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문화 변화가 초래한 아프리카의 야생 난초 멸종 위기
'난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어떤 이는 매(梅) · 국(菊) · 죽(竹)과 더불어 사군자(四君子) 중의 하나로서 고고한 선비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며 어떤 이는 화투 칠 때 초단(草短)을 만들기 위한 5월의 난초(실제로는 창포꽃)를 떠올릴 것이다. 필자 또한 고아한 자태와 청초한 꽃잎, 그리고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 난초를 관상하며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고 또한 열심히 화투패를 던지며 'Go!'를 외치기도 하였다. 잠비아의 멸종 위기 야생 난초 보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동남 아프리카, 특히 잠비아에는 '치칸다 (Chikanda)' 라는 전통 음식이 있다. 종종 'African Bologna' (Bologna: 이탈리아 소시지의 일종)라고도 일컬어지는 치칸다는 야생 난초의 괴경(tuber, 뿌리)을 주 재료로 만든 그 지역의 별미 음식이다. 실제로 먹어보면 맛은 소시지라고 보기 힘드나 질감이 꼭 그러하다. 본래 이 고기 없는 소시지는 잠비아 북부와 말라위 일부, 콩고-잠비아 국경 지역인 카탕가 일부 지방의 가난한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먹어왔던 음식인데 그다지 대중적 인기는 없었다. 오히려 한 줌의 말린 애벌레가 더 인기 있는 간식거리였을 것이리라.
그러나 지난 몇십 년간 치칸다에 대한 잠비아 사람들의 인식은 크게 변해 왔고 지금은 고급 호텔, 대형 마트에서부터 시장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잠비아 전역에서 치칸다를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결혼식 파티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다. 우리나라로 굳이 비교하자면 떡 먹듯이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졌는지 물으신다면, 글쎄, 아마도 맛이 좋아서가 아닐까. 필자가 연구를 위해 잠비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치칸다를 먹어본 결과 맛이 꽤나 좋았고 일관성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었을 때 절대 싫어할 맛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물론 예외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식문화 변화가 동남 아프리카 야생 생태계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본래 지구 남반구의 가을, 겨울 시즌인 4월에서 8월 사이에 수확되던 동남 아프리카 야생 난초의 공급량은 현재 막대한 치칸다 수요에 절대적으로 못 미쳐 한창 성장기인 11월과 12월에도 수확되고 있다. 잠비아의 인구는 지난 30년간 3배 이상(2016년 당시 16.5백만) 증가하였고 더불어 등장한 비이상적인 식문화의 변화는 한 식물 개체군의 생태계를 무자비하게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년생인 난초들은 몇 년간의 성장 끝에 5g 정도의 한 개 내지 두 개의 괴경을 만드는데, 지난 수십 년 동안 매년 계속되어온 과도한 수확은 큰 괴경들을 거의 고갈시켰고, 현재 잠비아 본토 내에서 수확되는 야생 난초 괴경 대부분의 무게는 1g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도 잠비아 내 야생 난초들은 지역 주민들에 의해 계속해서 소탕되는 중이다.
하지만 잠비아 본토 내의 난초 괴경 공급량 부족이 이러한 치칸다 열풍을 막지는 못 했다. 최근 잠비아의 수도인 루사카와 다른 대도시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난초 괴경들은 탄자니아 남쪽 지방에서 밀수입되어 온다. 2003년 당시 연구만 봐도 해마다 2~4백만 개의 야생 난초 괴경들이 탄자니아에서 잠비아로 밀수출되었다. 2014년의 최근 연구도 현재 한해 350만 개의 야생 난초 괴경들이 잠비아로 밀수입된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는 수입량이 약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해서 수확에 별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수확되고 있는 지역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한 지역에서 양질의 난초 괴경을 더 이상 수확하지 못하면 다른 지역으로 계속 이동하는 것이다. 지금 치칸다 난초들은 탄자니아, 콩고 민주공화국, 말라위, 그리고 모잠비크에서까지 수확되어 잠비아로 밀수출되고 있다. 이러한 잠비아 주변 국가들에서 밀수입되어온 치칸다 괴경들은 아직은 대체로 양질의 수확물을 제공하지만 시간문제이다.
