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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구조조정

겨울은 이미 왔고 어떻게든 버텨내야 한다.

피키캐스트, 잡플래닛 등 이른바 '핫한 스타트업'들의 구조조정 소식에 업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2015년 까지만 해도 스타트업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항목은 '성장'과 '시장 크기'이었다. 또한 많은 투자자들이 당장의 현금창출 보다는 지속적인 재투자를 통해 성장의 가속도를 높이길 희망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winter is coming.


어느 스타트업 컨퍼런스의 연사가 소개한 말이다. 실리콘밸리의 투자가 위축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도 그에 관한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겨울은 시작되었다. 브렉시트를 비롯한 북한 등의 불안요인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자금이 보수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나마 한국 스타트업 업계는 정부의 기금이 가장 큰 자금 조달처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영향은 적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투자 운용사들이 전과 달리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보다는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 성향을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한국 스타트업들도 전과는 달리 '매출'에 관한 압박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건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속한 스타트업은 관계자라면 누구나 알만한 서비스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경쟁사들과 우리의 제품 중 하나쯤은 사용하고 있을만한 편의 서비스이다. 또한 당연히 공짜로 사용한다는 '무료 서비스'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수백만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지만 매출은 적고 한정적인 편이다. 또한 경쟁사들은 대기업 중에서도 막강한 재벌의 중추에 서있는 기업이기 때문에 추가 투자에 관해서도 다소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경쟁사들과의 출혈경쟁은 애시당초 고려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른 길을 가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벌기 위해 우리는 수익과 비용을 적정선으로 조정해야 했고, 결론은 '인건비'를 줄이는 방법 밖엔 없었다.


내가 속한 스타트업은 수입과 비용 문제에 대해 미리 인지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의사결정을 내린 타이밍은 조금 늦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는 대표님의 경영철학도 있었고, 나름대로 여러가지 방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안들은 실패하거나 예상보다 늦어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우린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밖에 없었다.


참고로 IT회사의 숙명인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지금까지 다닌 5개의 회사에서 총 3번의 구조조정 경험했다. 그 중 2번의 구조조정은 대상자는 아니었지만 옆자리의 동료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으며, 마지막 구조조정은 내가 직접 계획하고 실행 중인 상황이다. (물론 서버비 등 기타 비용에 대한 절감도 이미 이루어진 상태다.)




구조조정을 진행하기 위해 대표님을 제외한 모든 직원(심지어 나조차..)들을 회사의 입장에서 평가할 필요가 생겼다. 나는 그 기준은 '이 사람이 회사 내에서 수행하고 있는 역할을 다른 이가 대체할 수 있는가?' 였다. 그리고 '그 업무가 회사의 발전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를 기초로 직원들이 수행하고 있는 업무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한 정리를 아래와 같이 결론지었다.


A. 회사의 중요업무를 담당하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

B. 회사의 중요업무를 담당하지만 대체 가능한 사람

C. 회사의 부가업무를 담당하지만 발전가능성이 높은 사람

D. 기타


A의 경우는 무조건 배제하였고 오히려 업무 사기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자 했다. D의 경우는 사실 회사가 정상적인 상황에 필요한 예비인력이라고 볼 수 있지만,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1순위로 둘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이 된다면 B와 C에 속한 직원들도 함께 하고 싶었지만, 이미 회사의 수익과 비용을 비교해 구조조정 비율이 확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누군가는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B와 C에 속하는 회사의 오래된 인력들은 대표님과의 사적인 친분도 있어 구조조정 명단을 선뜻 확정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B와 C의 인력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정말 오랜시간 고민했고, 그 결과 회사에 배치된 업무에 상관 없이 모두에게 아래의 기준을 적용했다.


0. 회사에 담당 업무가 있고

1. 업무에 필요한 기본기를 갖춘

2.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고

3. 긍정적이고

4. 발전 가능성이 높은 사람


그리고 향후 회사의 자금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3가지 단계로 정리하고, 필요한 팀의 역할과 필요인원을 시나리오에 맞춰 할당했다. 


1단계. 가장 긍정적인 상황의 시나리오 (성장 둔화 및 유지)

2단계. 다소 부정적인 시나리오 (사업 축소 및 역량 집중)

3단계. 최악의 시나리오 (매각 등 검토)


이 시나리오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라 가정하였고, 1단계를 가정해 구조조정을 단행한 뒤에 2, 3단계가 판가름되는 시그널을 정의하였다. 이렇게 우린 구조조정 계획을 마무리했고 현재 시행 중에 있다.


이렇게 하기까지 대표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사의 중요업무라는 것은 결국 회사의 필요에 의해 배치된 업무일 뿐, 그 직원이 장기적으로 회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에 공감했다. 위의 기준을 적용하여 A에 속한 개발자 한분도 구조조정에 포함하게 되었다. (이 분의 경우 업무스킬은 능숙하나 독단적인 업무 태도가 문제가 되었다.)


물론 위의 1번부터 4번까지의 평가 기준이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순 없다. 때문에 대표님과 나는 세부인원 조정에 관해서는 한달이 넘도록 서로 이견을 나타낼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대표님과 나는 당장 필요한 업무 보다는 회사의 미래에 더 필요한.. 좋은 영향을 끼칠 사람들을 선택하고자 했다. 물론 팀웍도 좋고 업무 능력도 뛰어나지만 아쉽게도 회사가 해당 팀을 폐지하여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 대상자에 오른 경우도 있었다.




책을 보고 계획을 세우는 것과 실제 피부에 와닿을 때의 느낌은 천지차이다. 나와 직접 일하는 후배 하나도 회사에 남는 누군가가 대체 가능한 업무라고 판단되어 정리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우리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후배가 담당한 외부업무의 계약이 좀처럼 풀릴 기미가 없었고, 후배도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구조조정에서 후배를 뺄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이번 구조조정에 포함된.. 혹은 그를 대신해 나가야 할 다른 이에게도 못할 짓이었다. 그래서 원리원칙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후배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실업급여 및 퇴직기간 등)을 준비하고자 노력했지만, 그게 지금껏 함께 꿈을 키워왔던 후배에게 조금의 위로도 되지 못할 것을 안다.


오늘도 옆에서 새로운 꿈을 준비하는 후배를 보니 마음이 짠하다. 그냥 이렇게라도 글로 정리를 하면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도 도움이 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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