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아래서#2
뛰어난 어른들을 떠올리면 머릿속에 맴도는 몇 얼굴 중 한국에서는 파마머리 김정운 교수님이 떠오른다. 그 의 책 <에디톨로지>에서 '시간'에 대한 우리들의 공포를 다루는 내용이 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인간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해서 근본적인 불안과 공포가 있다. 이를 극복하고 싶은 마음에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셀 수 있는 단위로 시간을 쪼개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간을 셀 수 있는 단위로 작게 쪼개고, 반복되는 것처럼 만든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시간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하루를 24시간으로, 30일을 한 달로, 365일은 1년으로 표현하고 마치 반복되는 것처럼 패턴을 만들게 되면 시간에 대하여 우리는 스스로 '예측'이 가능하고, 흘려보낸 한 해가 내년에 다시 돌아온다는 안정감이 생긴다.
그렇다, 결론은 2023년은 리셋도 반복도 아닌 연속된 시간의 일부이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책 속 팩트 폭격에 삶의 불안감만 증폭된다...) 오케이. 그렇다고 막연한 불안감에 고민만 하기에는 지나간 시간은 손절하고,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2022년 나의 좌우명은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초등학교 연극 시간에 하도 열심히 외워서 그런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었다. 직역하면, '천천히 그리고 꾸준함이 있다면 경주에서 승리한다'는 말이고, 우리가 잘 아는 <토끼와 거북이> 중 거북이 스토리다. 이상하게 2022년 연초에는 이 말이 그렇게 끌렸다.
물론, 여전히 이 문구는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이 강력하다. 왜냐? '존버'가 절실한 하는 시기이니까.
하지만, 'Slow'라는 단어가 주는 시간에 대한 안일함 때문에 사업 아이템이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깃털 같은 내 멘탈 덕분에(?) 2023년의 삶을 어떤 생각으로 채우고 살지 다시 정리하고 싶었다. 시간은 반복되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는데.. 어차피 불안한 인생, 사는 대로 생각하기보다는 생각한 대로 살고 싶어서 말이다.
소비가 아닌 축적
며칠을 고민하며 정리한 삶의 좌우명은 '소비가 아닌 축적'이다.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은 경기 속에서 저축을 열심히 하겠다는 말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 반대이다. 더 쓰겠다는 소리이다.
가령, 기념일날 일정을 정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존(as-is)의 나라면 망고플레이트나 캐치테이블을 켜고, 열심히 맛집을 서칭 할 것이다. 그러다가 이미 1~2번 방문으로 안정성이 보장된 식당 예약을 하고, 익숙하면서 적당한 음식 주문과 함께 새로운 주류 정도만 도전할 것이다. 여기에는 시간과 비용에 대한 소비만 담겨있다. 서칭에서부터 경험의 완료되는 시점까지 새로운 자극이 거의 없다.
반면, 축적을 중시하는 삶에서 기념일날 일정을 정하는 것은 그 맥락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다. 식당을 고르는 기준은 더 이상 안정성, 적정 비용 등이 아니다. 오히려 값비싼 음식이라도 낯선 경험을 제공하는 곳을 택한다거나 맛있는 식사 대신 해보지 않은 액티비티를 찾아서 시도할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나의 삶에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오고, 시야의 깊이를 늘려줄 테니 말이다. 말 그대로 경험의 축적이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영화 평론가 이동진 기자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나에게 큰 자극이 된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스타트업을 해보니 인생이, 그리고 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만 든다. 매일매일이 불안한다.
비단 스타트업뿐이겠는가? 자영업자도, 회사에서 성장을 꿈꾸는 누군가의 인생 또한 생각한 데로, 계획한 데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정말 뼛속 깊숙이 아릴 만큼 깨달으며 살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목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하루의 일 분, 한 시간이 너무 중요하다.
고리타분한 결론이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 매일 작은 감사와 배움으로 채운다면 큰 위기가 닥쳐와도 '어제, 아니 지금까지 매일매일 잘 살았잖아. 그거면 됐지.'라는 생각으로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너무나 소중한 하루하루를 핀볼 게임의 '볼'처럼 발사되어 누군가가 정한 시간과 공간의 틀에서 이리저리 치이다가 다시 장전되는 반복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아서 오늘 하루도 작은 축적을 만들어낸다. 반복이 없는 불안한 삶의 어디쯤에서 작은 축적들이 쌓여 촌스러울지언정 나만의 콘셉트로 다른 사람들에게 낯선 자극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어디선가 자신의 언어로 삶을 살아가며 치열하게 조금씩 축적하고 있는 모든 삶을 깊이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