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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테나 Apr 20. 2018

<몬태나> - 조셉 J.블로커의 통찰의 여정.

영화 <몬태나> 리뷰

호기심이 들지 않는 제목이었다. 크게 당기지 않는 서부극 장르에, 단순한 스토리 라인. 매력적인 사진 한 장 보이지 않는다. 보지 말까? 망설였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니, 호기심을 자극하는 단어들이 하나 둘 눈에 띈다. '크리스찬 베일' '일생일대의 적' '증오가 끝나는 곳' 단순한 서부극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조셉 대위(크리스찬 베일)의 심리를 그대로 따라가며 구성하고 있다. 배경은 1892년 뉴멕시코. 미국인들이 신대륙이라며 들어와, 그곳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을 잔인한 야만인으로 생각하며, 살육으로 정복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대. 평범한 당시 미국인들의 인식처럼, 인디언들의 잔인함을 보여 주기 위해, 행복한 로잘리(로자먼드 파이크)의 가정이 인디언에 의해 처참히 살육당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조셉 대위의 잔인한 인디언 체포 작전. 조셉 대위가 이끄는 군인들은 인디언들을 동물 사냥하듯이 몰아, 올가미로 묶고, 머리 가죽을 벗기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다. 인디언에게 동료와 친구를 잃고, 누구보다 인디언을 증오하는 조셉 대위. 그에게 퇴임 전 마지막 임무가 떨어진다. 일생일대의 적 '옐로우 호크'추장(웨스 스투디)을 그들의 고향 '곰의 계곡'으로  데려다주는 것. 명령 불복종을 불사하며 저항해 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결국, 극렬한 분노의 감정을 발산하며, 조셉 대위는 '옐로우 호크' 추장 가족들과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그 긴 여정의 사건들을 통해, 조셉 대위의 분노와 적개심은 어느새 이해와 공감의 감정으로 바뀌게 된다. 영화는 긴 여정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통한 조셉 대위 스스로의 자각과 통찰에 핵심이 맞춰져 있지만,  그에게 이와 같은 통찰이 일어나기 위한 기본적 전제 조건으로, 지적이며 바른 품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읽을 만큼 지적이고, 가족을 잃은 로잘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품성을 가지고 있으며, 흑인을 차별적 시선으로 대하지 않는 건전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준다. 다만, 이 땅을 정복하려는 군인으로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는 인디언에 대한 편견과 분노를 강화시킬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입장을 벗어나는 더욱 발전된 시각과 관점을 가질 기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그가, 일생일대의 적, '옐로우 호크'를 보호해야 하는 가장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통찰의 기회를 갖게 된다.


첫 번째 변화는, 로잘리 가족을 학살한 '코만치 족' 인디언과의 싸움에서 비롯된다. 항상 죽이거나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적이라고 생각했던 '옐로우 호크'추장이, 같은 인디언인 '코만치 족'을 상대하며 함께 싸움으로써, '곰의 계곡'까지 살아서 가야 한다는 최종 목적이 같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조셉 대위는 '옐로우 호크' 가족을 묶었던 쇠사슬을 풀어준다. 목적이 같은 사람은 결코 적이 아니라 동지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두 번째 변화는 모피 장사꾼들의 습격으로 드러난다. 조셉 대위의 입장에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여성들이 모피 장사꾼들의 탐욕에 의해 납치당함으로써, 그들의 여정을 방해하는 적이, 살육적인 백인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셉 대위와 '옐로우 호크'추장이 공동 작전을 펼치면서, 함께하는 동지로서의  교감이 생긴다.


세 번째 변화, 인디언 가족을 도끼로 몰살한 탈영병 찰스에 의해 시작된다. 마치, 과거의 조셉 대위를 보는 듯, 인디언에 대한 분노와 편견에 사로잡혀, 인디언 가족을 죄책감 없이 살육하고 처벌을 피해 탈영한 찰스는, 조셉 대위가 자신을 풀어 주길 기대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자, 그에게 묻는다. "당신과 똑같이 행동한 날 교수대에 죽게 하고, 야만인들을 살리다니요. 도대체, 당신은 누가 된 겁니까?"  '옐로우 호크'추장과 생존을 위해 함께 싸우면서, 그들의 입장이 자신들의 입장과 다르지 않음을 이해한 조셉 대위의 변화를, 찰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여기 묶여 있는 사람이 대위님이 될 수도 있었죠!"라는 찰스의 말은, 과거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며 조셉 대위의 성찰적 상황을 명확히 부각하고 있다. 물론, 탈영병 찰스와 달리, 조셉 대위의 인디언 학살은 임무 수행이라는 군인으로서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성과 아이들까지 죽였다는 사실은, 분명 임무 수행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비인간적 살육 행위를 정당화시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게 만드는 지점이다. 결국, 탈영병 찰스와의 만남은 조셉 대위에게, 자신만의 관점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 시선으로 지난날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통찰의 계기가 되고 있다.  


