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영화 리뷰
1800년대 후반,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미국의 흑인 노예 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하지만 미국 대법원은 주(州)에서의 '구분'이라는 미명 아래, 남부의 흑백 차별법 제정을 용인한다. 흑인과 백인을 '차별'하는 것이 아닌, '구분' 하는 것이라며, 학교와 교통수단, 숙소와 식당, 병원과 공공시설의 출입을 구별하고 제한하는,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허용한 것이다. 구분을 빙자한 차별은 그 뒤로 계속 이어지다, 50~ 60년대에 일어난 시민운동가들의 평등권 요구 노력으로, 마침내, '차별을 금지'하는 대법원 판결을 끌어내며, 서서히 사라져 간다.
영화 <그린 북>의 배경이 되는 1962년은, 흑인에 대한 '구별'과 '차별'이 법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남부에선 공공연한 인종차별이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며, 당연한 전통처럼 받아들여지던 때이다. 흑인 인권운동을 주도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로 인종 차별 철폐와 인류 공존을 호소했던 것이 1963년이고, 그가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 1968년이니, 60년대의 치열한 혼란이 계속되던 당시의 흑인 인권 상황을 짐작해 볼만 하다.
이 영화 제목이기도 한, '그린 북'은, 흑인들이 여행할 때, 마음 놓고 출입할 수 있는 숙박시설과 식당, 기타 공공시설에 대한 안내 책자를 말한다. 녹색(Green)이 가진 '안전지대'라는 의미를 여행 정보와 결합시킨 안내서인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 '그린 북'은 흑인들의 안전한 여행을 도와준다는 긍정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린 북'이란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미국 내 인종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증하기 때문에, 부정적 상징물이 될 수밖에 없다. 흑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도전하는 셜리 박사의 여정을 이야기하는 상징으로, '그린 북'은 매우 적절한 제목이다.
3개의 학위를 가질 정도로 지적인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배우 마허샬라 알리) 박사는, 자신의 '돈 셜리 트리오'와 함께 미국 남부 순회공연을 계획한다. 하지만, 여전히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심한 남부이기에, 문제 해결력이 뛰어난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로, 클럽 해결사인 '떠벌이 토니'(배우 비고 모르텐슨)를 기용한다. 당시의 보통 백인들처럼, 흑인에 대한 경멸적 태도를 가지고 있던 토니는, 클럽이 내부수리를 하는 동안, 생계를 위해 흑인인 셜리 박사와 함께하기로 한다.
여행의 과정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사건들을 시시때때로 맞닥뜨리는 두 사람. '그린 북'이 알려주는 안전한 숙박시설에 묵으며, 품위를 잃지 않는 말투로,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셜리 박사이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길에서, 공연장에서, 심지어 안전을 지켜주어야 할 경찰에 의해서 까지, 억울한 차별을 당하게 된다. 계속되는 차별에도 묵묵히 견디는 셜리 박사를 신기해하는 토니에게, 박사는 "북부라고 다를 것 같냐?"며, 북부의 보이지 않는 차별을 꼬집기도 한다. 아무리 부유하고, 능력 있고, 품위 있는 흑인이라 하더라도, 1962년의 미국에서는 '그린 북'이 표방하는 '안전지대'란 없었던 것이다.
영화의 표면적 흐름은, 보디가드이자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토니 발레롱가'의 시선에 맞춰져 있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주먹 쓰는 일을 하고 있지만, 세상 물정에 밝고, 가족을 사랑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60년대 일반적인 백인들처럼 문제의식 없이 흑인을 경멸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던 토니 발레롱가는, 뉴욕에서 상류층 생활을 하던 셜리 박사가, 여행 내내 남부의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을 의연히 겪어내는 모습을 보며, 서서히 변해간다. 물론, 그의 생각의 변화는,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기 보단, 함께 여행하며 생긴, 셜리 박사와의 정서적 유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가족과의 유대감이 강한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라는 배경과, 친밀한 관계를 잘 형성하는 인간적이고 소탈한 성격,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잘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캐릭터는, 그의 가치관 변화에 탄탄한 개연성을 부여해 준다.