앞서 인접국의 치칸다 난초 괴경들이 잠비아로 '밀'수입되어 온다고 언급했듯이 동남 아프리카 여러 국가의 정부들은 기술적으로는 이러한 대량의 야생 난초 거래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세계의 모든 난초 종들은 CITES의 멸종 위기 동식물종의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CITES란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lora and Fauna)을 말한다 (네이버캐스트). 비록 치칸다 요리에 이용되는 난초 종들은 부속서 Ⅱ에 등재되어 있어 상용 목적의 국제거래가 허용되지만 거래에 앞서 반드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굶주린 아프리카 시골의 아낙네들에게 이렇게 어려운 이슈가 귀에 들어갈 리가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먹고살기 위해 수확한 치칸다 괴경을 굳이 정부기관에 신고하여 세금을 낼지 아니면 조용히 팔아넘겨 살림에 보탬이 되게 하는지의 문제이다. 이러한 지역 주민들에게 대량으로 괴경을 사들여 밀반입하는 중간 상인들에게도 이는 같은 문제이다. 당연히 정부의 허락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도 당당히 드러내 놓고 시장에서 거래를 하고 있어 누가 봐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경찰도 어떤 정부기관도 이에 대하여 활동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다 보니 이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정말로 동남 아프리카의 토종 야생 난초 종들의 씨가 말라 버릴지도 모른다. 치칸다 식물로서 거래되는 난초류 종들은 대체로 Disa, Satyrium, 그리고 Habenaria 속(屬)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완전한 식물체가 아닌 동글동글한 괴경만 유통되는 시장에서 형태학적으로 어떤 괴경이 어떤 특정한 종의 것인지를 식별하기란 현장에서 수십 년간 일한 전문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잠비아 인근 국가들에 널리 퍼져있는 드넓은 들판을 돌아다니며 직접 조사하는 것 또한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고 또한 여러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치칸다 괴경의 유통은 수많은 수확 일꾼, 중간상인, 그리고 시장 소매상들의 촘촘한 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이 정부에 보고 또는 정부 수준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그러한 네트워크 망을 파악하기 또한 쉽지 않다. 몇몇의 표본 조사로 대략의 추측을 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 어떤 종의, 얼마만큼의 치칸다 식물이 수확되어 유통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멸종 위기 위험이 있는 식물 종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종이 위험에 처해있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어려움들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 학계에서 각광 박는 DNA 바코딩 기술의 활용이 그 해안이 될 듯하다. DNA 바코딩은 유사한 생물종 간의 유전자 염기서열 정보를 이용하여 뚜렷한 차이가 나는 염기서열 부위를 비교해 종을 구별해 내는 기술이다. 잠비아 내 여러 지역의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치칸다 식물 괴경들을 우선 체계적으로 샘플링 한 뒤 DNA 바코딩을 통하여 종을 식별해낼 수 있다. 그 결과를 현장 조사 시 행한 치칸다 판매자들과의 인터뷰 내용과 비교해보면, 과연 지역별로 다른 치칸다 식물들의 명칭과 그들이 말하는 원산지 등의 정보가 구별된 난초 종들과 일치하는지를 분석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한 식물종 식별을 위해서는 유전자 분석 비교 대상인 더 많은 아프리카 토착 난초 종들의 레퍼런스 지놈 시퀀스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차세대 유전자 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기법도 다원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이렇게 멸종 위기 취약 난초 종들이 파악되고 나면 정책적으로 야생 난초 생태계의 보존에 들어가야 한다. 야생 난초 보호 구역을 지정하고 지속적인 워크숍 등의 교육을 통해 당국의 국립공원 관리자들을 교육해야 한다. 교육을 받은 책임자들은 지역의 주민자치 단체들과 협력을 통하여 치칸다 식물 수확 일꾼들의 재교육 및 과잉 수확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동남 아프리카의 지방 주민들은 특정한 부족에 속해 있으므로 부족장들과의 협력이 중요할 것이다. 실제로 잠비아 내 여러 부족장들은 현재에도 치칸다 식물 수확 장소를 임의로 지정하고 주민들은 그를 따르고 있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궁금해할 것이다. 왜 애초에 치칸다 난초를 재배화 시키지 않았는가. 우리가 꽃집에 가서 예쁜 난초를 살 수 있듯이 재배화하면 이런 문제를 단방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글쎄, 식용 난초의 재배 화가 가능했다면 수세 기간 여러 방식으로 난초를 먹어온 (예를 들어 셀렙, salep) 그리스, 터키, 인도, 그리고 중국에서도 이미 재배화를 시켰을 것이다. 신선한 야생 난초의 괴경을 옮겨 심어 싹을 피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또한 난초 애호가들은 필자 어머니의 용어를 빌리자면 '씨 가리 만한' 난초 씨앗을 한천 배지에 옮겨 싹을 틔우기도 한다.
