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호지방이 Mar 24. 2024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나는 연애프로그램도,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참 좋아한다. 새로운 기획이 나오면 빠지지 않고 챙겨보는 편이다. 지니어스 시리즈는 물론이고, 소사이어티 게임, 피의 게임 1,2, 검은 양 게임, 데블스 플랜, 세이렌 불의 섬, 더 커뮤니티:사상검증구역, 피지컬 100 등등. TV프로도 모자라서 머니게임, 가짜사나이 등의 유튜브 콘텐츠까지. 모두 빠짐없이 명작들이고 프로그램 하나하나 영업 글을 판다면 너무 길어질까 봐 걱정될 정도다. 누군가 직업을 다시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연출자가 되고 싶다.

     

 나는 왜 연프나 서바이벌 예능을 좋아할까. 그곳에서 날것의 감정과 날것의 갈등을 본다고 느낀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예전보다 드라마나 영화를 덜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해은이가 거울을 보며 눈물 흘리는 감정을, 그 감정에 수반되는 일그러진 입과 눈썹을, 그 어떤 연기 잘하는 배우가 와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티빙 오리지널로 론칭했던 <유미의 세포들>은 방영하는 내내 환승연애와 티빙 시리즈 순위 1위를 두고 다퉜다. 그리고 내 기억에는 거의 이긴 적이 없다. 서바이벌 예능은 어떤가. 저들이 연합하고 배신하고 분노하는 마음의 경로를, 그 갈등 상황을, 어떤 작가가 이보다 더 리얼하게 조성해 낼 수 있는가. 다큐멘터리에서 느낄 수 있는 날 것의 감정들을,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요리해 낸 장르가 서바이벌 예능 아닐까.

      

 이런 프로그램의 성패는 연출자가 만들어 낸 인위적인 설정에 출연자들을 얼마나 몰입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을 위해 연출자가 모든 승부수를 던진다고 봐야 한다. <더 커뮤니티>에서 벤자민의 연설에 감동받은 주민들 컷 뒤에, 벤자민의 속마음 인터뷰 컷을 붙이는 연출자는 얼마나 짜릿했을까.     


 일반인 출연자들의 민낯과 본성을 상업적인 프리즘으로 여과해 대중들에게 전시하는 게 옳은가. 그 행위들이 미디어 윤리에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무지렁이 공대생일 뿐이고 미디어 윤리와 관련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감정을 쏟아내는 콘텐츠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내 도파민을 한 30배 정도는 자극하는 건 확실하다.     


 영화 드라마 시장이 많이 쪼그라든 이유는 어쩌면 자본의 논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쪽 파트에서는 이쪽 파트대로, 사람들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는 외딴섬에서, 슬픈 서바이벌이 열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끝)

작가의 이전글 기적의 여행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