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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am Feb 17. 2017

대학사회의 '취약계층', 대학원생

대학원 등록금에 대한 짧은 글

등록금을 내는 시간

이 즈음이면 재학생들 집으로 등록금 고지서가 날아든다. 전산 상으로 처리해두지 않았다면 성적표와 함께. 간혹 성적표를 사수해야 하는 것을 깜박한 대학생들은 봉변을 당하기도 하지만, 대학원생들에게 성적표란 하나의 종이 쪼가리일 뿐, 더 중요한 것은 등록금 고지서이다. 학부생들도 그러하겠지만, 대학원생들은 이번 학년도 등록금이 얼마나 올랐는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떨리는 손끝으로 우편물을 개봉하곤 한다. 그리고 곧 알게 된다. 올해도 소폭이나마 올랐다는 사실을. 그리고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그럼 그렇지.'


미친 대학 등록금의 나라

'학문의 전당'이라는 수식어 외에 대학을 지칭하던 또 다른 단어는 지식의 '상아탑'이었다. 대학 특유의 세상과는 분리되어 학문적 진리를 탐구한다는 의미를 반영하는 '상아탑'에 빗대어 탄생한 다른 현실적 수식어는 '우골탑'이었다. 이 말은 1960~70년대에 자식이 대학에 합격하면 기르던 소를 팔아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던 과거의 사건들에서 온 말이다. 다소 시간이 지난 우골탑이라는 어휘 대신 요즘 세간에서는 '인골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사실 과거 수식어의 변형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볼 때 한국 대학사회를 지칭하는 '우골탑'이라는 어휘의 상징성은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인골탑이 가져다주는 무시무시함은 우골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골탑이든 인골탑이든 좀 더 요즘 대학생 세대들에게 익숙한 말로 바꾸면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이 되는데,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고생하는 학부모의 현실을 잘 꼬집는다는 점에서 좀 더 와 닿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어휘로 지칭될 만큼 대학 등록금은 가정경제에 정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과거 방학기간 동안에 막일을 뛰어서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했다는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씀은 도시전설급이 되었다. 대학 등록금 결정권이 개별 대학단위로 넘어간 후, 등록금은 몇 곱절 뛰어버렸고 대학생들이 받을 수 있는 인건비는 90년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지출은 4~5배가 되었는데 수입은 그대로인 상황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노선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 대학 등록금은 매해 7~8%씩 올랐고, 이는 평균 물가상승률의 2배를 상회하는 것이었다. 시장 자율의 바람은 상아탑의 고고함을 꺾어버리고, 대학사회가 대학시장으로 바뀌는 마법을 부리고 만 것이다. 이렇게 변한 대학시장은 그 시장의 소비자 혹은 구매자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더욱이 대학생이라는 소비자의 구매력은 극히 한정되어, 이런 식으로 등록금이 오르다 가는 소비자가 사라져 대학시장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반값 등록금'이라는 의제가 사회적으로 떠올랐고, 이명박 정부는 대선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당선 후 '심리적으로 반값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으로 말을 바꿔 희대의 코미디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실질적으로 대학들을 압박하여 반값 등록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대학 등록금이 최대한 인상되지 않도록 노력했고, 실제로 이명박 정부 이후 대학 등록금은 이전만큼 큰 상승률을 보여주진 못했다. 대체로 등록금은 동결되거나 아주 소폭의 인상에 그쳤고, 몇몇 대학에서는 0.XX% 인하하는 후한 인심까지 보였다. 반값등록금이라는 사회적 의제는 성공하진 못했지만 미친 듯한 인상률은 꺾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질 수 있었다.


대학사회의 '취약계층'

그런데 이러한 등록금 인상 억제 추세에서 빗겨 난 계층이 있으니, 그들이 대학원생들이다. 정치인들의 반값 등록금 공약의 범위에서 대학원생들은 벗어나 있고, 언론의 주목도도 현저히 떨어진다. 그렇다면 대학원생들의 자치적 노력은 있었을까. 해당 정보를 적극적으로 취득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지만, 대학원 원우회에서 등록금을 동결시키거나 인하하기 위해 협상을 한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으며, 하다 못해 인상을 막지 못해 미안하다는 입장 표명도 들어본 적이 없다. 학부생들의 대표와 학생회가 학부 등록금의 인하/동결을 위해 협상의 개시를 알리고, 그 과정과 결과를 공유하는 것을 보며 원우회의 조직은 협상력의 크기를 떠나 노력조차 하는지 않는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부 등록금이 이전과 달리 큰 인상폭으로 오르지는 않는 가운데 대학원 등록금은 야금야금 올라 인문계 대학원의 한 해 등록금이 1,000만 원에 이르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는 와중에 조교 비라도 인상됐다면 다행이겠지만,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2011년에 받았던 조교비와 현재 수령하는 조교비는 동일한 수준이다. 5~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조교비는 변하지 않았고, 등록금은 조금씩 올랐다. 게다가 산학협력이나 정부 사업비 등을 통한 외부 장학금 혜택을 받기 어려운 인문사회계 대학원생들의 현실을 고려하면, 그들은 스스로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취직이 잘 되지 않아서든, 회사가 싫어서든, 더 깊은 공부가 하고 싶어서든 스스로의 선택으로 온 대학원이지만 그 비용이 너무 막대하다는 사실은 대학원생들이 온전히 학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더 엄혹한 현실을 살고 있다. 비유하자면, 지식의 상아탑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계층이 바로 인문사회계 대학원생들이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때, 대학 본부는 정직해질 때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에 대응해야 할까. 교육에 광적인 한국사회임을 고려해도 대학원 진학은 학생 본인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미 학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이는 해당 전공에 대한 최소한의 전문지식은 습득했다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관련 업계에서 일을 하거나 사업을 할 수 있다. 진학동기에 관계없이 석사 학위는 분명 선택사항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그 등록금 비용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교육과 학위 취득을 통한 이익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고, 미래의 더 높은 몸값을 위한 이 선택은 개인이 부담하는 것이 맞다. 교육시스템을 통해 양성된 인재의 이익이 온전히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는 말이다.


흔히 대학원생들이 너무 비싼 등록금에서 얘기할 때면 종종 북유럽 얘기가 나온다. 그들 나라에서는 학사과정부터 모든 과정의 등록금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가 고등교육기관으로의 진학률이 한국보다 떨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러한 수치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북유럽 국가들의 교육에 대한 관점은 보다 사회적이라는데 특징이 있다. 학부과정을 비롯하여 한 개인이 석사/박사 과정에 진학해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분야가 연구되고 지식의 범위가 넓어진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파생되는 이익은 공공에게 혜택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교육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득이 단순히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들 국가에서는 모든 교육과정의 비용을 국가 혹은 사회가 부담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과는 사뭇 다른 것이고, 이것은 넓게 보면 교육철학의 풍토가 완전히 다른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한국 사회도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비용에 대해 고민할 시기가 온 것이 아닐까. 비록 인상률이 꺾였다고는 하나 대학 등록금이 주는 부담은 여전히 크고, 대학원생들은 이러한 논의 자체에 끼지 못하는 취약계층 상황에 놓여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가에 대한 완전한 개혁/개조가 요구되는 이때, 대학 등록금으로 대표되는 고등교육 비용에 대한 사회적 책무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 대학별 본부들에게 한 마디만 덧붙이면, 가난한 대학원생들 지갑을 몰래 털어가는 비양심적인 행동은 그만하기 바란다. 학부 등록금은 동결되지만, 대학원 등록금은 상승하는 모순적 행태를 이제는 스스로 금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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