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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am Aug 20. 2016

CNN을 정복한다고 과연 영어를 잘 할까?

언어의 장르와 영어공부



영어 공부자료 홍수의 시대


1990년대만 해도 영어공부를 하기 위한 자료를 구하기란 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스무 살 대학생이 되어 호기롭게 영어공부를 하려고 하면 타임지나 내셔널 지오그래피 같은 잡지를 구독해야 했고 그 비용은 절대 저렴하지 않았다. 그뿐인가. 글로 된 영어공부에 질려서 죽은(?) 영어가 아닌 살아있는 영어를 접하겠다고 비싼 테이프 세트를 구매하려면 허리가 골백번은 휘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달성하고 싶은 수준의 영어자료를 접하기란 어려운 시대였고 그 기회와 비용은 싼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20년 정도가 흐른 지금은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원한다면 저렴한 비용으로 온라인 뉴욕타임스를 구독할 수 있으며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 유튜브에는 온갖 영어자료들이 넘쳐난다. 내가 찾아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이지 일정 금액의 인터넷 이용료만 지불한다면 무제한에 가까운 영어공부자료들을 추가 비용 없이 구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소위 정보 홍수의 시대, 교육자료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자료들에 압도당하면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혼란이 온다. 인기 있는 미드를 봐야 할지, 유명 유튜버들의 동영상을 구독할지, 혹은 영어 팟캐스트를 들을지,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쉬이 선택지를 지워갈 수 없다. 그때 도움이 되는 기준 중 하나가 공인된 영어 사용이다. 앞서 언급한 뉴욕타임스, 타임지 같은 유명 신문이나 잡지, CNN과 BBC 같은 방송뉴스는 왠지 믿음이 가는 선택지들이다. 사전이나 자막의 도움을 최소화해서 내가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공인된(?) 자료로 영어공부를 시작한다. 이것을 정복하면, 내가 원어민 수준의 영어 달인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90년대까지 카세트 테이프는 영어스피킹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사진출처http://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6240230)




CNN과 영어실력


CNN을 자막과 사전 도움 없이 듣고 이해할 수 있다면 상당한 영어실력을 갖춘 것은 분명하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유학을 가도 영어강의를 듣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말하기 훈련이 뒷받침된다면 원어민과 어울려 대화하며 살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기대 혹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질문을 보다 도발적으로 정리하면, CNN을 정복한다고 영어를 잘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CNN을 완벽히 이해한다면 분명 영어를 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영어실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좀 더 명확히 얘기하면, 방송콘텐츠로 제공되는 뉴스 영어는 능숙하게 잘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실생활의 영어, 이민이나 유학을 가서 부딪히는 실제 생활에서는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의기양양했던 자신감은 와르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어쩌면 CNN을 죽어라 팠던 자신의 영어공부가 잘못되었던 것이라고 지나간 세월을 원망할 수도 있다. 미국 스타벅스에서 원하는 커피 하나도 제대로 못 시키는 자신을 보면서.

CNN Student News는 스크립트가 함께 제공되어 지금 당장의 뉴스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최고의 컨텐츠다.(사진출처: CNN Student News 채널)


그럼 00 스쿨을 들으라고?


그럼 유명 야구선수와 예능인을 모델로 기용해 방송광고에 막대한 마케팅비를 투자하는 회화 중심의 영어교육 업체가 답일까? 입으로 훈련하는 그런 영어공부에 치중하면 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것도 답이 아니다. 이 글은 절대 회화 중심의 교육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시각을 환기하고자 하는 글이다. 영어는 CNN 혹은 00 스쿨 같은 하나의 교육자료나 교육 코스로 정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언어가 그러하듯이 영어는 그렇게 쉽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CNN을 정복했다면 뉴스 영어만을 정복한 것이고, 00 스쿨의 모든 코스를 마치고 회화에 능하다면 (어떤 부분의) 입말 영어를 잘 하는 것뿐이다. 단지 그뿐이다. 하나의 영어를 정복했다면--사실 정복했다는 표현도 잘못된 것이지만--다른 영어를 정복하기 수월한 토대가 다져진 것뿐이다. 내가 정복하지 못한 다른 영어는 새로운 공부를 요구한다.



서로 다른 영어, 장르와 방언

고어체에 가까운 영어 구사가 캐릭터인 토르

이런 서로 다른 영어를 지칭하는 학술적 용어는 장르라고 한다(문학에서의 장르와 유사한 의미다). 영어로는 Genre 혹은 Register라고 한다. 학자에 따라 장르를 어떻게 구별하는지는 천차만별이지만 가장 보편적인 기준은 구어(spoken)와 문어(written)이며, 구어와 문어도 그 격식성(formality)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뉜다. 격식성이란 상황에 맞는 말을 구사하는 것으로 가령 동일한 구어라고 해도 친구 사이에 사용하는 구어와 뉴스 보도에서 사용하는 구어는 격식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전자는 가장 편안한 언어를 사용하여 비속어 등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후자의 경우 구어 중 가장 높은 격식성을 요구하는 상황 중 하나로 청자들은 화자들이 정확한 어법과 적절한 단어 선택이 어우러진 언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 구어와 문어를 입말, 글말로 바꿔 쓰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장르에 따른 언어교육은 한국에서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CNN의 경우 가장 격식성이 높은 구어체이지만, 00 스쿨에서 배우는 생활회화는 격식성이 비교적 낮은 수준에 속한다. 즉, 어느 하나만 집중해서 익힌다면 상황에 맞는 영어를 구사할 수 없고, 이는 실제 의사소통 상황에 있어서 어려움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장르나 격식성에 어울리지 않는 언어 구사의 예로는 유명한 어벤저스의 토르가 있다. 토르가 사용하는 영어는 고어체에 가까운 영어로 현대 영어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언어의 사용은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마치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걸어나온 인물인듯한 인상을 주는 웃음 포인트를 제공한다. (이와 비슷한 캐릭터로는 동일한 마블 계열 시리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드렉스도 있다) 이와 유사한 풍문으로 90년대 생활회화를 배우지 못하고 교과서로 영어를 배운 유학생이 "I beg your pardon?"을 썼다가 원어민 친구들에게 놀라움을 줬다는 이야기도 있다. 원어민 친구들은 그러한 표현을 쓰는 처음 봤다며 신기한 눈빛을 보냈다고 한다.



진짜 필요한 영어를 배우기 위해선 골고루


흔히 살아있는 영어를 배우라고 한다. 영어교육에서도 강조되는 것이 교육의 진정성(authenticity), 즉 진짜 사용되는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진정성, 진짜 영어라는 것은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렵고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 난제를 만나게 된다. 어떤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스스로 교육과정을 선택하고 콘텐츠를 선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패션에도 Time-Place-Occasion을 지켜야 하듯 언어구사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답은 너무 단순하며 당연히 우리가 아는 것이다. 편식하지 않는 것. 아무리 회화에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연설문이나 뉴스 콘텐츠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고급(?) 영어를 배우기 위해 유명한 연설문을 위주로 공부했다 해도 시트콤에서 나오는 일상회화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먼저 어느 한 분야에 대해 깊이 파는 것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지만, 공부가 깊어지면 다른 장르의 영어로 옮겨가야 상황에 맞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기 마련이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편식하지 않는 것, 그것이 건강한 영어실력을 키우는 왕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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