정서적 울림은 언제나, 이성적 문제의식보다 훨씬 강력한 힘으로 사람을 변화시킨다. 양복점에서 옷을 사기 전에 입어 본다거나, 초청받은 저택의 실내 화장실 사용 같은, 백인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까지 차별받고 금지당하는 셜리 박사를 보며, 토니는 흑인 차별의 불합리한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처음엔 어이없어하던 그도, 반복되는 편견과 차별에 짜증을 내고, 결국 자신에게 위험과 손해가 따를 것이 분명한 상황에도, 분노의 주먹까지 날린다. 험난했던 여행을 간신히 마치고 돌아온 크리스마스이브. 친척들과 함께한 파티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이 튀어나오자, 불쾌함을 표현하는 토니의 모습은, 여행을 통해 달라진 그의 변화된 모습을 명확히 보여준다.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도전하는 셜리 박사의 '미국 남부 콘서트 투어'는 적어도 토니만큼은 확실히 변화시킨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토니의 태도 변화를 통해, '인종 차별의 불합리함'을 관객들에게 정서적으로 납득시키며, 영화의 일차적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인종차별 시대에, 흑인으로선 흔치 않게, 뉴욕 카네기 홀 위에 살면서, 부유한 상류층의 품위를 지키며, 천재 피아니스트로 살아온 '돈 셜리' 박사. 판매하는 돌이라도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웠으니 자기 것이라는 토니에게, 당장 돌값을 치르라고 명령할 만큼 엄격한 도덕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그는, 토니의 말꼬리 흐리는 발음과 비속어가 남발하는 어투를 지적할 때나, 인종차별적 모욕을 한 경찰을 토니가 때려눕혀 유치장에 갇혔을 때, 그 무엇보다 품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폭력은 못 이겨요! 품위가 이기지!"라는 그의 말을 생각해보면, 그가 가지고 있는 엄격한 도덕적 기준과 기품 있는 태도, 3개의 학위와 고상한 말투는, 인종차별 시대의 흑인으로서 박사가 세상을 이겨내기 위한, 최선의 장치이자 보호막이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상류층 백인에게도 뒤지지 않을 뛰어난 능력과 품위 있는 태도를 통해, 자신의 고귀함을 증명하고, 흑인에 대한 편견과 경멸적 시선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며 세상에 맞섰던 것이다.
셜리 박사의 이러한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가 여행 내내 타고 다닌 파란색 자동차이다. 처음 영화 속에 등장할 때부터 매우 인상적이었던 이 자동차는, 토니와 셜리 박사가 함께하는 주된 공간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적 세상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세계, 자기만의 규칙과 도덕성의 틀(frame)을 갖고 있는 셜리 박사를 상징한다. 파란색(Blue)은, 상징적 의미로 봤을 때 '신뢰'와 '성공'의 의미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청교도들이 자신들의 도덕적 행위를 강제하던 '청색 법'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에, 셜리 박사의 엄격한 도덕적 가치관을 표현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돈 셜리' 박사는 자신을 상징하는 이 파란색 자동차를 타고, 흑인 차별이 뿌리 깊게 자행되는 미국 남부를 돌며 '콘서트 투어'라는 모험을 감행한다. 아마도 그는 흑인 차별을 전통처럼 생각하는 남부 사람들에게, 흑인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지적 능력과 재능, 매너와 도덕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흑인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나마 깨 주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만든 안전한 세상을 떠나, 각종 차별과 홀대, 위험이 도사리는 세계로, 용기 있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모든 변화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셜리 박사는, 인종 차별에 대한 편견을 가진 미국 남부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콘서트 투어'를 계획했지만, 그 역시도 이번 여행을 통해 삶의 변화를 맞게 된다. 