊은 공부의 원리를, 3장에선 원리와 실천의 연결 그리고 4장은 깊은 공부를 위한 실천법을 담고 있다. 공부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원리 편은 어려울 수도 있다. 복잡한 개념은 제외하고 간략한 내용을 소개한다. 원리 편의 내용이 길다면 뒤의 실천 편만 읽어도 무방하다.
우리는 환경의 지배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환경에 동조하는 상태를 벗어나는 것은 결국 새로운 환경에 동조하는 것이다. 동조를 옮겨가며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고 비교, 분석을 통해 자신의 주관을 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새로운 환경으로 옮겨갈 수 있을까?
저자는 '언어'를 통해 기존 환경의 동조에 서툴러지고 새로운 환경에 동조할 수 있다고 한다. 언어와 현실은 별개다. 현실의 대상을 언어에 대입할 순 있지만 언어는 현실을 무시하고 그 자체로도 존재할 수 있다. '날개 달린 고래가 하늘을 날고 있다.' 라던가 '카메라가 추위를 느낀다. '처럼, 언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 여기에 새로운 동조로 가는 열쇠가 있다.
새로운 학문을 배울 때 우리는 생소한 언어를 접하게 된다. '실재', '공리' 같은 평소에 쓰지 않는 철학적 용어라던가 '여신', '유보율' 같은 경제학 용어는 그 분야에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처음 들었을 때 무엇을 의미하는 단어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언어의 의미가 아닌 소리 그 자체로 다가온다. 이 순간 언어는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언어는 우리가 동조하고 있는 환경을 넘어 다른 환경을 그려 낼 수 있다.
따라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게 아닌, 언어 그 자체를 사용해 우리는 다른 환경에 도달할 수 있다. 다른 말로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일반 공부법이란 언어를 언어로서 조작하는 의식을 키우는 일이다. 그것은 언어 조작에 의해 특정한 환경의 동조로 유착되지 않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게 되는 일이다.
자신의 상태가 언어 그 자체의 차원에 편중되어, 언어가 행위 위에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언제나 언어유희적 태도로 언어에 관여하는 의식을 지니는 일이다.
공부를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사고의 기술은 두 가지가 있다. 아이러니와 유머다.
'아이러니 (깊게 파기)'는 주장의 기반을 의심하는 사고방식이다. 누군가 '불륜을 저지른 저 연예인은 나빠'라고 한다면, '불륜이 진짜 나쁜 것인가?', '나쁘다는 것의 정의는 무엇인가?', '선과 악은 절대적인가?'처럼 한 주제에서 시작해 수직 방향으로 파고드는 사고방식이다.
'유머 (한 눈 팔기)'는 어떤 주장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다른 대상과 연결하는 사고방식이다. 같은 예로 누군가 '불륜을 저지른 저 연예인은 나빠'라고 한다면, '사랑은 음악과 닮았다.' 라거나 '이런 비극은 셰익스피어 작품 중 비슷한 게 있어'하는 식으로 주제를 다른 대상을 수평방향으로 연결하는 사고방식이다.
두 사고의 기술 중 한 가지만 극한까지 사용한다면 '난센스'에 도달하게 된다. 아이러니의 극한, 난센스는 기반의 부제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 상태에선 주장을 지탱해줄 기반이 없어진다. 아이러니의 극한은 유머로 멈출 수 있다. 수직으로 파고들기를 멈추고 관심사를 수평으로 넓히는 것이다.
반면 유머의 극한, 난센스는 의미의 과포화다. 하나의 주제에 어떤 대상이든 연결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상태다. 이런 유머의 극한은 개인의 집착을 통해 멈출 수 있다. 관심사를 넓혀나가다 보면 자신이 꽂히는 분야, 집착하게 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부분에서 유머를 멈추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점에서 다시 아이러니를 시작하면 된다.
공부의 기본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아이러니에 파고들지 않고, 즉 너무 깊게 의심하지 않고, 유머적으로 다수의 가능성을 연상해야 한다. 다만 그러한 가능성의 증식은 한이 없기 때문에 절단하여 발판을 임시 고정해야 한다. 그때 사용하는 칼날이 바로 향락적 집착이다. 그러고 나서 그 칼날에, 다시금 지나치게 파헤치지 않는 정도로 아이러니는 들이단다. 프로세스는 이렇게 진행된다.