진짜 문제는 적절한 크기의 5g 정도의 치칸다 괴경을 키우기 위해서는 약 5년 정도의 재배 기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또는 두 개의 괴경을 만들어 내는 난초 개체에서 괴경 하나를 때어내면 그 난초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꽃집에서 키우는 난초 또한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관상용으로 키워낸 난초 한 개체의 가격은 현시가 평균 만 원을 웃돌아 판매되고 있으며, 잠비아에서 판매되는 난초 괴경 하나는 고작 몇 십원에서 몇 백 원 사이에 판매된다. 그것도 잠비아 지방 사람들에게는 적은 돈이 아니다. 왜냐하면 식용으로 한번 이용하기 위해서는 수십 개의 괴경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적은 수익으로는 난초 재배의 기술과 유지비를 감당하기가 힘들다. 식용 난초의 재배가 어려운 이유이다.
치칸다의 식용은 단순히 야생 난초의 생태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대량으로 유통하는 중간 상인들을 제외하면 치칸다 식물을 수확하고 판매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이다. 부모나 남편이 시키는 일이면 웬만하면 해야 하는 하는 잠비아 여성들은 어린 소녀이고 아줌마이고 할 것 없이 아침부터 먼 길을 걸어 치칸다 일을 한다. 그 지역 부족장이 아주 먼 들판에 치칸다 식물을 지시하면 그들은 종일 걸어 걸어 일하며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야 한다. 치칸다 비즈니스를 위해 일찍이 기초 교육을 포기하고 학교를 가지 않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치칸다의 대중화는 여성인권에도 악영향을 미쳐 사회 속의 악순환을 만들어 낸 것이다.
어렵겠지만 야생 치칸다 식물들의 종식별을 통해 멸종 위기 취약 난초들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종을 발굴해내거나 쉬운 재배화가 가능하도록 육종을 할 수 있다면 기사회생할만한 기회들이 찾아올 것이다. 우선은 생명다양성과 자연 생태계 보존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고, 치칸다 여성 일꾼들의 이동거리를 단축시켜 희망컨대 그 이동시간을 교육 등의 자기 발전시간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밀거래되던 치칸다 난초들을 공적으로 재배하고 치칸다 케이크를 좀 더 깔끔하고 대중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산업 규모의 식품 시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멀게는 필자와 같은 외국인의 입맛에도 맞는 음식을 안정되게 보급하여 아프리카 음식문화의 질을 향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시지의 질감이 나지만 오직 식물성의 재료만 써서 만든 치칸다는 선진국 등에서 불고 있는 채식주의 열풍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넣을 수 있진 않을까. (실제로 잠비아에선 치칸다 햄버거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참고자료
https://www.mdpi.com/2073-4425/9/12/595
http://www.bbc.com/earth/story/20161123-there-is-a-snack-food-that-is-mostly-made-out-of-orch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