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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테나 Apr 29. 2018

<라이브> 노희경 작가의 확장된 시선을 응원한다.

드라마 <라이브> 리뷰

오랫동안 잊히지 않던 드라마 장면이 있다.

가족들의 여러 가지 일로 속을 썩고 있던 순박한 엄마(고두심)가 방에 혼자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때, 큰 딸(배종옥)이 방으로 들어오며 엄마를 부른다. 놀래서 돌아본 엄마는 잠옷을 입은 채, 가슴에 빨간 약을 바르고 있었다. 딸의 눈치를 보며 "가슴이... 아파서..."라고 말하는 주눅 든 엄마의 모습. 딸은 그 모습에 놀라  울부짖고, 엄마가 이상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의 한 장면이다. 가족을 걱정하는 엄마의 가슴앓이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줌과 동시에 치매에 걸린 엄마의 상태가 가족들에게 알려지는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그 장면의 인상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난 지금까지도, 고두심 씨의 멍한 표정과 울부짖던 배종옥 씨를 기억한다. 그리고, 인생을 담아내는 드라마의 깊이와 재미에 매료되어, 그 드라마를 쓴 작가의 작품은 챙겨보기 시작했다. 그 작가가 <라이브>를 쓴 노희경 작가다.


노희경 작가는 자타공인,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드라마를 잘 쓰는 작가다. 인물의 심리와 정서를 표현하는데 능해서,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듯,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들을 끌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의 소재는 주로 가족이나, 사랑에 대한 탐구인데, 특히 초기 작들에선 가족이나 사랑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이고, 냉정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그녀의 드라마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인물은 주로 아버지로, 드라마의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를 가지고 있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그에 비해 어머니는 대부분, 자식을 품어 안으며 가정의 의미를 지켜내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또, <거짓말> ,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같은 드라마에서는, 개성 강한 인물들의 좌충우돌하는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 보다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사랑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냉철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이 급격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건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에서부터다.  리얼한 현실감에 무거운 분위기, 희비가 엇갈리는 새드 앤딩 성향이 강하던 그녀의 드라마가, 판타지 실험을 거치면서 해피앤딩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 구조의 변신을 꾀한 <괜찮아! 사랑이야!>를 지나, 노년의 삶을 유머와 감동으로 그려낸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걸출한 작품을 거치더니, 기존의 가족과 사랑이라는 소재에서 확실한 탈피를 감행, 경찰이라는 직업 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라이브>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노희경 작가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드라마 PD들의 직업세계를 리얼하게 그려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작품은, 드라마 작가의 입장에서 가장 밀접한 직업군을 다루고 있는 데다, 기존의 노희경 작가가 가지고 있던 진지하고 무거운 드라마 분위기와 멜로적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기 때문에 색다른 변신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라이브>는 소재적인 면에서나, 형식적인 면, 드라마 전체의 분위기까지 기존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달라진 작가의 관점을 드러내며 그녀의 변신을 새삼,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드라마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는 점이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는 삶의 비애감이 진하게 우러나는 무게감 덕분에, 대중적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부작용이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뒤집기라도 하려는 듯, 드라마 <라이브>는 예능에서 코믹 캐릭터로 자리 잡은 이광수를 주연으로, 코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성동일을 중요한 조연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코믹 캐릭터를 십분 살려내며 드라마 초반 극의 분위기를 유머러스하게 이끈다.


그녀의 드라마가 좀 더 밝아진 데는, 전작인 <디어 마이 프렌즈>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노년의 삶을 다룬 이 드라마를 통해, 노희경 작가는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다양한 사연뿐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한계와 그것을 받아들이며 생겨난 '여유로움'을 관찰할 수 있었고, 비애감이 승화된 삶의 유머를 포착해 내는 데 성공했다. <디어 마이 프렌즈> 속, 할머니들의 엉뚱하고 유머 넘치는 행동들은, 진지한 드라마의 주제의식과 교묘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감동적인 드라마로서 대중적 성공을 거두는데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이때 발견한 유머의 효능을 제대로 체감한 노희경 작가는, <라이브> 속 염상수(이광수)와 기한솔(성동일) 캐릭터의 유머러스한 모습을 통해 드라마의 분위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조율하고 있다. 다만, 기존에 노희경 작가가 가지고 있는 비애감 가득한 정서가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그 색깔을 드러내며 두 캐릭터에도 비애감 쪽에 무개가 실리면서, 유머러스 한 장면의 재미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은 많이 아쉽다. 아마도, 중요한 극의 흐름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서, 연출이나 배우의 입장에서 캐릭터 표현의 수위 조절이 쉽지 않은 듯하다. 극의 중요한 갈등이 해결되는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본래 캐릭터의 밝은 성격과 정서가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두 번째 변화는 노희경 작가의 이야기가, 사람과 사람 간의 개인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조직과 개인의 문제, 또는 거대한 사회 전체의 문제의식으로 드라마적 관심이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기획의도에서 밝혔던 것처럼 경찰은 평범한 시민이지만, 국가의 치안을 담당하는 거대한 사회체제를 구성하는 조직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직에 의해 자신의 의도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일들에 동원되기도 하고, 그것에 따라야 하는 개인으로서 경찰은 많은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드라마는 초반, 시위 현장에 투입되는 에피소드를 통해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시위대의 의견에 동감을 하더라도, 위에서 끌어내라고 하면 끌어내야 하고, 막으라고 하면 막아야 하는 임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경찰인 것이다. 또, 아무리 열심히 범인을 잡고, 미리 예방하기 위해 힘쓰더라도, 매뉴얼에 의해서, 또는 명령에 의해서 불가피하게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으며,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누군가는 억울한 징계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조직 사회의 아이러니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라이브>는 작가의 특기인 삶의 비애감이 폭발하고 있다.


