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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테나 Jan 30. 2018

사랑스러운 '루'는 왜 사라졌을까?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리뷰

 최근 몇 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신나는 음악 영화였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시작되는 강한 비트의 리듬은 초반부터 영화의 매력을 훅 끌어올리며 기대감을 갖게 했고, 세상 누구보다 흥이 넘치는 꼬마 인어 '루'의 발랄한 춤은 보는 관객들마저 발장단과 고갯짓을 하게 만들 정도로 신이 났다. 흥이 많은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 얼마나 신나 할까 생각하니 더욱 미소가 지어졌다. 신나는 음악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다.



 개구리를 닮은 듯 조금은 낯선 루의 얼굴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엔, 미소를 가득 머금게 하는 친근하고 귀여운 캐릭터로 느껴지고, 루가 만들어낸,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멍멍어'들은 통통한 몸집에 앙증맞은 꼬리가 어찌나 토실토실하던지, 안아보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 '루'가 마술처럼 부리는 바닷물은 그녀의 예쁘고 발랄한 성격을 대변하는 듯, 초록색이나 레몬라임색으로 표현되어 따뜻하고 밝은 느낌을 전하고, 탁 트인 바다 전경이 보일 때면, 마치 실제와 같은 바닷가의 찬란함과 청량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듯하다. 또, 인어들이 사는 그늘 바위의 형태와 질감도 예사롭지 않고, 카이의 집에 대한 공간의 배치나, 사실적 집안 풍경은 섬세하게 그려내고자 했던 감독의 배경 묘사의 노력이 돋보인다. 섬세한 배경이 영화 속 분위기를 압도하며 매력을 배가시키는 반면, 인물 표현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주인공 캐릭터들의 모습이나 표정은 비교적 단순한 선과 명암으로 처리되고, 특히 춤추는 주변 인물들의 경우는 평면적인 선들과 튀지 않는 중간색으로 표현해, 춤추는 행동에 집중시키거나, 배경 속에 묻히도록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속 인물 표현처럼, 이야기 또한 비교적 단순하다. 음악을 좋아하는 꼬마 인어 루는, 컴퓨터로 음악 편곡하는 취미를 가진 '카이' 곁에 맴돌다가 친구가 된다. 인어에 대한 두려움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마을 어른들의 오해로, 루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카이와 친구들은 루를 위기에서 구하고, 위기를 넘긴 루와 루의 아버지는 침수 위기에 처한 마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동안 인어에 대해 부정적이던 카이 할아버지의 우산 덕분에 인어들은 무사히 마을을 구하지만, 어느 순간 인어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만다. 인어를 찾아 바다로 나갈 꿈을 갖게 된 카이는 생활에 적응하며 고등학생이 된다.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에 비해서 주제에 대한 집중도는 조금 애매하다. 크게 보면,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석하기엔 마지막에 인어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점이 조금 어색하다. 그렇다고, 인간의 자연 파괴 관점으로 바라보기엔,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파괴 행위가 직접적인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해석에 무리가 따른다.


 결국 이야기의 숨겨진 생각들을 들춰보면,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키운 오해'라는 주제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작은 어촌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사연 속 인어에 대한 피해의식과 오해가, 쌓이고 쌓여 부정적 관점을 키우게 되고, 너무나 사랑스럽고, 착하기만 한 '루'를 죽일 뻔한 폭력적 상황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독은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마저도 이야기에선 집중되지 않은 채, 스치듯 보이면서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만다. '두려움이 키운 오해의 폭력성'이 주제라면, 오해가 커가는 과정을 더욱 섬세하게 보여주면서 더욱 큰 갈등 상황으로 오해를 키울 필요가 있었다. 그랬다면 '루'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폭력의 위험성은 더욱 부각됐을 것이고, 영화의 내러티브는 더욱 드라마틱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가 매우 만족스러울 만큼 즐겁고 예쁜 애니메이션이면서도, 다소 애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깊이 있게 파고들어, 초점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한 주제의식의 미약함 때문일 것이다. 결국, 불분명한 주제의식은 해결되지 않는 여러 의문점들을 남기고 만다. 마을 사람들과 오해를 풀었는데, 루는 왜 사라졌을까? 그리고 인어들은 어디로 갔지? 카이는 왜 그 일이 있은 후, 엄마한테 편지를 쓰게 된 것일까? 왜 이 영화 속엔 엄마라는 존재가 부재할까? ( 영화 속엔 인어에게 물리면서 바닷속으로 사라진 할아버지의 엄마 말고는, 어느 누구의 엄마도 등장하지 않는다 ) 그리고, 왜 제목이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일까?


우리는 어느 하나 속 시원한 답을 찾기 힘들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영화는 자신만 즐겁다고 만들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대중들의 의미 있는 공감과 즐거움을 끌어냈을 때 영화는 그 존재 가치를 지닌다. 특히나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내러티브와 주제의식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 주제의식은 내러티브 형식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영화 속 모든 상황들이 향하고 있는 이야기 방향의 구심점이자, 다양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키워드가 되기 때문이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이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관객들에게 시청각적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많은 능력이 있다는 점 분명하다. 하지만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는 주제와 의미 전달, 이야기 구성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과 의문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발전된 이야기가 더 기대되고 보고싶은 것은 그래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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