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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영 Aug 17. 2016

결국 '우리들'이다.

영화 <우리들>에서 본 세상

  약 한 달 전 즈음에, 오랜만에 부산 여행을 하며 거의 마지막 코스로 들렀던 곳이 영화의 전당이었다. 그날은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걷는 것조차 힘들었고 태종대를 관광하기 전에 실내코스를 찾던 중 영화의 전당이 떠올라 방문하게 되었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곳에 닿아 어느 예쁜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냥 포스터가 예쁘고 취향에 맞아 포스터 꾸러미에서 하나를 꺼내어 한참을 살펴보았다.

꼭 보고 싶다.


  영화의 정보는 포스터 뒷면에 어느 정도 나와 있지만 나는 그것을 보지는 않았다. 처음 마주한 두 소녀의 모습과 빨간 꽃과 초록 잎이 마치 실벵 쇼메 감독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의 정원’ 같은 분위기의 드라마 장르의 영화라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의 부류라 생각되어 숨은 보석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상영 시간이 맞지 않아 서울에서 보기로 하고 남은 여행을 마쳤다.  

   



  서울에 돌아와서 그날 부산에서 가져온 포스터를 집에 붙여두었다. 정말이지 잘 어울렸다. 예쁘다. 한참을 두고 오며, 가며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8월 둘째 주 토요일,

지난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고 영화를 찾았다. 개봉된 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 상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상업영화와 달리 광고가 없어 정시에 시작했기 때문에 늦으면 절대 안 되는 상황이었고 부리나케 현장 예매로 볼 수 있었다.      



  영화는 암전 상태에서 오로지 아이들의 소리만으로 시작되는데 학창 시절 누구나 해봤을 피구게임 장면으로부터 출발한다. 아이들의 대사가 몇 마디 흐르지 않았는데도 나는 이 영화의 분위기를 피부로 직감할 수 있었다. 왜 인지는 몰랐지만 그냥 눈물이 나왔다. 짐작컨대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운동장에서 주인공 선이는 선택받지 못한 최후의 1인이 되어 마지못해 팀원으로 합류하였고 이마저도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면서 제대로 게임을 하지도 못한다. 선이와 아이들의 기류를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첫 번째 장면은 많은 대사와 사건과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인공의 표정을 통해 불안함을 여실히 느끼게 했다. 그 불편함은 실은 내가 겪어왔던 어린 날 단편이었다. 그냥 나는 선이었다. 선이보다 컸을 때도 그 불편함을 겪으며 학창 시절을 마감했고 무던히, 무탈하게 보냈던 시간이 사실은 매우 불안했던 것이었음을 나조차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했다. 그런 내가 선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나 가슴 아팠다. 그래서 눈물이 흘렀나 보다. 



  선이에게 유일한 말벗이 되어주는 것은 엄마와 동생뿐이지만 엄마도 생계로 인해 너무 바쁘다. 억척스러운 엄마이지만 그래도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는 분이다. 그런 선이에게 친구가 생겼다. 다른 마을에서 전학 온 지아는 처음으로 만난 친구가 선이라고 고백하고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방학 내내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그렇게 단짝이 되고 비밀도 알게 된다. 그렇게 가장 가까운 단짝 친구는 서로의 손톱에 봉숭아를 물들여주며 밤을 보낸다. 포스터에 나왔던 빨간 꽃잎과 초록 잎은 둘 사이의 매개가 되었던 봉숭아였던 것이다. 물론 봉숭아 말고도 둘 사이의 매개가 된 ‘팔찌’도 있지만 관계를 돈독하게 해 주었던 것은 단연 봉숭아였고 봉숭아 물들이기라는 행위는 관계를 물들이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둘 사이가 멀어지게 된 것은 지아의 질투에서 비롯되었다. 선이는 친구들에게 외면받았지만 가족이라는 존재가 있었고 지아는 부모의 이혼으로부터 애정이 결핍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사랑받는 선이의 모습에 질투를 느끼게 된 것이다. 이후로 조금씩 둘 사이는 멀어졌고 선이를 괴롭히던 보라와 지아가 단짝이 되는 것을 보고 선이는 한 번 더 상심한다. 지아는 학교에서 선이가 아닌 보라와 어울렸고 묘하게 선이를 피하는 모습에서 지아의 심리를 읽을 수 있었다.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지아의 심리에서 살벌한 생존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선이가 친구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사실을 알고 도리어 선이를 피하는 것은 자신이 살기 위한 방어책이었던 것이다. 이미 전 학교에서 선이와 똑같은 아픔을 겪은 경험이 있지만 아픔을 반복하기 싫어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선이가 보라에게 감정을 공유하게 되는 순간, 지아의 비밀이 드러나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지아는 반에서 외톨이가 된다. 거짓말로 일관하며 자신을 포장했던 지아라고 소문이 나면서 지아에게 이전의 상처가 한 번 더 상기된다. 그렇다고 선이와 지아의 사이가 다시 좋아지느냐? 아니다. 선이는 자신을 밀쳐내는 지아에 대해 아무런 이유도 알지 못해 다가가려 하지만 여전히 지아는 냉랭하고 지아는 주류 친구들로부터 멀어진 것이 선이 때문이라는 것 때문에 도무지 선이와 가까이하지 않는다. 결국 지아와 선이는 서로가 살기 위하여 서로 생채기를 내고 만다.



   영화 말미에 선이의 동생 윤이가 자꾸 친구와 놀다 맞고 들어온다. 그런데 윤이는 자꾸 친구와 또 놀고 맞고 온다. 선이는 아이들끼리 놀다 낸 상처라지만 누나 된 입장에서 어쩐지 너무 속상하다. 동생에게 친구를 때리라고 하자 이번엔 윤이가 같이 때리고 보물 찾기를 하고 놀았다고 고백하자 선이는 답답해한다. 때린 친구와 같이 보물 찾기를 하다니... 하지만 윤이의 마지막 대사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되어 깨달음을 얻듯 명쾌했다.


“그럼 언제 놀아? … 나 그냥 놀고 싶은데!”


그냥 놀고 싶은데... 윤이의 이 대사가 영화의 전부인 것 같다. 그냥. 단지 놀고 싶은 것이 전부다. 재고 따지고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되는 것이 관계는 아니다. 살기 위해 서로를 향해 과녘을 맞추었지만 그냥 놀면 안 되나? 너무나도 단순하고 명쾌한 결말에 무릎을 쳤다.




  체육시간에 피구를 하며 이번엔 지아가 누명을 쓴다. 그러나 선이가 지아의 누명을 벗겨준다. 단순하게 말이다. 두 친구는 말이 없다. 그냥 멀뚱히 마주 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둘은 친구가 되었을까? 친구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또 멀어졌을까? 결국 ‘우리들’은 살기 위해 버둥거린 나였고 우리였다. 그런 우리가 관계에 익숙해진다는 건 정말 어른이 된다는 것일까?          




 https://youtu.be/17UdBIj-TTM

▲ 영화 <우리들> 공식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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