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Copenhagen
살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를 물으면 여전히 열아홉과 스물하나를 꼽는다. 하고싶은 일들이 너무 많았지만, 해야하는 일들은 더욱 많았고, 반면 할 수 있는 일들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무척이나 가난했고 무능했고 무지했어서, 무서운 게 적었고 소중한 게 제법 있었다.
당장 내일의 밥값이나 월세 같은 걸 고민하던 날들이었다. 책 값이 모자라서 도서관의 책을 불법 복사해 교재를 만들기도 했다. 삶은 어떻게 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았고, 그래서 그 날 하루를 잘 살면 그것만으로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었다.
청춘이라는 것이 주는 어떤 허무맹랑한 호기 덕분에, 그 시절 나는 하고싶은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분명했었다. 선택에 주저함이 없었고, 겁이 나도 물러서진 않았다. 슬플 땐 음악을 들었고, 모르겠을 땐 책을 읽었으며, 놀고 싶을 땐 내일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혼자는 늘 버거웠고, 그래서인지 몸이 늘 약했고, 그러다 보니 외로움에 서러움이 섞여 의외의 투지 같은 게 생겨나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언젠가 내가 서른두살이 되어, 1.5달에 한 번 꼴로 출장을 다니고 세계 곳곳에 친구와 동료들이 있고, 설 연휴 동안 덴마크에서 회의를 하고, 맛있는 걸 먹고, 호텔 방에 앉아 글을 쓰고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당장 내일도 생각할 기력이 없어서, 어렴풋하게나마 '이렇게 죽도록 열심히 사는데 내가 잘 안 되면 하나님이 개새끼지' 라고 생각했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잘 될지는 그림을 그리기가 어려웠다.
얼마 전 누군가 나에게 젊은 나이에 성공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분명 좋은 뜻으로 해 준 말이었지만 난 사실 그 성공이라는 단어가 조금 불편했다. 일단 성공을 하려면 목표를 이뤄야 하는데, 난 애시당초 이런 삶이 목표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내가 속한 조직에서 인정받을 만큼의 성과를 이뤘을지는 몰라도, 스스로가 만족하는 삶은 지금의 것과 조금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배가 좀 불렀는지, 요즘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매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 이전에 지레 겁을 먹는 것 같아 스스로가 조금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따금씩은 다 때려치우면 뭔가 답이 보일까 하는 객기어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일단은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 내일을 고민하는 것보다 나은 것인지를 곱씹어 본다.
나의 지금은 틀렸고, 아마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무언가는 맞았으면 하고 바라보지만, 사실 삶에 있어 맞다고 생각하는 날이 올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혹여 신께서 나에게 딱 하나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오늘밤 물으신다면, 나는 매일 성실히 기록하는 문장들이 켜켜이 쌓였을 때, 누군가에게는 조악할지라도 몇몇에게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게 해달라고 할 것이다. 적어도 나만큼은 누군가를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있도록.