생전 처음,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포크나 나이프 없이 맨손으로 먹어 보기도 하고, 대중적인 흑인 재즈 음악을 처음 듣고 좋아하기도 하며, 자신의 가치관에선 절대 용인되지 않던, 주운 판매용 돌을 끝내 돌려주지 않은 토니를 눈감아 주는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셜리 박사의 변화는 '오렌지 버드'라는 흑인 전용 식당에서 벌어진 즉흥 콘서트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오랜 시간 전공했던 클래식 음악을 갈망하며, 대중적 재즈 연주자가 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셜리 박사는, 토니의 부추김 덕에 '오렌지 버드'라는 식당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된다. 자신이 갈망하던 클래식 음악, 쇼팽을 폭풍처럼 강렬하게 쏟아내던 셜리 박사는, 그곳의 흑인 세션들과 함께 즉흥 재즈 협연까지 하며 "오렌지 버드" 식당 안을 순식간에 희열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셜리 박사는 이 신나는 협연을 통해, 대중적 재즈 연주자로서의 거부감을 조금이나마 털어내며, 재즈 연주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인종차별적 시선 속에, 완벽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가득한 공식 공연장이 아닌, 자유로운 공간에서 벌어진 즉흥 재즈 협연의 정서적 교감은, 그의 숨겨진 흥과 본능을 끌어내며 음악에 대한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된다.
영화 제목에서부터 색채의 상징성을 십분 활용해온 영화이기에, 식당 이름에 등장하는 '오렌지색(주황색)' 또한 범상치 않은 느낌을 준다. 오렌지(Orage), 즉 주황색은 파란색(Blue)과 보색 관계에 있는 색으로, 따뜻함과 에너지를 상징한다. 식욕을 촉진하는 색이기 때문에, 식욕으로 대변되는 본능의 발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식당 이름으로도 어울리는 색채이지만, 셜리 박사의 감춰진 본능과 에너지의 폭발이 일어나는 특별한 공간의 의미로도 오렌지 색은 매우 훌륭한 상징이 된다. 재미있는 점은, 셜리 박사와 토니가 '오렌지 버드' 식당에서 나온 이후, 그들이 타고 다녔던 파란색 자동차의 빛깔이 흐릿하게 가려져버린다는 점이다. 식당을 나와 주차된 차의 좀도둑을 쫓는 장면에서는, 식당의 조명과 어둠 때문인지 심지어 그들의 자동차 색깔이 희뿌연 회색쯤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후에 씬들에서도, 폭설과 어둠이, 차의 푸른빛을 최대한 감춰버린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파란색 차가 셜리 박사 자신만의 세계, 자신의 도덕성과 생각의 틀(frame)을 상징한다고 봤을 때, '오렌지 버드' 식당을 나온 후, 자동차의 파란빛이 영화 속에 최대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셜리 박사의 내면적 변화를 시각화한 표현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 남부 백인들의 인종차별적 편견을 깨기 위해 셜리 박사가 계획했던 '미국 남부 콘서트 투어'는 결국, 박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이지 않는 생각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되어, 박사 스스로의 삶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 셜리 박사가 보여준 자신의 틀을 깨는 행동의 변화는,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날 밤을 만들어내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한 인종차별에 대한 부당함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는 아니란 생각이 드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요소요소에서 연상되는 '용기'라는 말 때문이다. 뉴욕에서 품위 있게 대우받으며 잘 살 수 있는 셜리 박사가 왜 남부를 돌며 이 수모를 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토니에게 '돈 셜리 트리오'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해준다.
그들은 천재성만으로는 부족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하죠!
또, 셜리 박사의 가족 이야기를 듣던 토니는, 가족과 교류가 뜸한 박사에게 가족 간의 관계 회복을 위해 먼저 손 내미는 용기를 부추기기는 말도 한다.
먼저 찾아가 봐요!
나라면, 안 기다릴 거예요.
외로워도, 먼저 손 내미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또 토미는, 즉흥적인 재즈 협연을 마치고 행복한 표정으로 '오렌지 버드' 식당을 나서는 셜리 박사의 용기 있는 변화를 이렇게 응원하기도 한다.
