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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인 인풋과 습관적인 아웃풋의 균형

동영상 강의의 시대, 공부는 눈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같은 이야기도 참 재밌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배를 잡고 웃었던 그 이야기, 정작 내가 하면 나만 웃을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내가 먼저 화제를 전환하는 게 상책이다. 다른 사람 유머 감각 탓할 일이 못 된다. 나만 웃고 다른 사람은 시큰둥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해서, 웃겼던 거다. 그때 그는 맞고, 지금 나는 틀렸다. 원인이 있다. 들었던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로 안 바꿔서 생긴 문제다. 자신이 자주 하는 말과 행동으로 그 이야기를 직접 해보지 않아서 그런 거다. 듣는 사람은 안다. 이 이야기가 이 사람이 충분히 소화를 시킨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가 재밌는 것은 이야기 내용 때문만이 아니다. 그 이야기가 시작된 맥락,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뜬금없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게다가 이야기 잊어먹을까 봐 서둘러 내용을 마구 토해내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 웃길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핵심은 이야기 내용이 아니다. 이야기꾼들은 이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야기 소재가 무엇인지부터 감각적으로 알아챈다. 적재적소가 관건인데 유머 감각은 여기서 판가름이 난다.

     

미리 분위기를 띄우는 것도 중요하다. 장황하게 설을 푸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본론을 말하기 전에 이미 분위기부터 잡아두는 것이다.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 개그맨들이 분위기 잡기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다. 분위기 잡기에 덧붙이는 기술이 있다면 눈빛과 몸짓, 소리 등이다. 이 기술은 방송인 이영자 씨가 최고다. 맛있는 음식 소개할 때 그녀는 표정과 소리로 먼저 시청자를 흥분시킨다. 시청자들은 이영자 씨의 표정과 소리만으로도 침을 삼킨다. 뭘 먹는지에 앞서 이미 그녀만 보고 있으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그녀의 이야기에 포섭된 거나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이런 것들이다. 재밌는 이야기를 재미없게 전하는 사람들은 이런 조건을 모르거나, 잘하지 못하거나, 아예 생략하는 경우가 잦다. 사실만 전한다. 그래서 망한다. 유머 감각을 높이려면 다음부터는 재밌는 사람부터 잘 관찰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 이야기꾼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내는지,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분위기를 어떻게 조성하는지, 표정과 몸짓, 소리를 어떻게 덧붙이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배워야 한다. 그 모두를 고스란히 복사한 뒤 흉내 내기를 해봐야 한다. 자신이 자주 쓰는 언어와 몸짓 등으로 바꿔 몸에 배게 해야 한다. 듣고 보지만 말고 직접 해봐야 한다. 재미는 눈으로, 귀로만 전달되는 게 아니다. 내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제대로 못 하는 법이다.   

  

학습도 마찬가지다. 보는 것, 듣는 것만으로는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듣고 읽은 다음에 직접 말하고 쓰기를 해봐야 비로소 자기 것이 된다. 초등학생 1학년 국어 과목이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 등 네 가지로 구성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어 알아는 듣는데 말을 못 한다는 사람이 있는데, 네 가지를 두루 섭렵하지 않는 방법으로 영어를 학습해서 그렇다. 나의 이야기다. 발표 수업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언어체계로 발표, 쓰기와 말하기 둘 모두를 해봐야 진짜 자기 지식이 된다는 게 발표 수업의 핵심이다.   

   

그래서 공부는 눈으로만, 귀로만 해서는 안 된다. 개학과 입학이 늦어지며 온라인 강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채널을 통해 동영상으로 지식과 정보를 익히는 게 익숙해졌다. 새로운 정보를 찾기 위해 도서관으로 달려갈 일은 이제 거의 없어졌다. 인기 유튜버들은 말도 잘하고 눈에 쏙 들어오게 정보도 잘 정리해준다. 몇 분짜리 동영상 하나가 책 몇 페이지보다 훨씬 유익한 경우가 많다. 세상이 이렇게 편리해졌으니 한참 읽어야만 하는 책보다 10분만 할애하면 되는 동영상이 도서관과 책을 대체해버렸다. 눈으로 배운 자기가 직접 원리를 이해하고 깨우쳐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 데, 동영상 강의와 같은 현란한 학습법에 밀리고 있다. 

    

6학년 딸은 오전 9시부터 교육방송 라이브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 내용이 참 좋다. 학교에 못 가고 집에만 있는 아이들 보며 걱정이 태산이 부모들 한시름 놓게 한다. 그런데 부모는 한 가지 더 챙겨야 한다. 방송만 보고 학습을 끝내게 하면 안 된다. 한 걸음 더 파고 들어가게 해야 한다.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찾는 훈련을 몸에 익히게 해줘야 한다. 쉽게 배우는 것이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게 부족한 현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지금 동영상 수업 시대에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권해야 하는 학습방법은 더디더라도 끈기를 갖고 스스로 하는 공부법이다. 공부는 눈과 귀로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필사적으로 인풋도 하면서 동시에 습관적으로 아웃풋을 해야 한다. 듣고 읽기가 인풋이라면 말하기와 쓰기가 아웃풋이다. 지식을 배워 익히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자기 생각과 주장, 논리를 겉으로 드러내 말하고 글로 표현하는 것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각종 언론 매체뿐 아니라 유튜버를 비롯한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지식은 이제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넘치는 정보와 비교해 자기 생각과 주장, 논리가 독특하고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사람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귀동냥만 하는 사람들만 있어서 그런가. 아니다. 인풋은 열심이지만 아웃풋이 게을러서다.  

    

한 시인이 사석에서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제 제발 인문학 수업은 그만 듣고 직접 글을 쓰세요. 이제는 글을 쓸 때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이후 줄곧 이런 생각을 한다. 이제 동영상 찾아 배우는 것 관두고 지금부터는 자신의 동영상을 만들 때다. 공부는 눈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읽고 듣기에 머무르지 않고 쓰고 말하기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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