이 또한 전작인 <디어 마이 프렌즈>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 달려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 문제의 해결책은 결국, 보다 큰 관점에서 제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걸출한 작품을 쓰는 동안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생각으로 관점을 발전시킨 작가는, 사회적 질서 유지 임무를 가진 경찰 세계를 본격적으로 그려내는 <라이브>를 통해 더욱 깊어진 사회적 이해와 분석의 결과를 표현하고 있다. 노희경 작가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통해, 조직 속 개인의 희생과 비애를 포착해 냄과 동시에, 거대한 사회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그녀의 드라마들과는 달리,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경찰 수사에 어려움을 주는 제도들이 끊임없이 설명되며,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문제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노희경표 드라마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라이브>가 노희경 작가스럽지 않은 작품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심리와 정서적 흐름의 변화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 왔던 전작들에 비해, 에피소드 방식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가는 모습이나, 정확한 표현으로 다듬어져 나오던 대사들 대신, 각종 위기 상황에서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과도한 설명들이 쏟아지고, 드라마 주제를 작품 전체에 은근히 녹여냈던 그녀 답지 않게, 반복되어 나타나는 여성 성폭력에 관한 사건들과, 경찰 수사권 독립의 목소리가 너무 전면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노희경 작가의 이런 변화가 매우 반갑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사회적 드라 장르와 결합했을 때, 그 시너지 효과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폭발력을 가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내면 속 삶의 비애를 느끼게 하는 에피소드를 만드는 탁월한 능력, 인물의 성격과 이야기 복선을 사전에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치밀한 구성력,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결코 놓치지 않는 따뜻한 인간애가 드러나는 인물 표현력,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금만 과해지면 신파로 느껴질 법한 슬픔의 코드들을, 애잔한 감동 코드로 마무리하는 절제의 묘미 등은 그녀의 드라마가 가진 장점들이다. 이 장점들이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진 주제의식과 만나게 되었을 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문제작이 만들어질 것이란 예상은 어쩌면, 당연하다. 드라마 <라이브>를 통해 경찰의 삶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제도의 문제의식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라이브>는 인간의 내면 탐구에 관심이 많았던 노희경 작가가 본격적으로 사회적 문제에 눈을 돌린 첫 작품이다. 정서와 구조의 어울림이 아직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도 당연하고, 노희경스럽지 않다며 낯설게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것은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적 주제가 사회적 문제의식으로 넓어지는 과정에서, 작가와 시청자가 모두 처음하는 경험에서 빚어진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작가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상, 앞으로의 작업을 통해, 정서와 주제의식의 황금 비율을 찾는 연구는 계속될 것이고, 노련한 작가인 만큼, 조만간 <라이브>를 뛰어넘는 완성도와 깊이를 갖춘 사회 드라마를 내놓을 것이라 확신한다.  


솔직히 지금 사회적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드라마들은 그것을 깊이 있게 고찰하기보다는, 불합리한 권력과 비리에 관한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대중적 공감을 통한 시청률 높이기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담론을 끌어내는 경우도 거의 없고, 해결책을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도 거의 없다. 그저, 비리와 권력, 사회 제도적 약점의 문제를 경찰, 검찰, 재판에 관한 색다른 소재들로 바꿔가며 구조적 재미만을 따라, 반복적으로 재생산해 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장르 드라마들의 홍수 속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춘 깊이 있는 드라마가 필요한 때인 것이다. 그 기대를 조금이나마 충족시켜 준 것이 <라이브>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드라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회적 문제의식을 깊이 있게 장착하고, 삶의 희로애락의 감동을 전해 주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응원한다.  
노희경 작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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