절대적인 근거나 진리는 없다. 아이러니를 통해 파고들다 보면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없음을 알게 된다. 이때 우리는 결단주의로 빠지기 쉽다. 절대적인 근거가 없기에 근거 없이 결단을 내리는 '결단 주의'. 결단주의에 빠지게 되면 무언가가 진리가 된다. 따라서 그에 반대되는 다른 근거들은 배척하게 된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무비판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아이러니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의심하는 것이 공부의 기본이다. 때문에 결단 주의는 피해야 한다. 우리는 공부를 통해 다양한 관점을 비교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물론 비교를 멈출 순 있다. 하지만 이는 중단이다. 언제든 다시 비교를 시작할 수 있는 상태다. 우리는 결단이 아닌 중단을 해야 한다.
비교에 절대적인 결론을 내려하지 않는 비교를 계속해야 한다. 절대적인 결론을 내면 (결단하면) 바로 그 순간 비교는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공부의 시작은 '제대로 된 책'을 읽는 것이다. 제대로 된 책이란, 신뢰할 수 있는 저자, 그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저자가 썼거나 그 분야에서 신뢰를 받고 있는 책을 말한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입문을 위한 책은 입문서, 교과서, 기본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입문서를 공부하자. 입문서는 전문 분야를 쉽게 설명한 책이다. 입문서를 읽으며 전문 분야의 넓은 범위를 임시로 유한화 한다. 그리고 입문서는 여러 개를 읽으며 비교해야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전문 분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교과서와 기본서를 공부한다. 교과서는 전문분야를 처음 접하는 사람을 교육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교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 없고 입문서와 기본서를 읽으며 사전식으로 참고하면 된다. 기본서는 교과서보다 높은 수준으로, 교과서처럼 교육 목적으로 쓰인 책은 아니지만, 그 분야의 중심 주제에 대해 상세하게 쓰인 중요 문헌이다.
입문서를 통해 전문 분야의 흐름을 파악하고 (유머) 교과서와 기본서를 통해 개별 분야를 깊게 공부한다 (아이러니).
입문서에서 알게 된 내용에 관해 교과서에서 해당하는 부분을 '찾는' 동안에 교과서는 여기저기를 '모자이크 형태'로 읽은 상태가 된다. 입문서를 기본으로 서서히 지도를 색칠해가는 느낌이다.
완벽한 독서는 불가능하다. 어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고 해도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수는 없다. 독서를 하거나 공부를 할 때 완벽주의는 버리자. 때로는 책의 목차를 읽는 것도 충분한 독서가 될 수 있다.
공부에 깊이를 더하려면 다독이나 통독은 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책을 '알' 필요가 있다.
또한 텍스트 내재적으로 읽어야 한다. 텍스트 내재적으로 읽는다는 말은 텍스트를 체감으로 끌어당기지 않고 텍스트 구조 안에서 각 개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한다는 의미이다. 어려운 책을 읽는 게 어려운 것은 텍스트를 자신의 의미로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텍스트 자체에 집중해보자.
이해하기 이전에, 쓰인 용어의 종류나 논리적인 연관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텍스트의 짜임새, 즉 '구조'를 분석하는 일이다.
해당 텍스트 안에서, 혹은 해당 텍스트가 속하는 전문분야 안에서 언어가 사용되는 방법과 정의를 확인한다. 자신이 그 말을 어떻게 생각하고 싶은지와는 상관없이.
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간다. 관심 가는 분야들을 조금씩 건드려보면 '저걸 언제 다 공부할까?' 하는 생각에 움찔하게 된다.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한 눈만 파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던 난 이 책을 읽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저자가 언급한 공부의 방식은 아이러니 (깊게 파기) 뿐 아니라 유머 (한 눈 팔기) 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조바심 내지 않고 지도를 그려가며 하나하나 공부해보기로 했다.
사람들 마다 공부하는 목적은 다르다. 취업을 하기 위해, 단순히 시험을 잘 치기 위해, 진리를 찾기 위해 또 어떤 사람은 심심해서 공부를 할 수 있다. 목적은 달라도 깊은 공부를 통해 도달하는 공통된 결과는 자신의 주관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깊은 공부는 환경을 변화시키지 못할 수 있다. 대신 아이러니와 유머를 통해 세상을 보는 자신의 관점은 변화시킬 수 있다.
환경이던 자신이던 변화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오늘부터 깊은 공부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