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글쓰기에 관심이 부쩍 간다. 사실 글쓰기는 10년 동안 심심할 때마자 즐겼던 취미였다. 내세울 것이 거의 없는 내게, 특기에 가까운 활동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내게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난 그동안 대개는 영감이 와야 글을 썼다. 그래서 글쓰기가 내심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7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글을 쓸 때마다 괴로웠다. 진심으로 즐기지 못한 것이다.
이런 내게 요즘 변화가 찾아왔다. 만약 사람들이 내게 “강연을 할래? 글쓰기를 할래?” 이렇게 물어온다면, 난 후자를 택하겠다. 나를 표현하는 활동 중에 말하는 것은 나의 장점이 못 된다. 이런 내게 글쓰기는 그나마 특기가 된다. 내향적이고 혼자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내게, 글 쓰는 작업은 즐길 만하다.
20대 초반에 재수하고 대학에 들어오면서 나의 꿈은 분명했다. 어려웠던 집의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자, 법무사 시험에 최대한 빨리 합격하는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열등감이 매우 많았던 내게, 반작용으로 엄청난 성취 욕구가 있었다. 이것이 이때 내 마음을 가득 채워 열정 아닌 열정을 발휘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법 공부에 집중을 잘하지 못하게 되고, 시간이 흐르며 나의 관심사는 매우 다양해졌다. 그러다 하나 공통된 것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내가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이때만 해도 내가 성공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서, 책을 마구 집중해 읽었다.
20대 후반까지 이렇게 지내오면서, 내가 나중에 작가가 될 것을 꿈꾸리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자기계발과 임상심리 전문가가 되는 꿈을 꿔보기는 했다. 그것도 백수 시절의 막연한 희망사항이었다.
그런데 지난 15년을 막연히 지나오면서, 나의 꿈들은 점점 사라져갔다. 즉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져갔다. 작가는 사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기보다는, 더 이상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없기에 도전하게 되는 점도 있기도 하다.
난 2008년부터 존경하게 됐던 구본형 선생님을 실제로 뵈면서, 작가가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변화경영 전문가였지만, 사실 작가로서의 활동도 성공적이었다. 얼마나 글이 절묘한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감동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선생님에게서 작가로서의 모범과 영감을 받았기에, 한참 모자란 사람이지만 나 역시 이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다. 선생님은 강연가이기도 해서, 좀 소란스럽겠지만 강연을 하다 쓰러져 죽는 것이 자신의 일과 삶에 관한 열정이라고 하셨다.
나 역시 이제는 글쓰기를 하다 죽는 것을 하나의 삶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우연히 오늘 글 쓰는 작업이 어렵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축구 선수도 훈련을 할 때는 매일 일과대로 성실히 참여해야 한다. 이 과정은 결코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뻐근한 즐거움이 따르게 된다.
나 또한 글쓰기가 매번 즐겁지만은 않겠지만, 뻐근한 즐거움을 느끼려 한다. 인생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일을 한다. 난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의 2/3의 활동을 일하며 보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일이 즐거운 사람은 행복하다고 본다.
글은 삶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좋은 인생을 살아야지, 좋은 글쓰기도 가능하다. 좋은 삶이란 자신이 만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에게 도움이 되면 좋다. 나아가 그 일로써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최상이다. 이제 작가를 꿈꾸게 되었으니, 글쓰기로써 인생을 살아가려 한다. 매일 즐길 수 있다면 최고의 취미가 되어 줄 것이다. 매일 하는 자가 성취를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