이렇게 틀을 깨는 거죠!
토니의 이 말은, 영화의 일차적 주제에 보편적 가치를 더해, 영화적 주제의식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대사가 된다. 영화의 표면적 주제의식이, 토니의 변화를 통해 보이는, '인종차별은 불합리한 편견이다'라는 내용이었다면, 영화의 절정에서 드러나는 셜리 박사의 변화는, '누구나, 편견과 생각의 틀을 깨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의 표면적 주인공은 토니로 보이겠지만, 실제 주제의식을 표현한 주인공은 셜리 박사가 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관찰자 토니의 시점에서, 셜리 박사의 외로움에 감정 이입하며 그가 벌이는 품위 있는 싸움을 지켜봐 왔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 영화의 중요한 사건을 계획하고, 변화를 만들어 내고, 그 변화의 절정을 오롯이 맞이한 사람 또한, 셜리 박사이기 때문에, <그린 북>의 진정한 주인공은 셜리 박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것이, 영화 속 셜리 박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분명, 영화적으로는 셜리 박사를 주인공으로 삼아, 세상과 셜리 박사의 품위 있는 싸움을 이야기하고, 그의 존재적 외로움마저 표현하면서도, 영화 속 내러티브는 박사의 사회적 관계성과 내면적 생각의 깊이, 음악적 관점 등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배우 '마허샬라 알리'의 힘 있는 호연에 힘입어, 그의 존재감과 눈빛을 느낄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배우가 했다면, 핵심 주인공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이처럼 이끌어낼 수 있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셜리 박사의 실제 가족들은 이 영화를 보고, '백인이 흑인을 구원하는 것처럼 그리면서, 셜리 박사의 가족 관계가 소원한 것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라는 것이 극적인 변화를 강조하기 위해, 사실과 다르게 표현하거나, 과장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적으로 더 큰 문제는 대부분, 주인공에 대한 설명 부족에 있다. 주인공에 대한 설명 부족은, 관객들이 주인공의 내면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오해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 주인공의 상황에 몰입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셜리 박사의 가족들이 '백인 중심 영화'라며 이 영화에 불만을 터뜨린 데에는, 분명, 셜리 박사가 '남부 콘서트 투어'를 계획하게 된 사상적 배경과, 그의 인간관계와 사회적 위치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 음악에 대한 진솔한 생각들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한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영화가, 주인공으로써 셜리 박사의 인간관계와 사회적 갈등에 대한 생각, 그의 음악적 고민과 소신까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다면, '돈 셜리 박사'의 가족들에게서 그런 강력한 비난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고, 영화적 완성도 또한 훨씬 높아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영화가 좋다! '피터 패럴리' 감독의 재기 발랄한 유머가 재밌고, 따뜻한 이야기의 흐름과 작은 반전이 감동적이라서 좋다. 또, 마초적이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토니 발레롱가의 캐릭터가 인간적이라서 좋고, 그가 날리는 주먹 한 방이 정의로워서 좋다. 또 실제로, 인종차별의 시대에, 품위 있는 저항을 보여준,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를 알게 돼서 기쁘고, 그의 품위 있는 싸움을 곱씹어 볼수록, 훌륭한 저항이 감동적이라서 좋다. 게다가 돈 셜리 박사를 온몸으로 연기한 '마허샬라 알리'의 품위 있는 자태와 눈빛 연기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고, 천재 피아니스트를 제대로 보여주는 '오렌지 버드'의 피아노 연주 장면은 정서적으로 훌륭해서 좋다. 게다가 유머와 감동을 조화롭게 넘나드는 음악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지... 주인공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아쉬움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모든 이유로, 이 영화가 좋다!
만일 당신이, 재미와 의미를 갖춘 따뜻한 영화를 원한다면, 1월에는 놓치지 말고 <그린 북>을 보길 바란다!
분명! 나처럼 만족스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