조셉 대위의 통찰적 변화의 결정적 순간은,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토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지점이다. '옐로우 호크'추장에게 지난날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고, 탈영병 찰스를 쫓아가 죽인 후,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토미. 그의 죽음은 조셉 대위에게, 가족 같은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줄 뿐 아니라, 지난 수십 년 동안 군인으로서 함께한 인디언 토벌작전의 의미를 부정하는 충격적 사건이 된다.


토미의 무덤에서 하루를 보내고, 완전한 통찰의 시간을 가진 조셉 대위는 그 뒤, 확연히 달라진 행보를 보인다. '옐로우 호크' 추장에게 가졌던 분노는, 그 또한 가족과 동지를 잃었을 것이라는 이해로 바뀌고, 죽음을 앞둔 추장의 "자연으로 돌아가 양분을 취한다"는 인디언의 가치관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진정한 화해의 악수를 나눈다. 그리고, 그는 "나의 일부도 당신과 함께 죽을 것이오!"라는 말로, 이전과 달라진 자신을 표현한다. 이 말은, 그동안 인디언을 적으로 규정하고, 편견과 분노를 키웠던 자신의 잘못된 신념에 대한 죽음을 선언하는 것으로, 조셉 대위의 완전한 변화를 의미한다.  


드디어 도착한 '몬태나' 즉 '곰의 계곡'에서 조셉 대위와 인디언 가족들은 '옐로우 호크'추장의 장례식을 치르며 그를 추모하지만, 땅주인이라는 백인들이 나타나면서 당장 나가라는 위협을 받게 된다. 몇천 년 전부터 이 땅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에게, 총칼을 들이대며 고향에서 내쫓았던, 백인 이방인들의 몰염치한 건국의 역사가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 사건을 통해, 인디언들이 이 땅에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조셉 대위는,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백인 땅주인들과 마지막 총격전을 벌인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백인 땅주인들과 조셉 대위를 중심으로 한, 인디언 가족들 사이의 팽팽한 대립의 균형을 무너뜨린 것이, 백인 땅주인들의 여성비하적 발언이라는 사실이다.(이에 분노한 로잘니가 총을 쏘면서 마지막 격전이 시작된다.)


생각해 보면, 영화는 2시간 넘는 동안, 몇 가지 편견에 대한 단서들을 곳곳에 배치해 놓고 있었다. 영화 도입부에서 로잘리의 남편은 인디언들의 소리가 들리자마자, 자신들을 위협해 말을 빼앗을 것이라며 겁에 질려 먼저 총질을 시작했고, 영화 속 거의 모든 백인들은, 인디언들이 잔인하게 인간을 살육하는 야만인이라는 생각에, 그들을 죽이는데 죄책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또, 유일한 흑인 병사는 자신이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조셉 대위가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를 표하기도 하고, 인디언 보호구역을 만들어 놨으니 인디언들이 그곳에서 행복하게 잘 살 것이란 생각도 잘 못 됐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백인 남성의 여성에 대한 편견적 발언이, 그들의 명을 재촉하는 결과로 마무리된 것이다.


영화 <몬태나>는, 인디언을 잔인한 야만족이자 토벌해야 할 '적'으로만 생각하던 조셉 대위가, 통찰의 여정을 통해 인디언에 대한 편견과 분노에서 벗어나, 세상에 대한 더 큰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우리가 굳건히 믿고 있는 신념  그것에서 비롯한 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과도한 신념과 편견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신념에 대한 과도한 믿음은, 신념에 반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을 만든다. 그리고 그 편견은 증오와 분노를 일으켜 모두가 고통스러운 상태가 되는, 잔인한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아무리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보 그릇될 수 있고, 더 넓은 시각을 갖게 되거나, 시간이 지나서 보면, 허무한 아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혹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 과도하지는 않은지?' 또는, '당신의 신념이 편견과 분노를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를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든다.


그래서 영화 <몬태나>는, 단순한 서부극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편견과 증오의 뿌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문제작이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고통받고 있다면, 조셉 대위와 통찰의 여정을 함께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며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당신의 분노의 색깔도 조금은 빛이 바래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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