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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화 Aug 26. 2016

어이구, 이 답답아!

 _사회초년생

누구에게나 ‘사전작업’이 필요한가? 뭘 시작하기 전에 하는 행동들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 공부를 하기 전에 책상 정리에만 한 시간이 걸린다. 

․ 일을 하려 컴퓨터를 켰는데, 문득 클릭하게 된 옛날 사진 폴더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다.

․ 뭔가를 쓰기 전에 쓸데없이 긴 시간 볼펜을 돌리거나, 의미 없는 낙서를 한다.

․ 일 때문에 급한 전화를 해야 할 때 괜히 연락처 목록을 내려가며 뜸을 들인다.


나는 행동이 굼뜬 편이 아니다. 오히려 좀 빠른 편이다. 그런데 이런 쓸데없는 사전작업을 꼭 거친다. 스스로도 답답할 때가 있어서, 다른 사람도 이런가? 문득 궁금해진다. 

나 같은 경우는, 긴장을 하면 이런 증상이 좀 더 심해졌다. 그래서 사회초년생 때 정말 최악이었다. 무서운 선배 앞에선 답이 없었다. 그 선배가 다그치면 구구단도 못 욀 지경이었다. 


“어이구, 이 답답아!”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무력감이 학습된 코끼리처럼 더듬거렸다. 밥 시키는 것도 한 번에 안 끝날 정도였다. 선배는 내가 전화로 밥을 시키는 걸 잘 듣고 있다가 말했다.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봤어?” 

“아, 아니요. 지금 전화해서 물어볼게요.” 

“그럼 지금 너, 언제 오는지도 모르고 밥을 시켰다는 거야?” 


그 선배가 무섭고 야박하기로 유명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답답이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호되게 당한 내가 좌절하고 있을 때 의외의 곳에서 대선배님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후 8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생애 최대의 좌절감을 안겨준 그 선배 덕분인지, 이후 내가 운 좋게 따듯한 사람들만 만난건지, 난 어떤 팀을 가도 그런대로 잘 해냈다. 


그리고 깨달은 게 있다. 선배만 후배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후배 또한 선배를 평가한다는 걸. 그 평가가 더 무섭다는 걸 말이다. 

후배에게 필요 이상으로 혹독하게 대하는 걸 능력이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경험상으론, 아니다. 후배들이 ‘참 멋있다’고 우러러보는 선배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우선 후배들에게 대부분의 일을 떠맡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정도 연차의 후배라면 다 알만한 것들도 꼼꼼히 알려주고 체크했다. 


일을 잘 못하는 선배일수록 후배가 실수하면 길길이 날뛰었다. 생각해보면 본인이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랬구나 싶다. 일을 진짜 잘 하는 사람들은 여유가 있었다. 후배가 못하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아, 내가 그거 안 알려줬었나?‘ 하며 자신의 실수로 돌렸다. 정말이지 그런 선배에게는 반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선배를 보며 나도 그런 선배가 되어야지 생각하곤 했다. 


선배가 되니 막상 답답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아이들한테 정이 갔다. 

우리는 의외로 어떤 사람의 완벽한 모습에 반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빈틈을 발견했을 때, 실수를 발견했을 때 문득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실은 나도 그러니까. 


일은 잘 하는데 유독 긴장을 많이 하는 후배를 화장실에서 만났다.


“오늘 뭐했어?” 

난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후배가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아 언니... 저요.....?” 


전화벨이 울려서 난 먼저 화장실을 나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때 후배는 내가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난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언니가 오늘 너무 바빠서 널 못 챙겨줬네. 일이 많진 않았니~?? 무슨 일 했어?” 

이거였다.

그런데 후배가 받아들인 말은 


“너 오늘 한 게 뭐야?” 


이거였던 거다. 더구나 늘 웃으며 챙겨주던 선배가 갑자기 그러니까 

‘아... 이게 사회란 거구나’ 머리털이 쭈뼛할 정도로 무서웠단다. 

몇 년 전에 만났던 그 후배는 능구렁이가 다 되어 있었다.


반면 사회초년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빠릿빠릿한 아이도 있긴 있었다. 무서운 선배에게 아무리 혼나도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5분만 지나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편하게 선배를 대했다. 더구나 그 애는 놀랍도록 간식 세팅을 잘했다. 기계로 포장된 플라스틱 그릇의 비닐이 뜯어지질 않을 때마다 그 애가 출동했다. 요즘은 아이디어 상품인지 아주 작은 플라스틱 칼을 함께 주던데, 그 땐 그런 것도 없었다. 그 애는 칼을 가져와서 사람들이 낑낑대던 비닐을 단 3번의 손놀림으로 척척 자르고, 앞접시로 쓸 종이컵도 하나씩 착착, 거기다 종이컵을 반으로 자른 다음 뒤집어 컵 바닥의 홈에 간장을 따르는 게 아닌가? 나는 감탄했다. 선배들의 마음이 흡족한 건 당연했다. 저런 건 어디서 배우는 거지? 그리고 이내, 난 왜 사회초년생 시절 저러지 못했을까. 그래. 나 혼자서 나만의 재능을 발휘하는 직업이 아닌 이상에야 이런 것도 능력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난 우리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 성격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내 자식들이 닮지 않았음 좋겠어.”

언니는 의외라는 듯 물었다.

“네 성격에서 아쉬운 점이 뭔데?”


“누가 혼내거나, 날 비판할 때 평정심을 쉽게 잃고 긴장하는 거.”


언니는 웃었다. 그건 내 성격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이었다.


“아냐 언니~ 안 그런 사람도 있더라고. 누가 뭐라고 몰아붙여도 내 할 일 묵묵히 하는, 그런 대담한 사람도 있던데... 사회초년생 때 바보같이 굴었던 게 많이 후회 돼.”

언니가 말했다.


“그 사람이야말로 타고났나보네. 내가 알기로 넌 사회초년생 때 참 잘했어.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을 거야. 오히려 언니가 좀 소심하지, 넌 충분히 잘했어.

우리 아이들도 아마 우리와 똑같거나, 조금 나은 수준일거야. 그래서 잘 살 거야.”


그래. 사회초년생이 바보가 되고 답답이가 되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1. 악착같이 버텨 끝까지 살아남는다. 

2. 답답이 취급을 못 견뎌 포기하고 뛰쳐나온다.


둘 중 하나다. 그런데 1번은 성공이고, 2번은 패배일까? 난 1번을 경험하고 스스로 그만 둔 사람으로서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고 느낀 경험은 평생 간다. 생각보다 많은 게 남는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넘치도록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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